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세상의 두 가지 언어

40대를 위한 두 가지 작동 프로토콜

by 밑줄

오류의 재구성: 10년 만에 다시 만난 '미생'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충격은, 주저 없이 10년 전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본 순간을 들 수 있다. 과거의 나는 최 전무와 오 차장의 대립을 '부패 대 정의'라는 선명한 흑백사진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마흔의 눈으로 다시 재생한 그 장면은, 온갖 색이 뒤섞인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처럼 다가왔다. 계약서의 숫자는 분명 우리 측에 불리했지만, 그것은 '비리'가 아닌 '전략'의 영역이었다. 최 전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승패도 패승도 싫어해. 서로 승승 하자고.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고."


10년 전, 이 말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는 위선자의 수사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는 '상생'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당장의 손익계산서를 찢어버리고 미래의 판을 새로 짜려는 설계자의 언어. 그가 추진한 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내부의 욕망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맞바꾸는 고도의 수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언어로만 설계되고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의 사용설명서: 두 개의 언어

세상이라는 이 복잡한 기계는 두 개의 언어로 된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만 죽어라 파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 A, ‘명분의 언어’: 이것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진열된 공식 매뉴얼이다. 규정, 원칙, 공정성, 도덕. '왜 이 일이 옳은가'를 설명하는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 이 언어는 조직의 얼굴이자 갑옷이다.


언어 B, ‘이해의 언어’: 이것은 기계실 깊숙한 곳에서 엔지니어들만 아는 비공식 회로도다. 이익, 효율, 관계, 권력, 생존. '그래서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모든 날것의 단어들. 이 언어야말로 세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최 전무의 이중언어

최 전무는 이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중언어 구사자였다. 그는 ‘이해의 언어(B)’로 자신의 이익과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고, 오 차장 팀의 욕망을 정확히 찔렀다. 그리고 그 모든 설계를 ‘명분의 언어(A)’로 포장했다. "서로 승승 하자"는 아름다운 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서명이라는 공식적인 행위로 자신의 책임을 명문화했다. 그는 B언어로 판을 짜고, A언어로 그 판을 보호했다.


나는 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상생’이라는 포장지 아래, 결국 문제가 생기면 영업 3팀을 제물로 삼으려는 속셈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내가 이미 B언어의 문법을 해독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결국 나를 향했던 "누군 몰라서 그래?"라는 냉소는, A언어 사전만 들고 B언어의 세계를 헤매던 나를 향한 정확한 조롱이었다.


과거의 오답노트: 나는 왜 실패했는가

Case File #1: 초대받지 못한 결혼식 (지난 3화, 나는 후배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침묵과 전달되지 않은 청첩장이었다. 나는 나의 선의가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나의 입력값 (프로토콜 A): 조직 내 상급자로서, 하급자의 업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팀의 성과 유지를 위한 정당한 관리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키워주려는 따뜻한 동료애의 발현이다.

시스템의 번역 (프로토콜 B):조직 내 권력 불균형을 전제로 할 때, 상급자의 '조언'은 피평가자의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공식 평가'의 예고로 해석된다. 따라서 나의 행위는 '선의의 도움'이 아닌, '직업적 생존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번역된다. 늘 명분을 따지는 선배라는 칼잡이가 조직을 대신하는 공식 평가자로 인식된 것이다. 이에 후배가 사적 영역(결혼식)에서 공적 위협 요소(평가자)를 배제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닌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 행위이자 자신을 지지해 줄 동료만을 초대하고 싶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Case File #2: 텅 빈 광장 (지난 4화, 나는 국가대표의 경기에 뜨겁게 분노했지만 친구들은 아파트 시세 이야기만 했다. 나는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졌다고 한탄했다.)

나의 입력값 (프로토콜 A): "국가대표팀의 성공은 공동체 전체의 명예이며, 이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감정 투자는 사회 구성원의 당연한 의무다."

시스템의 번역 (프로토콜 B): 2002년 월드컵의 성공으로 창출된 유무형의 자본은 선수, 협회 등 특정 주체에 집중 분배되었다. 2002년의 함성이 나의 자산 증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학습 데이터. 그들에게 국가대표팀이란, 나의 감정적 투자가 선수와 협회라는 특정 주주에게만 이익으로 돌아가는 불공정한 금융 상품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장'이 아니라 삶의 터전인 '아파트'인 것이다.


40대를 위한 새로운 매뉴얼


중요한 것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B언어의 세계가 싫다고 해서 A언어의 성안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마흔의 내가 생존하고 성과를 내기 위한 새로운 사용설명서는 다음과 같다.


제1원칙: 프로토콜을 먼저 식별하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A언어가 통용되는 광장인가, B언어가 오가는 밀실인가? 상황을 오판하는 순간, 모든 말은 소음이 된다.


제2원칙: 목표를 번역하여 재설정하라. 나의 신념이 A언어로 되어있더라도('원칙을 지키고 싶다'), 그것을 B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이 원칙이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가?'). 명분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상대의 욕망과 나의 명분을 연결시켜야 한다.


제3원칙: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하되, 기록은 A로 남겨라. 판을 움직이는 것은 B언어지만, 나를 지키는 것은 A언어다. 실질적인 협상은 B언어로 하되, 그 모든 과정의 최종 결과는 반드시 A언어로 문서화하고 공식화하라. 이것이 나를 지키고, 조직의 시스템을 존중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타협이나 변질이 아니다. 세상의 언어를 익혀 나의 말을 제대로 건네기 위한 기술적 접근이다. 오 차장의 심장을 가지고 최 전무의 언어를 배우는 것. 그것이 마흔이라는 새로운 운영체제에 내가 스스로 설치해야 할 첫 번째 패치(Patch)다.


(쿠키 해석)

문득,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나에게는 후배의 험담을 쏟아내면서, 정작 그 후배 앞에서는 누구보다 친절하게 웃어주던 동료의 얼굴. 그는 언제쯤 B언어의 능숙한 구사자가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내 주변에서 후배에 대한 불평을 지속적으로 흘렸던 이들은 이미 B언어의 유창한 원어민들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A언어밖에 모르는 나는, 그들의 B언어로 된 요청을 결코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들의 '험담'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요청이었다.


"(우리는 리스크를 지기 싫으니) 당신의 '정의'로, 저 후배를 처리해 주시오."


나는 선의의 칼을 휘두른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들의 손에 들린 대리인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따뜻한 동료로 남고, 나는 서슬 퍼런 칼잡이가 되었다.


이제야 그 연극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보인다.


앞으로 내가 사용하는 B언어를 이들이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아...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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