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려면 생각나는 매몰비용에 대해.
"글에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아".. 간혹 나의 글을 다 읽고서는 소감을 말해주는 아내의 명대사이다. 다채로운 비판을 수용해가는 나이지만 가끔 아내로부터 듣게 되는 이 영혼 운운을 맞이할 때면, 참 뭐라고 할까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바야흐로 지금은 2020년, 샤머니즘의 시대도 아니고 '사랑과 영혼'이 흥행한 8-90년대도 아닌데 어찌 글에 내 영혼을 넣을 수 있을까 심통을 부려 본다. 물론,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준 그녀에게 티 나게 심통을 부릴 수는 없으니, 나 혼자 속으로 구시렁거린다는 이야기.
그런데 사실 아내의 이 영혼 수확 드립은 매우 비논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신통방통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작성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억지로 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그녀는 사랑과 영혼의 '우피 골드버그'라도 되는 것인지 생각하며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글을 다 삭제하고 만다. 뭐라고 할까, 그녀가 말하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글의 대부분은 아예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어 고치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경우가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물론 문단을 나누어 쓰다 보면 '아,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해도 삭제해버리기는 아까운데..'라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일부분 때문에 나머지를 조정해버린다면, 결국은 전체 이야기의 맥락이 바뀌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좀 아쉬워도 '읍참마속'하는 수밖에 엇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제갈량은 마속의 목을 베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적어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만을 따로 저장해두었다가 언젠가 다시 써먹을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은가. 여하튼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런 매몰비용을 안타까워해서는 될 일도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친구 A가 결혼하기 전, 우리 모두는 결코 안심하지 못했다. 심지어 A와 가장 가까운 친구는 결혼 식장에서조차 A에게 다가가 "정말 괜찮은 거야? 지금이라도 선택을 돌리기에 늦지 않았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A에게는 다소 미안하긴 했지만 그만큼이나 우리는 그 'A의 결혼 상대'에 대해 못 미덥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그간의 연애를 지켜본 결과 그 사람은 A를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A가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 일종의 매몰 비용(그러니까 지금까지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때문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가 감정적으로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누군가는 내게 당사자도 아닌 녀석이 '뭐 묻은 놈이 뭐 묻은 놈을 탓한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허세가 싫었다. 허세 가득한 것이야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매한가지라 그 자체에 위화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허세 있는 척 허세 부리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그의 행동들은 마치 '애써 노력해도 B급 광고밖에 만들지 못하는 마케터가, 이번에는 일부러 신경 써 B급 광고를 만들었다'며 '나 좀 인정해달라'라고 생떼 부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어떻게 되든 이번 생애 한 번은 그 사람과 살아봐야겠다고 결정했어" 그래도 결국 A는 당당하게 말했고, 머지않아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A 역시 이 사람에 대한 주변의 걱정을 왜 몰랐겠는가, 본인이 가장 잘 알았겠지. 그나저나 A의 저 대사는 참 예술이다 싶다. 저것이야 말로 내 기억에 남을만한 진짜 허세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가끔 누군가가 매몰된 시간을 핑계로 고민에 빠져 있는 걸 보게 될 때면, 저 A의 대사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매몰비용 따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겉멋이지.' 글을 지우고 다시 쓰던, 연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진로를 바꾸거나 유지하든 간에 비겁한 핑계를 대는 것은 질색이다. 글을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며 생각한다.
#내가 정한 글쓰기의 규칙을 벗어나 버린 글이 되었다죠(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