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May 18. 2020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사고뭉치 아내의 생일.

"햄버거에 패티가 없어, 이럴 수가!" 지난 일요일 점심으로 배달시킨 맥도널드 햄버거 하나에 패티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티뿐만이 아니라, 토마토, 계란, 양배추, 치즈 등 햄버거를 이루고 있는 모든 알맹이가 빠져있었다. 그러니까 그 작은 햄버거 종이 상자를 열어보니 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햄버거 빵 뚜껑과 밑바닥 두 조각만이 머쓱하게 인사했다. 이것 참, 가끔 햄버거를 먹을 때 빵을 제외하고 먹는 사람은 봤어도 빵만 먹으려고 햄버거를 주문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클라이 막스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 그러니까 영수증을 살펴보던 아내는 바로 범인을 찾아냈고, 그 범인은 바로 아내 자신이었다. 우버 잇츠 어플은 당연히 체코어로 되어 있었고, 체코어는 한국인이 배우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언어가 아니던가. 'bez'(without=제외하고)라는 뜻을 잠시 헷갈린 아내는 속 알맹이 추가 메뉴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체크했고, 그 결과 모든 메뉴가 추가되어 화려해야 했던 햄버거는 기대와는 다르게 모든 메뉴를 제외한 채 빵만 배달되어 온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선택하기 귀찮았기 때문에) 세트메뉴로 주문해 제대로 온 나의 햄버거를 절반으로 나누었고, 본의 아닌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평소의 나답지 않게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나의 햄버거를 절반으로 나누어야 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설마요!). 뭐라고 할까 사소한 실수 때문에 아내가 자신이 원했던 햄버거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이 마음에 안 들었고 속이 상했다. 물론, 그런 나의 기분은 "웃고 넘길일이야, 심각해지지 말라고!"라는 아내의 한마디에 금세 자취를 감추어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런 나의 속상함이 바로 부모의 마음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거나 놀이터에서 자빠져 상처가 생겨 돌아올 때면 어머니는 내게 짜증을 내고는 하셨다. "아니 너는 왜 넘어지고 그러니!?" 상처가 나서 아픈 것은 나인데, 부모님으로부터 혼까지 나니 더욱 서운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고 독립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다 보니 조금씩 이런 마음을 배워가고 있다. 특히나 아내는 이런 '사소한 실수'분야에서는 독보적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아내에게 있어서 어딘가에 지갑, 우산, 열쇠 같은 물건을 놓고 오는 정도의 실수는 별다른 일도 아니다. 가끔은 마트 선반에서 유리병을 떨어뜨려 깨뜨리기도 하고, 실수로 시어머니를 친구들과의 단톡 방에 초대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는 가끔 아내가 평범한 직장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이야 귀여운 사고뭉치 정도로 끝나겠지만, 만약 '미사일'관리라도 하는 군수권자였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아마도 이미 세계대전이 몇 차례나 일어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뉴스에서 속보를 전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향해 미사일을 날렸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아내의 생일이다. 밤 12시가 넘어 달력의 일자가 바뀌는 순간 아내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니, 아내는 뜬금없이 내게 올해의 덕담 한마디를 요구한다. 왜 본인의 한마디가 아니라 내게 한마디를 요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덕담을 한마디로 국한시켜 가장 소중한 말을 찾아보자니, 정말 딱 하나 이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더라. 그러니까 바로 '건강하기, 항상 운전 조심하기.'가 그것이다. 사실 아내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들에 불과하다.

작가의 이전글 멋없게 늙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