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변명.
야마모토는 긴장하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으흠"
야마모토는 짤막하게 숨을 뱉으며, 피고 있던 담배를 파도 위에 던졌다. 이 드넓은 바다 위에서 한순간 공기의 움직임으로 바람의 방향과 물결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야마모토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나이 벌써 64세. 그가 바다로 나온 지 35년이 지났다. 젊은 시절, 우연히 따라나서게 되어 참치 어선을 탄 이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몇 번의 강렬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신기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흘려보내기 마련이지만 젊은 날의 야마모토는 달랐다. 우연히 친척의 일손을 도와 참치선을 탔던 야마모토는 그때가 바로 자신의 인생이 변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고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다음 날,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배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강렬하게 이끌었는지는 야마모토 자신 조차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확실히 느낀 것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의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파도를 읽고, 바람을 따르고, 참치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생명을 잃는 것은 참치뿐이지만, 참치를 얻지 못하면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결국 야마모토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홀로 싸워온 지난 35년이었다.
"쾅!"
그 순간 큰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때렸고, 야마모토는 휘청였다.
"안되지, 안되고 말고..."
지난 세월의 상념을 뒤로 한채, 야마모토는 키를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사실 야마모토가 참치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지는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그 사이 바다에는 새로운 녀석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바로 미나미 형제였다. 미나미 형제는 배를 탄지 이제 막 3년이 채 안 되는 신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참치 레이더'를 사용했고, 그런 그들에게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냄새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야마모토는 그런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자카야에서 마주칠 때면 미나미 형제는 잊지 않고 야마모토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지만, 야마모토는 결코 그들에게 다정한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미나미 형제를 칭송하는 것도 싫었고, 미나미 형제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여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미나미 형제에게 잔뜩 훈계를 한 이후로는 마을 사람들도 왠지 자신에게서 돌아선 것 같다 느끼는 야마모토였다.
"그래 좋아, 저기들 있었군!"
야마모토의 구식 음파탐지기에 익숙하고도 기다려 온 것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20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 참치 군단이 틀림없었다. 이를 꽉 물고 기다리고 있던 야마모토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징어에 낚싯줄을 채워 던지고, 낚싯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전기충격기를 던진다.' 수백 번은 반복했던 그 움직임을 다시 한번 되내어보는 야마모토.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빠, 이제 나가야지!!"
"언제까지 티브이만 보고 있을 거야! 배 안 고파?" 아내가 소리쳤다.
"아니... 이제 곧 끝날 것 같은데..." 나는 작게나마 대꾸해보지만,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티브이는 꺼진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참치에 목숨을 건 남자 이야기'에 내가 목숨을 걸 필요는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아마도 2017년 12월 31일, 도쿄에서의 기억이다. 그 날 그렇게 우리가 저녁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다 보지 못했던 다큐멘터리의 후반은 아직도 너무나 궁금하기 짝이 없다.
2020년 4월 23일 현재. 아내는 '동물의 숲'에 열심이다. '참치, 청새치, 상어'들을 잡으려고 필사적이지만 그녀는 도통 잡을 수가 없다. 그녀의 요청으로 나 역시 미끼를 만들어 낚시에 나서보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거 봐, 그때 참치잡이 다큐를 다 보지 않아서 생긴 야마모토 씨의 저주라고." 이제야 나는 제대로 변명하고, 아내는 수긍하기 시작했다.
*1. 일본에는 [참치에 인생을 건 사나이들]이라는 다큐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연말에 한 편씩 방영합니다.
*2. 아마도 2017년 말의 내용입니다만, 사실 등장인물의 이름 [야마모토, 미나미, 3년간의 무실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허구임을 말해둡니다. 혹시나 해당 다큐의 애청자께서 읽으시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길!
*3.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보니, 유튜브에 전부 한글 자막까지 포함해서 업로드가 되어 있군요.
*4. 소설 같은 구성으로 마지막 직전까지 독자가 몰입하는 것에 배팅해 보았습니다만, 어떠셨나요?
*5. 언젠가는 단편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세이만이 가진 위트는 살리지 못하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