라스트 맨 스탠딩.

이러한 과정의 연속.

by 이동민

내 생애 단 한번 '20대에 해야 하는 30가지의 일'과 같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분명 내가 직접 샀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당시 동거인 중 의심해 볼만한 사람은 나의 친형뿐인데 그도 아닌 것 같다. 그는 항상 전문 분야에 대한 책을 읽는 데다가, 내 머릿속에 형의 20대는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그는 항상 어른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그 책은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책장에도 놓여 있지 않았을 테니, 나는 분명 어딘가의 서점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읽었겠거니 추측할 따름이다. 아마도 그 시절은 나 스스로의 독서 기호가 완전히 정립되기 전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런 종류의 서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예전의 나는 엄청난 경험론자였기에 그러한 서적을 신뢰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책에서 기억하고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해외 저자가 산만하게 펼쳐 놓은 그 수십 가지의 해야 하는 일 중,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선거사무소에서 일해보기'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며 내가 도운 후보자가 당선되지 못했을 때를 경험해보라는 것이었다. 선거기간 중의 선거 사무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후보자는 이곳저곳에서 인맥을 만들고 견고하게 하느라 정신이 없고, 조직원 모두가 각자의 일로 넋이 나가 있다. 하지만 개표가 시작되고 뚜껑을 열어 본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 그 많던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어지며 오직 사무소에 남게 되는 것은 단 한 명의 패배자, 곧 선택받지 못한 후보자 한 사람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논조는 이 패배의 외롭고 씁쓸한 기분을 간접 경험해보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마치 "세상의 냉정함을 일찍부터 배워두도록 해!"라고 조언하는 엄격한 꼰대 같아,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그보다는 '동물의 숲에 최선을 다해 보기'혹은 '고양이와 진심으로 대화를 시도해보기'같은 것이 인생에 더 득이 되지 않으려나.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무서움과 냉정함 따위를 굳이 그렇게 시간을 내어 미리 경험해 둘 필요'가 있나 싶다. 그런 것들 따위 서두르지 않아도 조만간 경험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 성장을 위한 실패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연애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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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니까 선거와도 같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전혀 이성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스스로가 굉장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만큼, 연애나 영업, 비즈니스 등의 많은 것에 해당된다. 주체를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나를 위한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단지 듣기 좋거나 보기 좋은 감성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잘난 척 떠들어대고 있지만, 나 또한 이것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다. 사실 요즘 글을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와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가 방향이 다른 것 같아 고민한다. 나는 분명 관찰 중심의 에세이가 끄적거림의 꽃이라 여기는데 요즘 세상에 널리 읽히는 것은 비슷비슷한 연재 일기 물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집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재물을 쓰면 되잖아'라고 스스로 되내어보는 것은 이성적 사고인 동시, 폭력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괴로움을 안고 있는 내게 누군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간단한 문제야.'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고 싶다 하지만, 시도를 해본 적은 있나요?"


목표에 다가가는 일 혹은 실패하는 일은 결국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우리나라에서의 선거가 하루 지났다. 필시 누군가는 엄청 기뻐하고 꿈에 부풀어 있는 반면, 다른 이는 세상의 무게를 혼자서 다 지고 있겠지. 또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나섰던 것은 아니지만, 간접 플레이어로 활약한 누군가들은 이 승부의 의미를 확인하며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겠지 싶다. 자신만이 옳고, 정답이라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내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냥 모든 플레이어들이 가만히 위로라는 것도 했으면 좋겠다. 상대를 위로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간 상처 받고 피폐해진 스스로를 돌보며 자신을 위로해보았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정작 우리가 20대에 경험해야만 했던 것은 스스로를 진심으로 위로해보는 것이 아니었으려나. 뭐 그냥 나도 위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오늘은 특히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한 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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