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함성, 2025년의 한숨
1994년, 희미한 브라운관 너머로 서정원 선수가 스페인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의 세리머니를 보며 터져 나온 함성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몇 명 되지 않는 교민 응원단이 스탠드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선수와 똑같은 무게의 국가대표처럼 보였다.
그리고 8년 뒤인 2002년 여름, 나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생이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을 보기 위해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도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셨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홍명보의 발끝을 떠난 공이 골망에 꽂히는 순간, 우리 동네 주택가는 월드컵 경기장이 되었다. 우리는 외국인 감독이 가져온 ‘선진화된 시스템’이 한 나라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직후였기에 그 승리는 더욱 달콤했다. 그때 국가대표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이자, 우리의 미래였다.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2008년 금융위기마저 이겨내며 선진국 문턱으로 나아갔다. 뉴스는 연일 대한민국 기업들의 세계 시장 석권 소식을 전했다. 박지성을 넘어 손흥민이 EPL 득점왕에 오르는 것을 보며, 이제 우리도 세계를 이끌 수 있다는 벅찬 자신감마저 들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흥민이라는 역대 최고의 선수를 보유하고도, 대표팀은 무기력했다. 문제는 명확해 보였다. 2002년의 성공을 이끌었던 선진적인 시스템은 사라지고, 구태의연한 행정만 남았다. 축구협회는 바뀔 의지가 없었다. 간절함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친구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성장이 멈춘 것에 대해, 이대로 괜찮은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내 메시지 아래 작은 숫자는 빠르게 사라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광장은 사라졌다. 이제 그곳엔 나 혼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 위로, 전혀 다른 종류의 ‘팀플레이’가 시작됐다. 골프장 부킹을 공유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광장은 그렇게 필드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회사에서도 국가대표 축구팀의 패배는 더 이상 대화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부동산과 주식, 코인 이야기였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재테크 잘하는 사람이 회사의 숨은 현자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IMF와 리먼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더 이상 회사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겼다. 젊음을 바쳐 회사에 헌신했던 선배가 정책 하나, 임원 한 명의 성향에 따라 밀려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신념은 조직 내에서 ‘아집’으로 포장되었다. 반면, 실력보다 관계에 능했던 선배는 더 높은 자리로 유유히 올라갔다.
토트넘의 손흥민과 대표팀의 손흥민은 한 개인이 어떤 시스템에 속해있는지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잔인한 증거였다. 나는 토트넘이라는 완벽한 시스템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다. 애초에 손흥민도 아니었다. 지금 이 조직 안에서, 나의 발버둥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절망은 바이러스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회사의 성공은 회장님과 주요 보직자의 성공일 뿐, 우리의 성공이 아니었다. 영리하게 자신만의 트로피—‘강남 아파트 등기부등본’이나 ‘0이 하나 더 붙은 계좌 잔고’—를 쟁취한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저 묵묵히 ‘우리’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월급 통장을 스쳐 가는 잔고뿐이었다.
이제 광장은 없다. 대신 스마트폰 화면 위로 끝없이 오르내리는 수익률과 계좌 잔고가 새로운 트로피가 되었다. SNS 팔로워 수가 권력이 되고, 사는 집이 계급이 되며, 연봉이 곧 나의 가치가 되는 시대. 내가 공동체를 얼마나 사랑하고 주변에 희생하는지는 대출 금리에 1원 한 푼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모든 냉정한 계산을 끝낸 후에도, 나는 왜. 아직도 손흥민의 어시스트 기사를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 있는 걸까.
나 혼자 아직도 사라진 광장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텅 빈 광장에 홀로 남아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