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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다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

by 동노야

7화.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1. 불평은 늘어나지만 해결하고 싶지는 않다


"세일아. 10시다. 이제 슬슬 나가자!"

"네. 알겠습니다"


나가기 싫다. 의원실에 들어온 지 5년이나 지났는데, 내 짬밥에 지역 중학교 졸업식에 명함이나 돌리러 가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내가 끌려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오늘 졸업식이 열리는 A중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의원님은 지역구 관리를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의원님은 어떤 행사를 가던 그 행사 주최 측에 연고가 있는 인물들을 무조건 데리고 가서 순식간에 자기도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굴었고 이는 3선이라는 거룩한 명예로 이어졌다. 고로. 난 가야 했다.


지역사무실에서 나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날은 또 왜 이리 추운지. 망할 졸업식은 왜 추울 때 하는 걸까. 각자 대충 살다가 날 좋으면 졸업식 한다고 모으면 안 되는 걸까. 차는 또 왜 이렇게 먼 곳에 주차를 해놓은 걸까. 살다보니 불평은 늘어가는데, 해결하고 싶지는 않아진다. 진지하게 왜일까를 고민하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세일아 뭐하냐! 우리 걸어 갈 거야!"

"의원님 A중학교까지 거리가 꽤 될 텐..."

"누가 그걸 몰라서 묻냐? 걸어 가야 가는 길에 명함도 돌리고 인사도 하지. 이건 지역구 관리를 어떻게 배운 거야"


말은 저렇게 해도 의원님은 꽤나 좋은 사람이다. 왜냐. 뻔한 스토리이지만 의원님이 2살 때 부친을 잃었고, 모친은 글을 읽지 못하셨지만 작은 식당을 하며 의원님을 훌륭하게 양육하셨다. 의원님은 서울대를 갔고,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청와대에 갔다가, 정권이 교체 되고, 고생을 하다가, 지역구 의원이 되고. 하여튼 뻔하게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여기에 붙어있다. 뻔한 정답을 향해 묵묵히 일해온 사람의 부하는 자아성찰이나 번뇌를 면제 받아 그저 그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세일아! 빨리 가자! 세일아! 우리 바쁘다! 세일아~! 4선을 해야 장관이 된단다!"

"넵. 이제 출발합니다"


A중학교가 있는 방향의 횡단보도로 향한다. 머리가 좀 아프다. 저 양반은 내 이름을 왜 이렇게 계속 불러대는 걸까. 의원님은 내 이름을 자주, 그것도 큰 목소리로 매번 부르는 것만 빼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근거는 없지만 확신은 생긴다. 돌아오는 길에 두통약이라도 하나 사먹어야겠다.



2. 떡전교 호남식당 셋째 아들 김진용입니다


"안녕하세요. 떡전교 호남식당 셋째 아들 김진용입니다"

"아이구. 떡전교 호남식당? 그게 뭐여?"

"하아... 떡전교 사거리, 지금 바울교회 자리 아시죠? 거기에 있던 호남식당을 저희 어머니께서 하셨어요. 남편 일찍 잃고, 글도 모르시지만 그렇게 열심히 사셨어요. 그래서 제가!"


또 시작이다. 의원님의 재미는 없지만 정답에 가까운 삶은 '떡전교'라는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 이름을 시작으로 시작된다. 당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이야기, 관공서에서 보낸 문서를 읽지 못해 중학생이던 아들에게 이걸 읽어달라고 우물쭈물 부탁하며 자신이 글을 못 읽는다고 고백했던 모친의 이야기까지 이어지면 지역구 사람들은 크게 감명을 받고는 했다. 게다가 의원님 당신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기 3일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이가 없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물론 전설 정도는 아니며 이야기에 거짓말도 많이 섞여있다. 그런데 또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의원님의 과거 이야기에 유권자가 감동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의원님 태생이 우리 동네라는 점을 뇌리에 박을 수 있었고, 최소한 고생한 사람을 욕하지 않는 정서상 지역구에서의 의원님 평판 관리에 이점으로 작용했다. 고령층에게 인기가 없던 우리당 정치인이 이 지역구에서 3선이나 한 원동력은 의원님 이야기의 힘이 컸다.


