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힘이 없습니다. 전 총구로 할 것입니다. -미스터 선샤인 고애신'
제법 멀리 떨어진 해외에서 아내와 둘이 살며 생긴 일상(?)이 있다. 원래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던 우리였는데(심지어 총각시절의 나는 집에 티브이도 없었다) 이제는 꽤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이 아마 우리의 인생 중 가장 드라마를 많이 보는 시기가 아닐까. 아내는 드라마를 많이 보면 '아 나 너무 드라마 폐인인가'하며 일종의 자책을 하기도 하는데(아마도 지금껏 성실함을 유지해왔기 때문이겠지)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들 거진 다 그 본질은 어차피 스토리텔링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드라마, 게임, 독서를 하고 안 하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어떤 드라마를 보고, 어떤 게임을 하며, 누구의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들 중 '마음의 양식'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오직 '독서'라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에 대해 조금 더 투덜거려보자면, '아다치 미츠루'가 쓴 'H1, H2'라는 만화는 충분히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만화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고, '동물의 숲'은 좋은 힐링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지 해로운 게임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 참 독서라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글을 끄적이는 사람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드라마나 게임이 나와 아내의 삶에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은 어느 주말 '부다페스트'에 여행을 계획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숙소 예약도 해두었고, 여행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해하는 우리는 분명 들떠있었다. 출발 전 날 '미스터 선샤인'시청을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결국 우리는 미스터 선샤인을 보느라 꼴딱 밤을 지새워버렸고, 도저히 운전을 해서 갈 수도 없을뿐더러, 간다 한들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여행 전면 취소. 그리고 부다페스트는 그렇게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가 되었다.
"미스터 선샤인이 그렇게 재미있었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응! 엄청, 강추야"라고 대답할 만큼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부다페스트 여행을 물릴 만큼의 가치가 있었냐 한다면 더 대답하기란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한들 아내와 나는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나란히 누워 밤새워 드라마를 본 추억 역시 여행만큼이나 재미난 기억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 마무리한 또 한 편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인즉슨, '사람이 죽기 전에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 꿈에서 우리는 삶에서 가장 후회하는 선택을 한 순간으로 돌아가, 그 선택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얻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대략 인생의 절반 가량을 살아보니 후회가 되는 것들이 많다. 분명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생겨나겠지. 하지만 내가 신을 만나게 되는 날에는 '신께서 충분히 기분이 좋으시다면' 나에게는 후회의 순간 대신 내가 느낀 행복한 순간을 한번 더 경험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행복했던 순간 역시 너무나 많지만, 분명 나는 아내와 나란히 누워 드라마를 보던 기억도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니까 실은 드라마도 게임도 잘못은 없다.
*그렇지만 몰아보기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겠죠(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