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복싱은 고도의 두뇌작용이다. 내 행동에 대응한 상대 행동을 추상하고, 그에 맞춰 다시 행동을 구상해 실행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행위다. 문제없는 행위를 문제로 가상해 발광하는 무지한 행태를 섀도복싱이라 규정하는 것은 섀도복싱을 욕보이는는 일이다.
논문 한 편을 소개한다. 학술지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22권 1호에 실린 '혜지가 구성하는 여성에 대한 특혜와 남성 역차별'이다. 학술적인 독해를 기대하진 마라. 학사에서 끝난 학력이 증명하듯 자격도 깜냥도 없다.
혜지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선호하거나 남성이용자 도움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여성이용자를 비하하는 신조어'라고 논문은 설명한다. 출처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여성이용자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가상의 대화문의 등장인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남성이용자 15명에게 묻는다. '너, 혜지를 본 적 있어?'.
논문에 따르면 남성이용자들은 '플레이 성향을 바탕으로 여성이용자를 판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주장'(p. 20)한다. 연구진은 "남성이용자는 상대방 성별을 판단할 시각적, 청각적 단서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움직임, 이기적인 태도, 의존성과 같은 속성을 여성성으로 전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의 이용자 성별을 판단한다"(p. 21)라고 설명한다.
연구진은 "(남성이용자들은) 게임 속에서 남성적 수행성을 특정하는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았다"(p. 21)라면서 "남성적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해달란 질문을 했을 때 비교적 오랜 고민 끝에 혜지와 반대되는 속성을 이야기했다"(p. 22)라고 지적했다.
여성이용자가 부정적 행태를 보여 팔매질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행태를 보인 이용자를 여성으로 규정한다는 의미다.
논문에서 제일 주목되는 점은 '(남성이용자)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혜지라는 용어 자체가 노골적인 여성비하 표현이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p. 27)라는 점이다. 남성이용자들은 '일화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혜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하이라이트는 여기서부터다.
논문에 따르면 '대부분 응답자는 여성이 게임 안팎에서 성별로 혜택을 받는다는 질문에 지체 없이 그런 여성이 다수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p. 29). 일부는 '혜지의 존재가 그런 여성이 많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주변에 혜지와 같이 남성에 의존해 불공정한 방식으로 특혜를 누리는 여성을 아는가?"라고 묻자 응답자들은 '주변엔 혜지와 같은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한동안 고민한 뒤 한두 명 정도가 있다고 답했다'(p. 29)라고 한다.
'선공격 후날조' 경향이 젊은 남성들 사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시비를 걸고, 맹렬히 이유를 찾는다. 이유를 구하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지어내면 되기 때문이다. 자료의 맥락을 탈각하고 오독하기 일쑤다. 고의적 일인지, 무식의 소치인지는 모르겠다. 앎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여성가족부를 공격하며 '성인지 예산이 과다하다'라는 근거를 들이대는 것이 대표 사례다. '성인지'가 어떤 뜻인지 정부재정이 어찌 운영되는지 전혀 모르지만 두려움이 없고 신경 쓰지 않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식의 대유행이 끝날 줄 모른다. "썩어버린 싹은 잘라야지, 다시 피지 않는다"라는 위대한 펭귄의 말에 마음이 동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