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May 15. 2020

멋없게 늙고 있다.

진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언어의 온도.

'바르셀로나'에서 '피게레스'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했다. 바르셀로나의 기차역은 전혀 허름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모양의 유리로 된 티켓 창구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매원께서 영어를 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그래도 유럽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인데, 교통의 요지에서 티켓을 사는 정도의 간단한 영어가 통하지 않다니.' 그렇게 실망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하는 찰나 유리 편 너머의 판매원 아저씨는 '씩'하고 웃었다.


"바르셀로나-피게레스, 피게레스-바르셀로나" 아저씨는 빠르게 말했고, 정말 딱 저 네 마디로 모든 상황은 해결됐다. 그러니까 '바르셀로나에서 피게레스를 갔다가, 당일 오후에 다시 피게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도착하는 왕복 티켓 2장'이라는 긴 문장을 아저씨는 이렇게 단 네 마디로 간단하게 마무리했던 것이다. 그 특유의 리드미컬한 억양으로 빠르게 우리의 니즈를 해결한 아저씨는 너무나도 스페인 사람스럽게 윙크했다. 그러니 애초부터 그가 영어를 해야 할 필요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카이로 시내에서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때는 더욱 심했다. 특히나 그때는 비행기 이륙까지 한 시간이 급한 위기상황이기도 했다. 바삐 택시를 잡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이게 웬걸, 기사 아저씨께서는 정말 영어의 'ㅇ'자도 모르시는 것이 아닌가(영어의 'ㅇ'이라니..) 아니 사실 이건 영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단지 한마디 'airport'라는 의미만 통하면 됐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안돼서 결국 ['공항'이라는 의미가 통하지 않아 비행기를 놓친 남자]라는 흑역사가 생길 판이었다. 이거 여행 좀 해봤다는 스스로에게도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인간은 위기 앞에서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절체절명의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이 반응했다. '토르'나 '플래시'같은 초능력을 발휘했었다면 더 멋있었겠지만, 그 대신 나는 손바닥을 펴고는 대각선을 그리며 천천히 팔을 올렸다. 동시에 입으로는 "피슈 우 우웅~"하는 소리를 내며 말이다. 마치 아이와 함께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놀아주는 포즈를 취한 채 소리 내었다. 단지 아이의 장난감 비행기 대신 나의 손바닥이 그 역할까지 대신해주었을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참 볼만했겠다 싶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아저씨는 액셀을 밟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잘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쉴 새 없이 떠들며 흙이 뒤덮인 도로를 나아갔다. 나는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는 즐거워하며 신나게 달렸다. 여행 초반에 인연을 맺게 되었던 이집트 현지인으로부터 배운 노래는 언제나 효과 만점이었다. "쏘 예쏘 하비비 아바 쏘"로 기억하는 이 노래는 여행 중 언젠가는 트럭 뒷자리에서도 불렀지만, 결국 마지막 택시 안에서도 신나게 부르게 되었다. 노래를 가르쳐 준 친구는 '그대의 눈 속에서 보석이 있지요'와 같은 가사라고 말했었다. 진실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하긴 가사의 내용이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언어가 통한다한들, 처음 만나게 된 사이에 나누는 진심도 별 느껴지지 않는 서로의 근황 또한 뭐가 궁금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들)에 대해 나는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감정의 전달이지, 언어의 전달이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외국인이 운전하는 차에 탈 기회는 훨씬 많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노래는커녕 갈수록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아졌고,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목적지를 손짓 발짓해가며 전할 필요도 없어졌다. 멋없게 늙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선을 넘어가는 참견은 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