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가격 인상'과 '함께 하던 동료'들을 추억하며.
실시간 검색어에 '샤넬 가격 인상'이 올라와 있다. 이른 아침 아내가 출근을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서도 샤넬이 가격을 더 인상한다며 소식을 전했었는데, 역시나 네이버에도 올라있었고 관련 기사도 잔득이다. 기사를 클릭해보니 샤넬이 가격 인상을 하는 때는 사람들이 백화점 오픈 전 시간부터 줄을 서있다고 한다. 실제로 줄을 서있는지 아니면 웅성거리며 몰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이 종소리를 울리며 문을 열면, 어김없이 레이스는 벌어진다고 한다. 엎치락뒤치락하기도 하고 하나 남은 물건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고.
나 역시 일본에 거주할 때, 상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앞에 줄을 서본일이 있다. 물론 샤넬은 아니었다. 말하기 좀 부끄럽기도 한데 실은 게임 시디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것이다. 일본은 게임 강국인 만큼 나 같은 사람들은 흔했었던지라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같은 명작의 발매일에는 그러한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퇴근 후 질서 정연하게 우리(게임 마니아들)는 게임의 발매시간을 기다렸는데 그 모습들이 아직 눈에 선하다.
줄은 매장의 바깥까지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베이지색의 얇은 코트를 입은 직장인부터 낡은 점퍼를 대충 입은 노동자 차림의 나까지 모두 함께 모진 바람을 견디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들만큼은 빛나고 있었다(라고 믿고 싶다..) 얼마간이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정각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발매는 시작됐고 모두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대기열의 앞쪽에 서있던 이들은 시디를 손에 넣자마자 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지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심장은 쿵쾅거린다.
사실은 그때가 내게 있어서는 일본 생황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였다. 게임 시디가 샤넬과 달랐던 것은 먼저 '재고가 동날 리가 없다'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기다리고만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 한국 게이머인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일본에 사는 만큼,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하루 이틀 먼저 신작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우월감이었던 같다(당시에는 전 세계 동시 발매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그 날 만큼은 나는 마치 세상에서 나 혼자 플레이하는 착각을 하고는 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일화들을 떠올릴 때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는 한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올드 게이머에게는 공감이 될 수 있으려나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거 누군가에게는 꽤나 오타쿠 이야기로 비칠 수도 있겠구나'염려되기도 한다. 그런데 원래 각자의 취미 생활 혹은 고유의 집착이라는 것이 철저한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특정 자전거에 수백만 원을 투자하고서는 오늘도 내게 안장을 새로 교체했다며 사진을 보내오는 내 친구에 대해 그 누구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샤넬을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백화점 오픈을 기다리며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 역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 취득 과정에 있어 부정한 방법을 쓴다거나, 목적 자체가 '되팔기를 위한 다량구매'라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무턱대고 "아니 저 자전거, 저 가방에 그 많은 돈을 쓰다니, 정신 나갔군!"이라고 하는 것은 '선을 넘어가는 참견'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갑작스레 고백을 해보자면 샤넬백을 구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긴 했다. 물욕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고야 마는 성미를 지닌 나조차도 샤넬백을 구하기까지는 정말 힘겨웠다고 할까. 비싼 가격이라는 조건 위에 한정된 수량이라는 난제가 있으니, 나는 매일 샤넬에 전화를 해야 했고 내가 원하는 상품의 재고와 매장별 배송에 대해 매일 파악해야 했다(샤넬에서는 일정을 일단위로만 공개했었다)그리고 그럼에도 이 방식으로는 절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샤넬의 보이 백'을 정가에, 그것도 매장에서 구할 수 있었냐고?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평생 한번 정도는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