그래서 난 우리 의원님을 도성 밖 3대 구라라고 평했고 동료 보좌관들은 이에 격정적 찬사를 보냈다. 거짓말이 아닌 '구라'인 이유를 설명하자면, '구라'는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유권자의 심금을 울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거짓말이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면 감동까지 주게 된다. 그때부터는 거짓말이 아니라 '구라'가 된다. 그렇게 우리의 의원님은 도성 밖 3대 구라가 되었다. 나머지 두 명은 누구냐고? 3대 구라라는 표현 자체도 구라인데 나머지 두 명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이고. 이 양반 고생 많았네. 우리 때는 다 그랬지! 내가 한 표 찍어줄 테니까. 기운 내!"

"고맙습니다. 어머님 보니 딱 우리 어머니 살아계셨으면 어머님 나이이실 것 같아서 더 힘이 납니다"


물론 저 할머니와 의원님의 모친은 같은 연배가 아니다. 에이 그럼 또 어떤가. 의원님은 이야기를 들어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어본다. 냉큼 가서 그 모습을 촬영한다. 언젠가 쓰일 일이 있는 사진이겠지. 의원님은 나에게 명함을 절반 나누어준다. 그리고 씨익 웃는다. 너도 하라는 말이다. 하기 싫어도 의원님이 하니 나도 해야 한다. 마침 앞을 지나가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미소를 한껏 머금고 명함을 건낸다.


"안녕하세요. 떡전교 호남식당 셋째 아들 김진용입니다!"

"됐어요. 뭔 쓰레기를 주고 있어"


명함을 전달하려 했던 주민은 내 손을 뿌리쳤고, 의원님의 환한 미소가 담긴 명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명함은 누구나 받기 싫어하기 때문에 이해는 간다. 그래도 처음부터 이러니 힘이 빠진다. 명함을 줍고 A중학교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물론 명함과 신파 전달이라는 선거 업무는 지속하면서 말이다. 어째 날이 추워서인지, 처음부터 기분 나쁜 일이 있기 때문일지 학교에 가까워 지면서 몸이 영 좋지않다. 오한이 든다. 머리도 좀 아프고. 그냥 일을 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3. 봉산 위에 저 중학교 철갑을 두른듯


A중학교는 봉산이라는 산 위에 있다. 언제인지 기억조차 안 날만큼 오래 전에 왔었는데, 다시 봉산 위로 올라가는 언덕을 바라보니 새삼 아찔해졌다. 머리는 더 아팠고, 괜히 손발도 떨렸다. 감기임에 분명하다.


"의원님. 졸업식 가는 학부모들이 언덕 오르기 전에 명함을 줘야 하니 이쯤에서 명함 주면서 인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일아. 그게 말이 되니? 이 언덕을 마주하면 내 명함을 보겠니? 내 얼굴이 보이겠니? 내 말이 들리겠니? 그리고 인마 요새는 다 차 타고 올라가! 그러니 학교 정문 쪽에 있어야 얼굴이라도 비추지. 이건 어떻게 나랑 5년을 같이 일한 거야?"


들켰다. A중학교는 산 꼭대기에 있다. 대체 왜 중고등학교들은 죄다 산 위에 지었을까.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아침부터 기운을 죽여놓아야 공부가 더 잘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박격포를 설치해서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서 지은 걸까. 다 헛소리다. 일단 나도 나이 먹고 언덕을 오르려니 죽겠으니 하는 말이다.


"학교 정문에서 명함 나누어 주고. 올라오면서 고생하셨다고 쪼오크도 날리고 말이야. 그때 저도 이 언덕 6년 동안 올랐기 때문에 안다고 말을 딱 붙여버려! 그럼 학부모들도 뭔가 신기해 할 거 아니야! 우리 의원이 여기 중학교 출신이라니!"

