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문 Don Kim Dec 19. 2020

<Wadjah>(وجدة)와 함께 자전거 행진을

영화로 떠나는 아랍 여행 - 사우디아라비아

오늘, '영화로 떠나는 아랍 여행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뜨거운 모래 벌판? 메카, 메디나로 대표되는 이슬람에 철저한 무슬림의 나라? 우리가 흔히 종교성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아랍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고, 삶의 이야기를 일구어간다. 정도의 차이, 형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공 영화관이 없던 나라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다. 그런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영화관은 없(었)어도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 2012년 6월 19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사우디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영화 <와즈다>(Wadjah وجدة) (Haifaa al-Mansour 감독, 2012)이다. 90분 분량의 영화의 무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이 영화는


어린 배우들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낯선 사우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사우디 여성들의 일상이 애잔하게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자전거 타기’라는 단순한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는 나라 사우디에서, 주인공 소녀 와즈다의 꾸밈없는 시선과 일상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사우디의 현실이 가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3관왕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19개 부문 수상, 18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 결과, 사우디 사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법(샤리아)이 개정되어, 2013년 4월부터 사우디의 여성들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6월 24일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도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해 4월 중순에는 영화관이 재개장하였다. 35년 만의 일이었다. 난공불락과 같은 사우디 사회의 여성에 대한 엄격한 차별적 장벽도 그 높이가 낮아지고 두께가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줄거리?


무남독녀 와즈다는 10살이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이다. 활달하고 모험심이 강하다. 현대 음악을 즐기고 자기표현에 당당하다. 스스로 만든 소품이나 음악을 담은 테이프 등을 팔아서 용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친구 압달라가 자전거 타는 것이 부럽다. 어느 날 자기도 자전거를 사고 싶었다. 새 자전거가 동네 잡화점에 도착한 것을 보고 그것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자전거 값이 800 사우디 리얄이었다. 학교에서 몰래 팔찌 등의 장신구를 파는 것으로는 택도 안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꾸란 퀴즈대회와 암송대회 우승자에게 상금으로 1000 리얄을 준다는 광고를 접한다. 그래서 열심히 꾸란 낭송을 연습하고 열심히 꾸란 퀴즈대회를 준비했다. 마침내 그날, 우승을 차지했다.


교장선생님이 우승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 라고 묻자, 자전거를 사서 탈 것이라고 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자전거 타는 것은 금지된 것이고, 우승 상금으로 그런 것을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와즈다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지원 성금으로 내겠다고 발표했다. 와즈다는 슬퍼한다.


크게 실망한 와즈다, 그의 어머니가 붉은색 원피스를 사려던 돈으로 딸을 위해 그 자전거를 마련해준다. 와즈다는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압달라와 자전거 경주를 해서 앞지른다. 거리를 질주하여 큰길로 나가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초반주에 압달라와 경주하여 앞섰던 와즈다 모습이 겹치는 순간이다.



영화 속 상징과 그림 언어


이 영화 속에도 여러 가지 상징, 그림 언어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경우를 찾기에 힘들었다.



영화 속에서 와즈다의 어머니의 옷차림에 붉은색이 등장한다. 와즈다의 어머니가 둘째 부인을 두려고 한다. 와즈다의 어머니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기를 원하는 남편을 위해, 붉은 드레스를 골랐다. 남편의 사랑을 다잡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방에서 와즈다와 기도할 때 그가 걸친 붉은색 겉옷과 그가 사고자 했던 붉은색 드레스는 사랑과 갈망을 드러내는 듯하다. 결국 내려놓을 수 없던 남편을 행한 사랑의 마음을 내려놓는다. 딸을 향한 붉은 사랑을 태운다. 와즈다의 어머니의 긴 머리와 붉은 옷은 남편을 향한 사랑의 색이었다.


남편이 둘째 부인을 맞이하는 결혼 잔치가 집 앞마당에서 시작하는 그 밤, 마즈다의 어머니는 딸에게 고백한다. 아빠는 첫사랑이었고, 마지막 사랑일 것이라고.. 눈물이 가득하다. 딸과 어머니는 서로를 의지한다. 그 순간 결혼 잔치가 시작되는 축포가 하늘로 불꽃을 이룬다.


