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숲 속 어딘가에서.
아내가 실종됐다. 다시 말해, 오늘로써 아내가 사라진 지 정확히 1주일이 지났다. 처음 그녀가 숲으로 향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도통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내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거기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으로부터 훌쩍 떨어진 저 먼 서쪽 땅이기도 하다. 그러니 의사소통도 완벽하지 않은 이 곳에서의 근 2년간 그녀는 매일 '원더 우먼'으로 살아와야 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일까 그녀의 학기는 마침 방학을 맞이 했고, 세계적인 전염병 탓에 업무의 루틴에도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원더 우먼'에게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기분 전환을 제안했다. "요즘 숲이 그렇게 힐링에 좋다고 하더라, 잠시 숲이라도 가서 기분 전환하고 오는 것은 어때?" 하지만 제안을 건넬 때만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꾐에 이끌려 그녀가 사라졌다면 이참에 나도 한번 리암 니슨 형님을 잔뜩 흉내 내어 "I don't know who you are..."로 시작하는 명언을 날려보겠으나, 사실 그럴 것도 없다. 아내는 매일 밤 소파에 앉아 닌텐도 스위치를 붙잡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바로 요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게임, '동물의 숲'이야기다.
게임을 하느라 방 안에 틀어박혀 실종 신고를 당하는 것은 아내와의 연애 시절부터 본래 나의 역할이고, 토라지는 것은 아내의 몫인데 이거 먼가 이상하다. 특히나 지금까지 축적된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모든 여성 이콜(=) 게임을 싫어한다.'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처음 경험해보는 이 사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게 묘한 감정을 전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게임만 하는 것이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할까.
하지만 '묘한 마음'이라는 것은 아내와의 전쟁을 위한 대의명분으로써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차피 항상 지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지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이다. 또한 계획 없는 선전포고로 이 전쟁에서 다소의 이득을 얻는다 한들, 앞으로 언젠가, 어쩌면 조만간 시작될 나의 게임 생활마저 못하게 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제법 깊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사고하기 때문이라 하였던가. 나는 결국 해답을 찾았다. '내게 생긴 묘한 감정은 결국, 아내가 무엇인가에 집중함에 따라 생기는 나와의 단절감'이었다. 조금 더 쉽고 간단하게 말해 '나의 심심함에 대한 삐짐'이라고 할까. 이것은 마치 "지구는 평평하지 않소!"라 외쳤던 갈릴레오의 발언만큼이나 지금껏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여성은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라는 나의 전제는 애초에 틀린 것이었다. 여성은 게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으로 인해 생기는 단절이나 관심의 부재, 요즘 말로 연인 사이의 '사회적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 싫은 것뿐이었다.
반면 아내는 이런 나의 깨달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동물의 숲 속 어딘가에서 한껏 기쁨에 들떠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편히 만나고, 그들과 함께 벚꽃 놀이를 한다. 새로운 옷을 디자인하고, 자신만의 깃발을 만드느라 고민하는 것이 사실 귀엽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원더 우먼'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아내에게 이 거리감을 흔쾌히 내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에 대한 글을 적고, 그림을 그려 본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얼핏 보기에는 차갑지만, 실제 의미는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는 아직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 4월 10일. 모든 게이머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는 '파이널 판타지 7'리메이크판이 발매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