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다. 네가 참 불쌍하다. 上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1. 당신은 제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다는 걸 알지만. 한번 듣는 척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참 신기한 일이지요? 다들 유치한 말이나 뱉어대면서 자기를 뽑아 달라는 게. 더 신기한 일은 이 산업에서 돈을 번다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녹두복지관 관장 이 아무개올시다. 좋은 일을 하신다고요? 말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저 동정의 시선으로만 저를 바라본다는 걸 알기에 행복하게 그 칭찬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네요. 뭐 상관없습니다. 피차 진지한 관심이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요.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한 사회복지사의 이야기입니다. 이훈정이라는 인간인데, 제가 관장으로 있는 녹두복지관의 직원이기도 하지요. 사회복지사 이훈정의 이야기는 아주 골때리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까지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웃다 보니 편도결석이 튀어나와 병원비가 굳었을 정도입니다. 그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냐고요? 선생님의 직업은 의사이실까요?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거짓말이었으니까요. 잡설은 집어치우고 사회복지사 이훈정의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2. 아주 골 때리는 놈을 찾아냈어요. 딱 이놈이다 싶었죠.
애석하게도 저희 복지관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었습니다. 따지자면 놀랄 일은 아니지요. 사회복지사란 직업은 어차피 오래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거지같은 가난뱅이나 상대하고 있으려니 얼마나 속이 뒤틀리겠습니다. 정신머리가 박힌 인간이라면 빨리 그만두는 게 정상입니다. 근데 저는 사회복지관을 운영해야 하니 아쉬운 척 대충 달래주고 다른 사람을 뽑아야 했지요. 이게 사람 뽑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특히나 요새는 점점 더 짜증나는 일이 되어가고 있지요.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요새는 지원자들이 개나 소나 대학교를 가는 마당인데, 대학교에서 어쭙잖게 전공이랍시고 이상한 걸 배워옵니다. 사회복지학이니 뭐니 실전에서는 쓸모도 없는 고담준론이지요. 그래서 자기가 전문가인지 알고 지원을 합니다. 하지만 걔들이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상식이 안 통하는 작자들인데, 뭐 배운 게 통하겠어요? 당연히 안 통하지요. 마음 같아서는 사육사나 동물 훈련사를 채용하고 싶을 뿐입니다.
말인 심한 거 아니냐고요? 마음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어딘가에서는 대접을 받으시는 분일 테니, 내심 알고는 계실 거라 알고 있습니다. 제 앞에서는 위선을 떨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하고 지원자들 전부를 면접에 불렀습니다. 다들 직접 면접을 오면 분위기를 스윽 보고는 눈치를 깝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직장은 목에 사원증도 걸고, 비데도 되는 깔끔한 화장실도 있는 신축 건물인데, 복지관은 시장 통도 이런 시장 통이 없거든요. 오자마자 썩이 나가는 거죠. 이 표정을 보는 재미도 아주 좋습니다. 저는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이 순간 지원자들의 표정을 회고합니다. 삼겹살을 찍어 먹는 소금장보다도 아주 꼬소한 맛이 나지요.
아니 근데 멀쩡한 표정으로, 더 정확하게는 웬 정신 빠진 놈이 여행 와서 즐겁다는 듯이 실실 쪼개고 있는 겁니다! 속으로 생각했지요. 완전히 멍청한 놈이구나. 이놈을 뽑아야겠다. 원래 이 바닥이 반쯤은 맛이 간 놈이 오래 일을 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재미있겠다 싶었지요. 사는 것도 슬슬 지겨운 마당에 나를 즐겁게 해줄 놈이 들어왔구나. 아마 관장실에 꽹과리가 있었다면 기필코 사물놀이 패를 초청해서 한 바탕 놀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냥 채용할 수는 없으니 이놈, 그러니까 사회복지사 이훈정이한테 질문을 했지요.
“이... 훈정 씨? 이름이 좋네요. 혹시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답변 드리겠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통해 삶이 힘드신 분들에게 숨 돌릴 여유를 드린다면, 이분들은 분명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 살아갈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효과적으로 돕고 싶기에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답변이네요. 제가 여기 지원자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솔직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사회복지 쪽 일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요?”
“답변 드리겠습니다. 사회복지 쪽 일이 힘들다는 사실은 선배나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접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습니다. 저 역시 17살 이후로 항상 복지관 자원봉사를 하고 있기에 돌발적인 사건들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왜 사회복지 쪽 일을 하고 싶은 건가요?”
