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떠나는 아랍 여행 - 레바논
전쟁이 일상이 된 삶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이웃이 서로 총을 겨누는 내전의 고통은 더욱 말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몇 차례 방문했던 레바논에서 여전히 내전 당시에 파괴되고 훼손된 건물의 잔해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라크 전쟁 전후하여 이라크에서 마주했던 이라크인들, 이스라엘의 공격을 직면해야 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다른 일상이 떠오른다.
Zozo(2015, Josef Fares 감독)
이 영화는
'Zozo'는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삶을 다루는 영화, 2005년에 개봉된 95분 분량의, 아랍어와 스웨덴어로 구성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레바논계 스웨덴 시민 Josef Fares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내전을 겪고 그 와중에 가족을 잃은 소년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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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조조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의 5인 가족은 그의 조부모가 살고 있는 스웨덴으로 이주할 준비를 한다. 그러는 과정에 폭격으로 부모와 누나가, 무장세력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와중에 조조를 보호하기 위해 형이 목숨을 잃는다.
스웨덴으로 가기 위해 무작정 공항 방향으로 조조를 발걸음을 옮긴다. 그 길에서 조조는 리타라는 소녀를 만나 그의 도움을 받는다. 어려움을 겪고, 군 관계자의 보살핌과 노력으로 마침내 스웨덴 공항에 홀로 도착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곤경을 겪고, 마침내 조부모와 재회한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된다.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과 학대, 언어 충격, 부모와 형제에 대한 그리움, 리타에 대한 그리움, 빼앗긴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 조조는 한 친구 Leo를 얻는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학대를 받고 살고 있었다. Leo와 Zozo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어찌 보면 소박하다. 내전의 참혹함이나 이민자, 이주자, 난민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배제, 혐오에 대해서도 과장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Zozo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 나름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그의 몸부림을 담아낸다.
병아리를 친구 삼아 대화하는 조조, 낯선 스웨덴 땅에서 비둘기와 아랍어로 말하는 조조, 꿈에서 마주한 이상한 빛과 대화하면서, 처음에는 아랍어로 하다가, 스웨덴어로 말을 거는 조조의 모습이 아리게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Leo와 Zozo는 서로의 문화도 소개하고 말도 서로 배우고, 서로를 더욱 알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문득 낯선 문화권에서 자신의 뜻이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문화권에서 힘겹게 적응하던 어린 세대들이 떠오른다.
병아리와 헤어지면서 조조가 나눈 대화에 이런 것이 나온다.
조조 : "스웨덴 같이 가자... 많이 그리울 거야"
병아리 : "거기는 추워. 나는 따스한 것이 필요해.. 나도 그리울 거야. 그렇지만 이게 삶이지 뭐"
영화 속 상징과 그림 언어
영화 속에는 여러 가지 상징이 등장한다. 레바논, 레바논인을 드러내는 그림 언어와 주인공 조조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상징들이 어우러지고 있다. 비둘기, 병아리, 기이한 빛 등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일상을 보여주는 보드 게임과 음식도 담겨있디.
비둘기와 병아리, 조조가 바깥에 드러내지 못하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드러내는 말동무이다. 이 둘은 어린 조조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폭격으로 부모와 누나, 형을 잃은 조조가 꿈속에서 본 이미지와 스웨덴에 이주하여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모함을 받고 살던 그 밤에 본 빛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둘 다 전쟁을 그린다.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폭발, 폭발 직전에 놓인 초보 난민 이민자의 전쟁 같은 새로운 일상, 그것을 빛으로, 신비한 빛으로 아리게 그려낸다.
조조의 손을 잡고 이끄는 형, 엄마, 리타는, 조조를 새로운 길, 삶으로, 일상으로 이끌어주는 구원의 손길로 그려진다.
영화로 문화 익히기
이 영화 속에는 레바논인의 일상 풍경이 담겨 있다. 먹거리와 놀이에 그려진다.
맨 오른쪽은 공습을 피해 방공호에 모여든 주민 가운데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따울라'로 부르는 이 게임은 레바논은 물론 아랍 지역, 터키나 이란에서도 전통 커피점에서 남자들이 즐기는 가장 일상적인 놀이의 하나이다.
또한 아랍 커피 잔이 보인다. 홍차도 많이 마시지만 아랍 커피를 즐긴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 중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 커피를 마시면서 따울라 놀이를 하는 것, 그것은 내전이라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일상, 그들의 소확행인 것이다.
중간 이미지에 담긴 빵은 마나키쉬(Manakish مناقيش)로 레바논인들의 가장 대표적인 아침 식사용 빵이다. 우슬초 가루와 치즈 등을 곁들인 레바논 화덕 피자이다. 나라별로 독특한 화덕 피자가 있는데, 레바논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조조가 굶주림 가운데 마나키쉬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모습은, 일상을 빼앗긴 모습을 그린다.
레바논인의 일용할 빵이 바로 이 마나키쉬인 것이다. 그에게 다가와 마나키쉬를 제공하는 소녀 리타는, 조조에게 일상을 다시 찾아주는 친구로 그려진다.
영화로 레바논 아랍어 배우기
레바논 아랍어에 있는 독특한 표현 한 두 가지만 정리해본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하지만, 레바논스런 표현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조조가 형과 이야기하는 과정에 형이 조조에게 '야 암므'(Ya Amm)라고 말한다. 문자 그대로라면 '아저씨야!' 하고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암므'(아저씨)는 다양하게 사용한다. 누군가를 부를 때 쉽게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가벼운 논쟁을 하다가 '이 보시게나' 정도의 뜻으로도 사용한다.
'슈'(또는 쉬)라는 단어도 많이 나온다. 슈 이스막?(이름이 뭐야?), 슈 하다?(이게 뭐야) 등 '슈'는 '무엇'을 뜻하는 의문사이다. '레이쉬?'(왜?)도 레비논 아랍어스럽다. 서둘러, 얼른얼른 등의 뜻으로 '얄라'라는 표현도 나온다.
영화로 레바논 역사 읽기
레바논 내전 1975.04. - 1990.10. : "1975년 4월 13일 베이루트의 한 교회 주변에서 기독교 팔랑헤 대 원과 팔레스타인 민병대 간의 마찰로 팔레스타인인 1명과 3명의 팔랑헤 대원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이 15년간의 내전의 시발점이다(O'Ballance 1998, 1-2). 중앙정부가 적극 노력만 했어도 초기에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문제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당시 레바논 중앙정부는 그러한 능력조차 없을 정도로 취약하였다. 이와 같은 무정부 상태는 각 종파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파원들을 선동하고 무력행사를 자행할 수 있는 충분한 정치적인 공간을 부여하였다." - 박찬기, 레바논의 내적 갈등 화해 방안에 관한 연구, 韓國中東學會論叢, 第34-1號, 16쪽
내전, 전쟁 가운데서도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 남들과 같지 않은 일상을 전쟁처럼 살아가던 이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데, 잔잔한데, 깊이 다가오는 울림이 있다.
손자 앞에서 아들의 죽음을 삭히는 할아버지의 말없는 눈물이 흐른다. "자거라, 내 아들아 자거라. 내 아들아 거기서 평안하거라. 네 아들은 내게 나와 함께 잘 있다. 내 아들아 너 구름(하늘)에서 자거라..."라는 아랍어 배경 음악에 노래가 된다.
아랍 사회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하게 마주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남과 다른 일상으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순간에도, 그 일상을 직면하는 삶의 태도가 남다르게 느낀 적이 많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 불편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지금 겪는 것으로 괴거의 추억에 갇히지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도망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곳곳에 난민이 되어 또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잠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