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갑옷과 고립의 감옥
"무섭다. 깐깐하다. 같이 일하기 싫다."
30대의 내게 '열심'과 '성실'의 증표였던 그 모든 행동이, 40대가 된 나에게는 '독선'과 '아집'이라는 주홍글씨가 되어 돌아왔다.
선배들한테는
'몰라서 안 해?'
'혼자만 잘났어?'
'요령 없이 왜 그래?'
'다른 사람들도 좀 생각하고 일해'
후배들한테는
'내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아.. 같이 일하기 싫은데,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귓방망이를 후려치는 듯한 그 말들은 옹이투성이인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새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왜 나의 진심과는 다른 '깐깐한 꼰대'가 되어버렸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쓰라린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기로 했다.
돌아오지 않는 나의 선의, 그리고 청첩장
다른 팀으로 발령 나기 전, 유독 A가 마음에 걸렸다. 다른 후배 팀원들이 계속 나에게 A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선배님, A는 일을 같이 하면 힘들어요. 잘 못해요. 알려줘도 실수하고, 자기 일도 막 미뤄요. 그거 아세요? 그 일 예전에 제가 했을 땐, 전부 다 제가 알아서 했었거든요? 그런데 업무 바뀌어서 제가 다른 일을 하는데, 계속 저한테 물어봐요. 물론 처음 물어볼 땐, 알려주죠. 그런데 아직도 물어보고, 심지어 일을 저한테 미루기까지 한다니까요?.'
이런 말은 후배뿐만 아니라, 선배들한테도 들렸다.
'아무래도 A는 다른 팀에 보내야 할 것 같아. 아직도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해. 지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고 있는 거 알지?'
그는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주변에서는 A에 대해 안 좋은 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A에게 대놓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약간의 다툼은 있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소문에 A가 변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불편한 말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후배를 조용히 불러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 안 좋은 말을 계속해. 그렇게 되면 넌 지금의 너의 자리를 지킬 수 없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너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아. 그래서 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좀 더 분발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힘들지? 내가 도와줄 것 있으면 말해? '
하며 웃으며 커피라도 사줄걸 그랬다.
A는 내 말을 듣고 눈물을 보였다. 분해서였는지, 억울해서였는지, 아니면 부끄러워 서였는지 그 당시에 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후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다른 동료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 동료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팀을 옮겼지만, 직접 청첩장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어떤 이유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A에게 나는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 딴에는 험담으로부터 A를 지켜주고자 던진 구명튜브였다. 하지만 그 구명튜브가 정말 내 것이 맞았을까? 바다에 빠진 사람을 일부러 더 깊이 밀어 넣고는, 내가 꺼내준 척했던 것은 아닐까?
가르침이라는 강요
나는 선배들의 도움 없이 혼자 부딪히며 일을 배웠다. 그 설움이 싫어, 내가 선배가 되면 반드시 후배들을 잘 가르쳐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다 한 후배를 맡았을 때, 나는 팀장으로부터 "후배에게 일을 시키지 말고, 가르쳐라"는 지침을 받고, 바쁜 시간을 쪼개 그를 가르쳤다. 사람을 충원해서 후배를 보내어 준 것인데, 일을 시키지 말고 일단 가르치라니? 그렇게 난 업무를 떠안으며, 업무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업무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개념과 원리를 설명해 주고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거의 매일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내 경험에 기반한 최선의 애정과 노력이었다.
그리고 항상 그런 가르침 뒤에는 후배의 친절한 감사의 말이 꼭 뒤따랐다.
'알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도 빨리 익혀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그 팀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그 후배가 "회사를 그만둘까?"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다른 선배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는 내 앞에서 항상 "좋은 가르침"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강요', '강압'이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
나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배신감, 그리고 거울 속의 나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었지만, 곧 자기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왜 항상 오해받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기댈 인맥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직 생활에서 관계보다 '실력'과 '문제의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불이익을 받으면 사람을 통해 풀기보다, 문제 자체를 파고들어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관계'의 언어로 작동하는 곳이었고, 나는 그 언어를 애써 무시해 왔다.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야 했기에, 나는 늘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외삼촌과 주먹다짐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외삼촌이 배의 속도 때문에 엔진 출력을 높여달라고 했고, 아버지는 배가 뒤집어질 수 있다며 타협하지 않으셨다. 고객의 요구였지만, 아버지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그날의 충격과 유난히 맑았던 하늘, 싸움이 끝나고 내게로 걸어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난, 그런 아버지를 닮았다. 굳이 피할 수 있는 것을, 좋게 말하면 되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며 항상 문제에만 매달렸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상쾌하게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누구 죽이러 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표정한 긴장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하고 집중했던 세월이, 내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표정을 새겨버렸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왜 깐깐한 꼰대가 되었는가.
그것은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관계 대신 실력으로, 부드러움 대신 치열함으로 나를 증명해야 했던 시간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오직 '옳음'과 '열심'이라는 갑옷만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들이 본 것은 나의 진심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굳어버린 나의 표정과 방식이었다. 그 갑옷이 어느새 나를 고립시키는 감옥이 되어버린 줄도 모르고.
A를 그렇게 험담하던 후배가 A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모습이 왜 이제야 눈에 들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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