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단상.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무렵이 다 되어가면 꼭 볼 수 있었던 현수막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던 지하철역 출구 앞이 그 현수막 자리였다. 놀랍게도 그 현수막을 걸었던 단체의 이름은 불교연합회(?)였고,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따뜻한 연말을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이제 부처님 오신 날에도 역시 같은 자리에 기독교 연합의 축하 현수막을 볼 수가 있었다. 기독교와 불교,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현수막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더 나이가 들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는 '스님'에 '님'자가 그리 붙이기 싫으셨었나 보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도중 종종 스님을 지칭해 "'스'가 말이지."라는 식으로 곧잘 이야기하셨었다. 나는 머리가 더 커진 지금이 되어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시절 나의 목사님이 좁아 보였고, 그 농에 웃었던 예배당에 나와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이 불쾌했다. 존경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좀 비겁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니. 한국에서 수십 년 살아가고 있을 때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날은 그저 감사한 휴일에 가까워졌는데 해외에서 맞이하고 있다 보니 문득 더 감상적이 된다고 할까. 특히 어린 시절의 나에게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단어는 곧 '연등 행사'를 의미하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7시 경이되면 어머니와 함께 나가 그 행렬을 바라보고는 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항상 만나던 사거리를 지나, 우리들이 졸업한 중학교를 통과해 가던 그 행렬을 바라보았었다. 물론 20살 이후에는 노느라 별로 본 기억이 없지만.
독실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불교 신자이다. 기독교인이 평소 기도를 하는 것에 비해 어머니는 일상에서 거의 부처님을 찾지 않으신다. 하지만 불교의 특정한 날에는 꼭 절을 다녀오시고는 한다. 그리고 떡이나 팥죽 같은 것을 사 오셔서 권하신다. 딱 한번 정도 어머니를 따라 그 절에 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은 도시 한복판에 있었으니 절 역시도 도시 한복판에 있었는데, 도시의 절이라 해도 이건 너무 현대식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의 고즈넉함이 좋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종종 다니시는 그 절은 이후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다.
어머님은 절에 다니시지만, 나는 교회에 다녔던 것처럼 나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왔다. 때때로 어머니는 내게 교회 좀 잘 나가라고 권하기도 하신다. 악습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가풍은 내게 긍정적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삶은 녹록지 않고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에게는 의지할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평생을 가정주부로써 나머지 구성원들의 배터리 역할을 해오셨지만, 앞에 말한 목사님, 그러니까 매주 불특정 다수 앞에서 연설을 하는 누군가보다는 훨씬 멋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본의 아니게 예전 나의 목사님 디스를 한 꼴이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이해해 주시길...)
오늘같이 연휴가 이어지는 날, 우리들은 함께 모여 새벽까지 놀고는 했다. 방 안을 눈뜨기도 힘들 정도로 담배연기로 가득 채우고서는 카드를 쳤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민영이는 우리 중 가장 먼저 돈을 벌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경제력이란 전혀 없었던 대학생 시절부터 그는 8,9명이 되는 멤버들을 먹이고, 태워 다니고, 공간을 제공해왔다.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늘 농담과 개그만 치는 민영이지만 어찌 보면 우리 중 유일하게 '빅 브라더'같은 느낌이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민영이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카톡이 오랜만에 이 녀석들의 대화로 가득 차 있다. 저녁때 모인 그들은 오늘 밥을 먹고 무엇을 할까. 다 같이 피시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려나 아니면 또다시 두더지 굴을 만들며 카드를 치려나 기대된다. 동네에는 아직 그 지하철 출구 앞에 현수막이 걸려있을지도 궁금하고, 유례없는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연등행렬이 이어지는지도 보고 싶다. 달력에 예쁘게 만들어진 연휴에 모두들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