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너무 많다.

보이스피싱 이야기 1.

by 이동민

"여보세요, XX 씨 되시죠?, 서울지검 XX조사관입니다."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이따위라니! 받는 순간 생각한다. '이 보이스 피싱 녀석들은 참 지치지도 않는구나.' 개그 코미디의 소재가 된지도 한참이 되었고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어렵지 않게 사례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이들은 한결같이 노력한다. 그럼에도 보이스피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결국 어딘가에는 아직도 당하는 사람이 많고, 나의 개인 정보 따위는 이미 세고 세게 넘쳐흘러 다닌다는 것이겠다. 간단하게 그들에게 있어 아직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사실 이러한 종류의 전화를 받은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벌써 한국 전화기를 꺼놓고 산지 3-4개월 정도는 지났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당연히 보이스 피싱도 없다. 전화기를 어디두었는지 조차 아내에게 물어봐야 알 것 같은데, 언젠가 전화기를 찾아 전원을 올린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기도 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원을 켜면 대략 몇 백개의 문자가 한 번에 도착할 것이고(그중 유효 문자는 5개 미만이라 확신한다.) 삭제하는데만 해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나는 이 피싱을 벗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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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아니다. '어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리겠는가.' 한국 전화기가 잠자고 있는 대신, 깨어있는 유럽 전화기는 울리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다만 '서울지검 조사관들'의 경우와 다른 것은 아직 여기서는 내 개인정보가 한국만큼은 아니라서 전화가 걸려 오는 빈도가 상당히 낮고, 의사소통도 그들이 요구하는 최저 수준만큼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령 이런 식이다.


"여보세요, 지금 내가 너에게 배달된 물건을 가져갈 거야, 그러니 너네 집 주소가..."

유창한 동유럽 언어로 그가 말한다.


"아 그래, 1분만 기다려 금방 집 앞으로 나갈게" 내가 말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좀 이따 갈 거라고, 근데 미리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데.."

그가 또 유창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아 그래, 1분만 기다려 곧 나간다고" 내가 말한다.


그리고 이 대화가 3번 정도 반복되면 내게 전화를 건 이 친구도 좀 당황하기 마련이다.


"너네 집 주소가 XXX-XX 맞아?" - 그가 묻는다.


"그래서 언제 올 거라고?" - 내가 말한다.


그리고 이 대화가 또 한 3차례 정도 반복되면 녀석은 말한다.


"내가 좀 이따 다시 전화할게." 그리고 그의 전화는 다시 걸려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나는 다시 문자를 보낸다. "너 언제 온다고?"


상대는 답이 없다. 그러니까 사기도 어느 정도 최소 요구 사항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더 중요한 사실은 사실 위의 대화 내용 조차 정확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름 이 언어를 다소 공부했다는 게 이 모양이니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문어체와 실생활에서 쓰는 말은 다르다. '낙지, 주꾸미, 오징어 같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하고 합리화해 볼 따름이다. 그나저나 이것 참 곤란하다. 알고 보니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는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던 것이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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