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여성의 인스타에 '좋아요' 누르기.

보첼리와 조던의 Good to Great.

by 이동민

최근 멋진 영상을 몇 개 보았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텅 빈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부르는 노래라던지(이건 정말 끝내준다. 이 글을 읽게 되신 분께서는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시길!), 넷플릭스에서 새로 시작한 '마이클 도전 다큐(더 라스트 댄스)'가 그것이다.


보첼리는 노래를 부르고, 조던은 공을 던졌지만 두 개의 영상이 내게 주는 울림의 종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첼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을 위해 치유와 희망을 노래했고, 조던은 시카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마지막까지 투지 가득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게 했다. 결국 예술가들의 일이란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위대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조던이 예술가인가'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뛰어난 업적이나 뛰어난 맛을 마주하고서는 "진짜 이거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성싶다. 하물며 '타짜'의 '편 경장(배우 백윤식)'역시 "나는 구라를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지"라고 자화자찬했고, 편 경장의 부고를 들은 '아귀(배우 김윤석)' 역시 "그 양반 갈 때도 정말 예술로 가는구먼"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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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종종 무엇이 위대함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까짓 거 액셀 한번 밟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고니(배우 조승우)'의 도전의식일까, 아니면 좋은 것보다 더 발전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결국 위대함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Good to Great'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을 했듯,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저 훌륭함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방향성 자체가 개인의 호의호식에 맞춰져 있는 나로서는 '위대한'예술은 우러러 보되, 그것을 만족함에 있어서는 'Good으로 충분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위대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상당한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일요일 급하게 프링글스가 먹고 싶어 진 '안드레아 보첼리'는 집 앞 편의점에 나가기 위해서도 무엇인가 턱시도를 차려입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잔돈이 남은 김에 심심풀이로 로또를 사보기도 민망할 것 같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반바지를 입고 샌들에 양말까지 올려 신은(왠지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보첼리는 간신히 도전에 성공하지만 아뿔싸! 잠시 방심한 사이 파파라치에게 사진 한 장을 찍혀버릴 수도 있다.


'밀라노에서 힐링을 노래한 보첼리, 휴일에 로또를 사다'라는 기사가 타블로이드지에 실리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처음에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로또를 샀대!" "아니 그런 위대한 사람이 프링글스도 먹어?"로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아니 알고 보니 그 사람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들의 인스타에 잔뜩 '좋아요'를 눌렀더라니까"까지 발전하고 만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굳이 위대한 자가 되지 않아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알고 보면 반바지를 입고, 편의점에 갈 수 있는 일이란 굉장히 멋진 것이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위대한 생은 다 같이 다음번에 언젠가 마음에 내킬 때 한번 해보는 것으로 합시다. 무엇보다 '좋아요'정도는 누르고 싶을 때 눌러야 하지 않겠어요? 머 그렇다고 보첼리나 조던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여하튼 그래서인지 나는 '위대함'까지는 몰라도 훌륭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하루키가 더 좋더라고요. 게다가 하루키는 반바지 차림으로 로또를 사고, 비키니 여성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 한들 원래 그런 사람일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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