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찔 수 있을 리 없었다.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지만 부끄러운 일이 하나 있는데, 나는 사실 공익근무요원 출신이라는 것이다. 사실 공익근무요원도 단어의 말미에 '요원'이라는 것이 붙어 있는 것이 좀 부끄럽지, 그래도 병역의 의무를 짊어지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에 부끄러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 군대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지만. 그러니 정작 내가 부끄러운 것은 '공익근무요원(이하 공익)'이었던 것이 아닌 공익이 된 이유에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놀랍게도 체중미달이었다.
이럴 수가! 체중미달이라니.. 물론 현역병이 될 수 없었던 가장 주요한 사유는 시력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 남성으로 태어나 20살에 경험하게 되는 유일무이한 국가적 신체검사에서, 말미의 그 사족 네 글자(체중미달)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교류를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아내는 그녀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 를 만날 때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는 했겠는가. "어머니, 남편이 과거에는 말랐었던 것이 사실인가요?"하고.
어쩌면 아내는 '과거의 남편은 어째서 마른 인간 일수 있었나'를 탐구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대략의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남성이 신체검사를 받는 시기는 보통 20살. 그 시절 남성들은 극심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폐인의 길을 걷는 시기.
폐인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쓰고, 읽으면 다소 이질적 일지 모르나, 입으로는 누구나가 뱉어본 적이 있는 만큼 친숙한 어휘라는 생각도 든다. "나 요즘 폐인이야, 폐인모드야."와도 같은 말은 모두가 흔히 하던 말 아니던가. 어찌 되었건 그 시기를 단지 '폐인'이라 하지 않고 굳이 '폐인의 길을 걷는 시기'라 말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 시절 나는 혼자만 폐인이 아니었으니까. 모두가 함께 폐인의 길을 향하는 시기였으니까'라고 나는 변명하고 싶다.
폐인은 자유롭지만, 외롭고, 마음대로 살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다. 매일 시간과 관계없이 일어나, 아무것이나 주워 먹고, 아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그러나 집을 나서봤자 딱히 할 일은 없고, 수중에 돈도 별로 없다. 당연히 여자 친구도 없어야 한다. 그러니 이 외롭고 자유로운 영혼들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길거리나 놀이터에서, 피시방 혹은 만화방에서 말이다. 딱히 불량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라면이나 짜장면을 먹고, 빈 종이 커피잔에 담배꽁초를 쌓아감은 매한가지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삶이 피폐하니 살이 찔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그 폐인이 정상인의 범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 군대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짧지만 훈련소에 들어가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적당한 육체노동을 하니 한 달 만에 10킬로 정도가 붙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남자는 제대를 해야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그때 즈음하여 우리도 규칙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루틴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계획의 필요성도 알게 되어 공부도 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조금씩 모두가 사회화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 질풍노도의 시절이 그립다. 말랐던 신체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 함께 폐인의 길을 걸었던 동료들이 그립다. 만나서 돈, 자녀, 주식, 부동산, 고부갈등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오직 여자 이야기로만 몇 시간이고 계속 이야기했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의젓한 의사가 된 친구도, 그 시절은 방에서 창문도 열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던 무개념의 골초였고, 어느 조직의 임원인 녀석도 잔디밭에서 혼자 강소주를 마시며 인사불성이던 그 시절. 맨날 퇴짜를 맞아 슬퍼하던 녀석과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녀석이 애처가가 되어있다는 것도, 기타만 튕기며 놀던 녀석이 쉬지도 않고 일하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다.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고, 응원하는 거야.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아, 나 지금 해외에 있잖아 인마."
왜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냐는 친구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대꾸한다. 이 말도 물론 진심이기야 하겠다만, 그럼에도 가끔 녀석들에게 연락을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번듯한 녀석들의 모습보다 이때의 보잘것없던 한량스러움을 훨씬 기억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