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문 Don Kim Nov 25. 2021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거짓말조차도 명예롭다?

아랍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저는  ‘명예’를 언급한다. 이 ‘명예’ 개념의 다른 짝은 ‘수치’이다. ‘명예와 수치’ 이 두 가지는 유목민은 물론 적지 않은 아랍인들의 가치관을 가장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아랍인들은 자존심이 상할 때 힘들어한다. 물론 우리들도 그럴 것이다. 그 바탕에는 ‘명예’가 짓밟혔다고 할 때는 더욱 힘들어한다. 물론 우리들도 그렇다.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말과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말이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가?


수년 전 요르단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겪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적지 않은 아랍인이 생각하는 명예롭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아랍어과에 들어갔나?”는 질문에, 미대를 가려고 했는데, 가지 못하고 안전 하향 지원을 해서 아랍어과에 들어갔다 “고 말했다. 아랍어과가 비인기학과였다고 설명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현지인들의 얼굴 표정이 험해지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랍인을 무시했다, 명예를 훼손했다 “며 제게 거칠게 항의까지 했다. 아랍어가 홀대받는 것이 아랍인인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럴 수 있는 반응이었다. 또하 약속을 쉽게 하거나, 쉽게 다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에게 맹세코! 가문의 명예를 걸고! 사나이의 명예를 걸고! 무슬림의 명예를 걸고! 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약속을 어겼어도, 거짓말로 변명을 했어도 그것 때문에 미안해하거나 하지 않는다. 거리낌 없이 둘러대기도 한다. 새빨간 거짓말도 한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와 가문을 위한 명예일 뿐?


명예는 남자가 지켜야 할 것과 여자에게 부여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아랍어로 '샤라프'와 '이르드'로 표현한다. 유목민의 관습법은 명예를 지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종종 실정법이나 이슬람법 샤리아와 충돌을 빚기도 한다.     


'샤라프'는 남성이 지켜야 할 명예이다. 이 명예는 얻을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다시 찾을 수도 있으며, 키울 수도 있다. 여성의 명예가 수동적인 것이라면 남성의 명예는 다소 능동적인 것 같다. 남성의 명예 가운데는 여성의 명예가 자리 잡고 있다. 남자들의 명예는 몇 가지의 경우를 통해 유지되거나 상실될 수 있다. 여성의 명예, 가문의 명예와 재산, 부족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 그 변수이다. 이것들을 지키면 명예를 지키는 것이고 잃어버리면 명예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르드'는 여성이 지켜야 할 명예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면에서의 처녀성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개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정조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한 여인이 한 남자와 결혼하여 부부관계를 맺으면 처녀성과 순결은 사라진다. 그러나 정조는 남아있다. 남편과의 관계 밖에서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은 그것이 자발적이든 강제된 것이든 정조를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여성이 성적인 탈선이나 강요된 것이라 할지라도 처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이르드'를 상실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간주한다.     


남자의 명예와 여자의 명예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 그런데 남자의 명예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척 여인을 가문의 명예를 살리고 수치를 씻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명예 살인'을 저질러도, 오히려 가족들은 그 가해자 남성을 집안의 명예를 지킨 의로운 자로 일컫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형법에서도 다른 살인 행위에 대한 처벌과 달리 정상 참작을 하여 대개의 경우 수개월간의 형이 집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개정 또는 악법 폐지 운동을 벌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시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요르단에서도 그렇고 레바논이나 아랍 국가 곳곳에서 명예 범죄 반대 운동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악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 경우도 피해 여성이 가문의 명예를 어겼다고 판단할 만한 어떤 행동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단지 가문의 남자들의 일방적인 짐작과 추정에 의해서도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죽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아랍 사회에서 명예를 말할 때, 여자의 명예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듯하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에 의한 질서 유지를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오래된 관행으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힘 있는 남자가 명예로운 남자라는 생각이 적지 않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성경의 여성 명예는?


성경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의 누이 디나를 성폭행한 세겜에게 보복(창세기 34)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자신들의 가문을 욕되게 했다고, 그래서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했다. 보복의 기회를 노리던 그들은 세겜과 그 아비 하몰과 그 도시 사람들을 화해의 의식으로 할례를 치러야 한다고 다 속였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행동은 다 정당화되는 것이었다. 거짓말조차도 다 명예로운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묘하지만, 성경 이야기에서 남자 일방에 의해 폭력을 당한 여성의 경우, 그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세겜에서 데이트 성폭력을 당한 디나의 경우도 당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이 이런 현실을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가 그 모양 그 꼴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