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무기는 왜 팀킬을 하는가
아내는 마트에서 물건을 집기 전, 항상 휴대폰으로 인터넷 최저가를 확인한다. 국은 버리더라도 남은 채소는 건져 먹고, 사고 싶은 물건은 찜 목록에 100개 넘게 담아두고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는 그런 아내가 언젠가 유럽에서 사지 못해 아쉬웠다던 명품 가방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사면되지 않냐는 내 말에, 신제품은 물론 중고 가격까지 더 올랐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해지는 것. 그런 것을 '명품'이라고 한다. 아내는 장모님에게 물려받은 명품 가방이 몇 개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물려받았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빚이었다. 그것도 분명한 유산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자산을 꼽으라면 단연코 다른 것이었다.
바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열심’이다. 어떤 일이든 열과 성을 다하는 뜨거운 마음, 문제가 생면 남을 탓하기 전에 나에게서 먼저 원인을 찾는 삶의 태도. 중풍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하셨을 때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던 아버지의 책임감, 그 존엄한 뒷모습, ‘열심’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의 40대는 모두 비슷한 유산을 안고 서 있는 세대다. 우리 부모님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성장하며 중진국에서 우리를 길러내셨다. 부족한 기회와 자본 환경 속에서는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끈기와 희생으로 조직에 헌신하는 것이 정답이라 믿었던 시대 말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지나 88 서울 올림픽과 세계화의 교과서로 열심히 공부해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세상은 우리가 한눈파는 사이 전혀 다른 태블릿 시험지를 내밀고 있다. 기출문제를 열심히 암기하여 시험을 준비했는데, 사고능력, 공감능력, 창의성 등을 따로 평가하는 전환의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그 유산은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빛을 발했다. 아무도 맡기 꺼리는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나는 기꺼이 뛰어들었다. 밤을 새워 자료를 분석하고, 가능한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결국 목표를 달성해 냈다. 조직은 나의 성실함과 능력을 높이 샀고, 나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도맡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아버지의 ‘열심’은 분명 회사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최고의 자산이었다.
문제는 그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졌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득’ 뒤에는 언제나 관계의 ‘실’이 따랐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나는 후배의 미숙한 의견을 직설적으로 평가했고, 동료의 안부를 묻는 대신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나의 ‘열심’은 타인의 눈에 종종 독선으로 비쳤고, 나의 성과는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라진 ‘광장’을 찾아 ‘우리’를 외쳤지만, 그럴수록 동료들은 ‘각자’의 아파트로 더 깊이 숨어 들어갔다.
결국 내가 느꼈던 불안감, 이질감, 배신감의 근원은 이 거대한 모순 속에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이, 동시에 나를 고립시키는 가장 큰 부채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방식 그대로만 이 유산을 사용한 탓에, 내 삶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나의 뜨거운 마음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저 남을 탓하고, 무시했을 테지만, 나는 삶의 중심을 나에게 두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모든 문제를 나에게서 다시 찾는다.
이제 잃어버린 광장을 찾는 미련을 버리고, 계속해서 울리던 경고음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아내의 걱정 어린 눈빛, 후배의 돌아오지 않는 청첩장, 텅 빈 대화방의 정적.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세상의 질문이었다.
“정말 그것이 최선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얼어붙는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열심’은 그저 맹목적인 성실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개의 부품들이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파텍 필립 시계의 무브먼트처럼 정교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사업체의 사장이었고, 거친 기술자들의 리더였다. 그의 ‘열심’은 이 모든 역할의 무게를 견디며, 각각의 톱니바퀴가 서로를 마모시키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배의 안전이라는 원칙을 위해 외삼촌과 주먹다짐을 하면서도, 끝내 가족이라는 관계를 지켜냈던 것처럼. 그것은 기능과 관계, 원칙과 감성이 모두 포함된 고도의 설계였다.
나는 그 명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효율'과 ‘기능’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품과 부품 사이를 잇는 관계의 중요성을, 그 정교한 설계를 무시했다. 결과만 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관계를 무시하고 원칙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아버지가 물려주신 명품 시계는 내 손에서 모든 감성과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시간만 간신히 알려주는 ‘가성비’ 시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서지는 부품 소리는, 바로 그 시계가 내 손에서 망가져가며 내는 비명이었다.
아내는 장모님에게서 명품 가방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검소하지만 어디서든 품위를 잃지 않는 당당함, 그 기품이야말로 아내가 유능한 영업팀장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진짜 유산이다. 명품 옷이 아니어도 기품 있는 아내는 영업팀에서 단연 돋보인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에게서 각자의 ‘명품’을 물려받았다. 그것이 나의 ‘열심’처럼 뜨거운 마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묵묵한 책임감이나 따뜻한 공감 능력일 수도 있다.
진정한 장인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뜨거움으로 진흙을 단단한 자기로 빚어낸다. 이제 나의 ‘열심’은 그 장인의 지혜를 배우는 데 쓰여야 한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경고음들과 나의 서툰 과오들을 더 이상 실패의 잔해로 치부하지 않겠다. 그것들을 나의 손으로 다시 반죽하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뜨거운 마음의 불로 구워내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단아한 백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고대 아테네의 불씨가 올림픽 성화가 되어 세상을 밝혔듯이, 아버지를 이해하며 되찾은 나의 '뜨거운 마음' 역시 주변을 밝히고 새로운 광장을 만드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그래서 나의 다음 장들은 나를 다시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