머리를 자르고 붉은 옷을 포기하고, 와즈다를 위해 그가 원하던 초록색 자전거를 마련한다. 양화 초반부에 와즈다의 보랏빛 신발끈과 엄마의 붉은색 그리고 초록색이 영화 속에 사이사이에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구체적인 상징성을 감독이 영화에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로 문화 익히기


영화 속에는 최소한 영화가 개봉된 2012년 당시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와 가치관, 통념 등이 담겨 있다. 사우디 여성들보다 사우디에서 여러 어려운 직종에서 일하는 외국인보다 사우디 여성이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도 읽을 수 있다.


남편이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두어도, 또 다른 부인을 두(려고 해)도 가슴앓이만 해야 하는 여성들, 혼자서는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여성 전용 탈의실이 없어 백화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일상, 생리 중일 때는 꾸란에 손을 대지 못하는 금기, 조혼의 현실을 보여주듯 와즈다의 친구 가운데 20살 된 남편을 둔 학생 등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남아선호,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여성 차별적인 말과 관행들(일부다처 등)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평범한 여인의 일상이 그려진다. 여자가 운전을 할 수 없기에, 바깥 활동을 하여야 하는 여성들이 합승 택시(합승 버스?)를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 일은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이주자들이 맡고 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몇 가지 문화를 짚어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아래의 이미지에서도 볼 수 있는 남녀차별과 분리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남녀가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부동반으로 온 손님들의 경우도, 남녀가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 게다가 식사 순서는 남자 먼저 여자 나중이다. 별도의 상차림을 제공하는 것 아니다. 여자 손님도 남자들이 먹고 난 음식을 먹는다.


결국 여자 손님들은 남자들이 먹고 난 음식,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남편의 남자 손님들을 위해 와디자의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해 남편에게 주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따스한 음식 그 자체이다. 조금 뒤에 와디자의 어머니는 바닥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다. 남자들이 먹고 난 차가워진 음식이다.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잎사귀가 달려있는 나무 그림은 가계도, Family Tree(شجرة العائلة. shajarat al-ayila)로 부르는 그것이다. 거기에는 집안의 남자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대를 잇는다는 것 그것은 남자들만의 대물림, 연대와 계승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이 가계도를 보면, 와즈다의 아버지 압달라 만이 아들이 없다. 할아버지인 쌀레 앗싸판은 4남을 두었다. 투르키, 무함마드, 라쉬드 그리고 압달라이다. 다들 2-4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가계도만을 본다면, 큰 아들인 압달라가 아들이 없다는 것으로 인한 유무형의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가계도에 와즈다가 자기 이름을 써서 붙여둔다. 그런데 나중 장면에서는 와즈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구겨진 채로 떨어져 있다. 이 장면과 함께 와즈다의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으로 구박을 받는 장면이 연출된다. 여자의 존재감 결혼한 여자의 존재감은 아들을 낳는 것으로 발휘된다는 현실을 그려낸다.




영화로 아랍어 배우기


인샤알라(Insha'Allah إِنْ شَاءَ ٱللَّٰهُ‎, ʾin šāʾa -llāh), 글자 그대로의 뜻은, '알라가 원한다면', '알라의 뜻이라면'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할 때도 사용한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좋다 나쁘다, 싸다 비싸다 멀다 가깝다 등 다양한 상황을 묻는 질문에도 예, 아니오 대신에, 긍정의 뜻을 담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얄라(Yalla يلا), 다양한 뜻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서둘러, 얼른, 으샤, '자 자' 등 다양한 뜻으로 사용한다. "'같이' 갈까?" 등의 표현에서는 '같이', '함께'의 뜻으로 풀 수도 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에서 '자'의 의미가 담긴다. 한국말도 그렇듯이 아랍어도 교과서에 담긴 뜻으로만 어떤 단어나 관용구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우리 곁에 이웃으로 다가와 있는 아랍 이주자들도 그렇듯이,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갈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영화 <와즈다> 속의 이야기, 그리고 아랍인들의 일상 이야기는 우리들의 지난 시절 이야기이며,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상도 변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만 멈춰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Le Cerf-volant>(연), 연을 좇아 선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