"의원님은 여기 출신이 아니..."

"세일아! 지금 그게 중요하니? 너가 여길 나왔잖니. 그럼 뭐야. 나랑 너랑은 한몸이라고 내가 멘트를 치면, 학부모들이 아주 배를 잡고 떼구루루 구르실 거야"

"의원님 저 고등학교는 여기 안 나오..."

"세일아. 세일아. 나의 사랑하는 비서 세일아! 왜 그래. 너가 이러면 나 운다? 나 낙선하면, 너랑 같이 편의점 차릴 건데 이러면 나 슬퍼?"


이 재간둥이 의원님을 모시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든다. 유머나 잔망스러움도 총량제 같은 게 있어서 어느정도 되면 법적으로 못하게 해야 한다. 확신한다. 도가 지나치게 유쾌한 의원님의 애교를 보아서인지, 아니면 진짜 감기 때문인지 속도 별로 안 좋다.


생각보다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A중학교는 부지가 좁아서 사실상 주차장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앞뒤 사정을 뻔히 아는 동네 사람들은 각오를 하고 언덕을 올라왔다. 언덕의 끄트머리인 학교 정문에서 거친 숨을 몰아 쉬는 학부모들에게 의원님의 명함을 전달하고, 썰을 풀고, 지지를 호소한다. 아무래도 아이들 졸업식인데 정치인이 등장하니 처음에는 불쾌한 내색을 보이다가 3년 간 이 언덕을 나도(광의의 의미로 의원님도) 올랐음을 이야기 하니 분위기가 좋아진다.


의원님이 나를 데리고 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바삐 명함을 전달한다. 몸이 안 좋아도 웃어야 한다. 그래야 내 직장생활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조심히 흔들었다. 누가 느끼기에도 존중과 조심함이 담긴 흔들림이었다. 엣헴. 이래서 난 내 직업이 좋다. 사람들이 나를 좀 어려워 하기 때문이다.


"저기 차량도 왔다갔다 하니. 좀만 옆에서..."


최정우였다. 정확하게는 최정우 선생님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나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자 학생들의 머리를 출석부로 내리치면서 군기를 잡았던 A중학교 선도부 지도교사이자 사립학교 교직원 중등교원 최정우였다. 속이 좀 메스꺼웠지만 먼저 인사를 건냈다.


"최정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저 기억 못하시겠지만 1996년 선생님 반에 있었던 고세일이라고 합니다"

"아... 누구신지 잘 모르겠네요. 미안합니다. 저도 워낙 선생생활이 길어지다 보니까 기억이..."

"그렇죠. 이해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래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말씀 해주신 대로 옆에서 명함 돌리겠습니다"


손발이 떨렸고 어지러웠다. 최정우 선생님은 잊고 살았던 존재였다. 나는 1996년 A중학교 3반의 반장이었다. 그리고 참 많이 맞았다. 그런데도 난 최정우 선생님이 좋았다. 최정우 선생님은 아이들을 팰 때를 빼면 호탕했고 내가 좋아하던 사회 과목을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 맞게 설명해주던 교사였다. 난 최정우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성격에 안 맞는 반장도 했고 사회과목만큼은 만점을 놓치기 싫어서 교과서와 당시 유명했던 사회과학 책들도 참 많이 읽었다. 그러나 최정우 선생님은 2학기가 되자마자 같은 재단 소속의 고등학교로 적을 옮겨버렸다. 그날의 기분은 뭔가 이상했다. 이상했고 또 허탈했다. 그렇게 잊고 살던 사람이었다.


