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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an 20. 2021

웅이의 그녀들.

맥라이언과 아오이유우 그리고 웅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어린 시절에 친했던 친구인 웅이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분당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오랜 기억은 희미해져 가기 마련이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는 분명 '맥 라이언'의 열성팬이었다. 나는 가끔 주말에 녀석의 집에 찾아가 밤을 새워 놀 때면 언젠가부터 한쪽 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맥 라이언의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맥 라이언이라니.' 당시로써도 맥 라이언은 청춘스타로 불릴 나이는 지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맥 라이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조차 '프렌치 키스'를 관람하였던 것은 결국 웅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자주는 아니었지만 웅이에게 방문을 거듭할수록 나는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맛보게 된 것도 같다. 그 시절 그를 통해 비로소 '너바나와 커트코베인'이라는 단어도 처음 접했고, '그린 데이'는 잘 모르지만 '바스켓 케이스'라는 노래는 정말 신나는구나. 하고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관심도/사고도 달라지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당으로 떠난 웅이는 적어도 그 시절의 나보다는 훨씬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를 통해 마지막으로 소개받았던 연예인이 바로 '아오이 유우'가 아닐까 싶다.


아오이 유우도, 손흥민도 눈밑의 점이 참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아오이 유우'는 누가 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형적인 미인이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의 팬은 아니었다. 일본의 중고 책방에서 일할 때조차 나는 널리고 널린 '아오이 유우'의 사진집이 아닌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칸노 미호'의 사진집을 사기도 했으니 말이다.(칸노 미호의 사진집은 귀국 전에 되팔고 왔는데, 그 사실이 나는 아직도 조금 후회된다.) 여하튼 중요치 않은 이러한 나의 선호와는 별개로 세월이 지나도 청순한 그녀를 볼 때면 나는 언제나 자동반사적으로 나의 옛 친구 웅이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리고 전례 없는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와중, 다시 오른 체코행 비행기에서 나는 수년만에 이 '아오이 유우'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만다. 국적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한국 영화와 한글 자막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고, 그나마 내용을 이해하며 볼만한 유일한 영화가 마침 그녀가 출연한 영화, '미야모토가 너에게'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영화가 불과 초중반 밖에 안되었는데 웬걸! 소심하고도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 '미야모토'가 '아오이 유우'와 핑크빛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장면을 최대한 떠올려보자면 이러했다.


인적의 드문 밤의 사거리.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어오는 남녀 주인공. 그런데 그들의 시야에 입을 맞추고 있는 다른 커플이 보이고 만다. 그리고 동시에 '미야모토'와 '아오이 유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눈이 마주치게 되는 그 순간 어찌 두 사람은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있을까. 보고 있는 나조차도 두근거렸던 그때, "탁"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결국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영화 초중반에 이렇게 설레고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니, 남아 있는 시간은 분명 위기에 위기를 맞이하겠구먼.'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불안함은 호기심을 이길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시 재생시킨 영화의 전개는 역시나 예상대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나저나 웅이는 과연 이 영화를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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