“그래도 희망이라는 걸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빛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제가 삶을 살아가는 게 무섭고, 벅찰 것 같습니다. 다른 직업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과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서 사람이 빛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사회복지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크하핫! 제가 편도결석이 안 튀어나오겠습니까? 이렇게나 헛소리를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지껄이다니. 쓰는 단어도 완벽하잖습니까. 답변 드리겠다느니, 인간의 빛이라느니 이거 완전히 골 때리는 놈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웃음이 터져서 숨도 잘 안 쉬어집니다. 단박에 결심했지요. 아 이훈정 이놈을 뽑아야겠다. 그리고. 뻔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내가 직접, 가까이서 지켜봐야겠구나. 그래서 바로 이훈정 이놈을 채용했지요.
3. 자기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더라고요. 미친놈이 따로 없죠.
이훈정이를 사례관리 팀에 배속을 시켰지요. 사례관리라는 게 뭐냐고요? 뭐 별 거 없습니다. 아주 이상한 인간들을 신경 써주는 척하는 팀이지요. 뭐 평범한 회사용어로 쓴다면 블랙리스트 같은 겁니다. 사례관리 팀장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 했어요. 이번에 들어온 신입인 이훈정이가 물건 같으니까, 아주 강하게 키워보라고. 팀장도 이훈정이를 꽤나 높이 평가하더군요. 나이가 들다 보면, 이놈이 어떤 놈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느낌이 오잖습니까. 사례관리 팀장이 보기에도 이훈정이라는 놈이 좀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느낌이 왔겠지 뭐. 하여튼 그렇게 이훈정이가 일을 시작했어요.
몇 번 팀장 따라서 일을 나가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습니다. 행여나 처음부터 골 때리는 모습 보겠다고 내가 개입하면 바로 그만둬 버릴 것 같아서였죠. 진정한 재미는 심심함이 잘 녹아있어야 한다는 걸 제가 알기에 잘 참아냈지요. 그러더니 일이 터졌어요! 매일 술 먹고 동네에서 시비나 붙고 다니는 이제윤이라는 수급자가 있는데. 아니 그 놈이 글쎄 상담을 하는 이훈정이 멱살을 잡았다지 뭡니까! 그 현장을 제가 직접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에요. 따라 나갔어야 했는데. 경찰까지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례관리 팀장이 침통하게 저한테 보고를 하기에 웃음을 참느라 아주 힘들었어요. 참는 내내 배에 힘을 주고 있어서 그런지 배에 복근이 새겨질 정도였어요. 위로해준답시고 이훈정이를 관장실로 부르라고 했어요. 절망한 그 놈 표정을 당장 보고싶었으니까요. 관장실로 들어오는 그 놈 표정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시무룩해져서는 넋이 나가있더라니까요! 딱 보고는 나라 잃은 백성이 딱 이 표정이겠구나. 할 정도였지요.
“훈정 주임이 많이 힘드셨나보네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종종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각오는 했었으니까요.”
“너무 힘들면 말해줘요. 전 훈정 주임 같은 인재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당분간만이라도 행정 업무만 볼 수 있는 총무팀에 넣어줄 수도 있어요.”
“아녜요! 제가 힘든 건 수급자들이 아니라...”
“힘든 게 뭘까요? 뭐든 말 해봐요. 관장은 신입 직원들이 잘 적응하게 만드는 게 일이니, 어려워 말고 말해줘요.”
“아닙니다! 잘 적응하겠지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자기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으로 착각을 하는지. 역경을 딛고 밝은 표정을 짓는다는 그 연기가 너무 역겨웠어요. 그리고 웃겼지요. 하찮았고. 이훈정 이놈이 나한테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다시 생각을 해도 심장이 뛰네요. 낚시를 하다 보면 물고기가 미끼를 딱 물었을 때 손맛이 오잖아요. 큰놈이면, 야 이거 물건이다 싶고. 딱 그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대어를 낚는구나. 기필코 재미있겠구나.
이훈정이도 그 느낌이랑 똑같아요. 아주 미친놈이 따로 없지요. 어휴 말을 하다 보니 지금도 심장이 뛰네요. 부정맥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 참고로 건강검진 결과는 정상이었어요. 제가 짝수 년도 출생자라 올해 받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