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해피하면, 라이프가 해피하다.
일찍이 일본의 카피라이터 '단노 카즈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같은 "사랑해"가 아니다.
여자를 사귀면 누구에게나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조차 "사랑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이 두 가지의 "사랑해"가 같을 리가 없다.
단노 카즈오의 이 사랑이야기는 나 역시 지금까지 많이 인용해 왔었는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단노 카즈오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누군지 알기 위해 야후 재팬을 뒤져보기까지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글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나 신경 쓰이는 일이지,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그냥 넘어가는 것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언젠가는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조미료는 오직 먹는 이를 위한 그리움'이다.라고 한국의 유명 마케터 이동민은 말했다.'와도 같은 말도 안 되는 인용을 갖다 붙이는 장난을 계획해 본다.)
그래, 이런 인용이야 어찌 되었건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에게 있어서도 그렇게 '사랑해'라는 고백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 친구(현 와이프)에게 했던 첫 고백의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고 할까. 그러니까 여기서 궁금해할 누군가를 위해 잠시 돌아보자면 나의 고백은 다음과 같다.
어느 주말 그녀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가서 전시회를 보기로 했다. 전시회를 보는 내내, 전시회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돌이켜 보자면 정말이지 그때 무슨 전시를 봤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당시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리의 전시회라고 했을지라도 눈에 들어왔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의외로 전시회 따위는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할일없이 산책을 했고, 분수 앞에 앉았다. 분수의 물줄기에 맞춰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온 것만 간신히 기억하는데 그곳에 마주 앉아 나는 고백했다. "나와 사귀어 주세요"라고.
나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손을 잡게 되는 전개의 연애를 그리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확실히 '나와 사귀자'라는 말을 해야만 했는데,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때 나는 몹시도 다리를 떨었다고 한다.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니 정말 폼 안 나는 일이지만, 고백을 하는 입자에서 생각해 보자면 이것은 당연히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승/패가 명확하고,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것을 잃는다.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부르는 'winner takes all'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어찌 되건 세상의 고백남은 그 디데이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거나, 친구들과 술판을 벌인다.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 승부에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내 핑계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 이 정도의 긴장감을 느낀 적이 딱 한번 있는데, 바로 2년 전 내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낭독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 내 결혼식도 그리 긴장하지 않았었는데(정신없이 지나가서 긴장할 시간도 없었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소중한 친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사의 한 모서리를 담당하게 되니 절로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까.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부탁을 받았으니 나는 퍽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신랑/신부를 앞에 두고, 준비해온 축사를 잘 읽어 가던 와중이었다. 축사를 적은 글의 중반 정도일까. 유머를 섞은 문장에서 의도했던 대로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그 반응을 들으며 머릿속에 '긴장하지 않고 잘 읽고 있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애석하게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막 구출된 사람처럼 낭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구출된 모양새라니... 실제로 물에 빠져도 충분히 살아 나올 만큼의 수영실력을 가진 나로서는 더욱 억울하기야 했다만 서도, 진심으로 아쉬운 것은 애써 신경 써 작성한 문장들의 느낌을 신랑/신부를 위해 잘 살려주지 못한 미안함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와는 별개로 딱 하나의 문장만큼은 자화자찬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축사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맺음말은 다음과 같다.
"wife가 happy 하면, life가 happy 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부 S양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니 우리들 그리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용기 내어 고백하고 와이프를 행복하게 한다는 목표를 잊지 않는 다면, 삶에서의 행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으려나.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할 정도이니, 나는 퍽이나 '이태오'(부부의 세계)가 싫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