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

헤어짐의 서든어택 2. - 이어지는 이야기.

by 이동민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이라는 말은 내가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단어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계란 스크램블에 햄을 곁들인 타파스'라고 할까. 그러니까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우리가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가장 먼저 경험한 스페인 음식이 바로 이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한 조각 밖에 안 되는 타파스에 불과한 것 같지만 우리는 물론 세트를 주문했고,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가 함께 나온 이 요리는 정말 가성비와 가심비를 만족시켰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 우리의 아침은 언제나 이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이 되었다.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 요리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그녀는 스페인 출장을 가게 되면 꼭 공항에서라도 시간을 내어 이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을 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는 신논현 우리 집 한쪽 벽에 하얀 분필로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이라 자그마하게 써두기도 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참고로 내가 살던 방의 한쪽 벽면은 칠판 페인트를 발라두어서 마음껏 낙서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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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긴 하지만 또 하나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기억하는 것은 바람이 좋았던 사그리다 파밀리에의 앞마당이었다. 난간에 걸터앉은 우리는 그곳에서 '소매치기 찾기 놀이'에 열중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열심히 가이드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도, 무엇인가 험상궃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저 사람 필시 소매치기가 틀림없어"혹은 "지금 저 왼쪽에 있는 여자랑 눈빛 교환하는 거 봤어? 틀림없이 한패야"라고 멋대로 상상하고 소곤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한참이나 바람을 쏘이며 악당 찾기에 열중했었다.


그러게.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사그리다 파밀리에나 캄프 누 그고 가우디의 여러 건축물에 압도당하기도 했지만, 정작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우에보스 로토스 콘 하몽'이라던지 '악당 찾기'와도 같은 사소한 기억들이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격언이 한번 더 와 닿는 순간이라고 할까.


돌이켜 보면 항상 그래 왔고 지금도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모두와 떨어진 동유럽에 거주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상황이나 조건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 오롯이 우리 둘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간이 좋건, 나쁘건 지금과 같은 시간은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다시는 얻지 못할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더 이런 시절의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남은 삶을 한량처럼 보내고 싶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나는 아직 이러한 많은 것들을 고려치 못하던 애송이에 불과했었고,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현명한 여성에게는 애송이를 상대할 시간 따위는 없애는 것이 합리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에세이 두 편에 걸쳐 적은 '바르셀로나와 이별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정치인 마냥,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 나의 아내는 다시 한번 나의 글을 읽고 불현듯 위와 같은 이유를 떠올려 말해주었고, 곧 내가 깨닫지 못하던 진실은 내가 적은 지난 글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모르는 내 과거의 진실 대부분은 단지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고스란히 기억은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 참 담아두었던 옛이야기 들을 하나둘씩 꺼낼 좋은 핑계가 생겼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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