마음이 복잡했고 손발은 더 떨린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A중학교 시절만큼은 별로 회상하지 않고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회상할 때마다 최정우 선생님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고 심장이 조이는듯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애써 잊고 살아왔었는데, 구라처럼 최정우 선생님이 교문 안에서 안내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곧 나의 일이 끝날 것 같다. 교문을 향하는 인파의 행렬이 잦아들었고, 이는 졸업식 행사가 곧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그럼 의원님과 나는 지역구 사무실로 돌아가면 그만이었고 다음부터는 A중학교 행사에 나는 안 가겠다고 뻣대면 그만이었다. 의원님도 슬슬 힘이 든지 괜히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발길을 돌려 교문 안으로 들어가 최정우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네? 무슨 일이시죠?"

"아이들을 패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좋아합니다"


최정우는 갑자기 한껏 짜증이 난 표정이 됐다. 미간은 주름 지고 답답하다는 듯이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야. 내가 너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애들이 무슨 선생님을 좋아하냐. 요새는 더 심해. 너희 때는 때리면 말이라도 들었는데, 요새는 때리지도 못하고"


갑자기 반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최정우 선생님은 아까 나를 봤을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알아챘을 거다. 왜냐. 난 인상 깊게 못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추측하는 근거는 이거 하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최정우 선생님은 알아 듣지 못할 말들을 반복했다. 문장을 완성하지도 못했고, 말을 계속 끊어서 했다. 말 중간중간 한숨을 계속 쉬었다.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선생님. 어떤 말씀이시지는 알겠는데. 하여튼.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냐. 다 그랬던 거였지"


발길을 돌려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기분이 꽤나 괜찮았다. 몸도 아프지 않았다. 이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하나 가끔 옳은 일을 했을 때의 쾌감 같은 기분이었다. 다만 최정우 선생님의 이후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대놓고 처다볼 수 없었다. 멋있게 말 하고 왔는데 뒤돌아 서서 보고 있으면 그거 폼이 안 산다. 어떻게 하면 반응을 살필 수 있을까.


"떡전교 호남식당 셋째 아들 김진용입니다! 올라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저도 여기를 6년을 올라왔는데!"

의원님은 큰 목소리로 명함을 드리고, 자신의 썰을 풀고 있다. 참 늙지도 않는다. 그렇다! 이거다. 두 명의 아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졸업하는 졸업생이리라.


"안녕하세요. 떡전교 호남식당 셋째 아들 김진용입니다"

"저희 학생이에요"


시끄러운 놈. 꼬마가 말이 많다. 아이들에게 명함을 쥐어주는 척 하면서 몸을 돌렸고 최정우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우리 의원님도 이 학교 나왔는데"

"그게 뭔 상관이에요. 저희 바쁘다고요!"


어린 노무 자식들이 예의가 없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부여잡았다. 몇 년 뒤면 어차피 우리 지역 유권자니까 인사해두면 좋을 거다. 핑계는 대충 이 정도로 상정하고 다시 최정우 선생님을 흘깃 바라보았다. 최정우 선생님은 급히 전화를 받는 척을 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알게 된다. 저 사람이 진짜 연락이 왔는지, 아니면 그냥 그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서 연락이 온 척을 하는지. 지금 최정우 선생님의 상태는 분명히 후자이다.


"저희 바빠요! 갈래요"

"얘들아. 너희들이 동대문구의 희망이란다. 너희가 언젠가는"

"저희 중랑구 살아요!"


위장전입이 문제인 세상이다. 아이들은 도망치듯 내 앞을 지낙갔다. 그리고는 한번 더 흘깃 최정우 선생님을 보았다. 최정우 선생님은 학교 건물 쪽으로 꺽어지는 방향으로 걸어, 아니 반쯤 뛰어가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최정우 선생님의 휴대전화 화면은 통화 화면이 아니었다. 그냥 밝은 배경화면이었다. 그리고. 한번 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두 걸음쯤 더 간 최정우 선생님은 휴대전화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은 자기 친구들한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배경화면은 통화화면이었다.


"야! 학교 앞에 아주 미친놈 하나 있어 올 때 한번 봐봐"


아이들은 내가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그리고 최정우 선생님은 어지간히 내가 보기 싫었나 보다.


"세일아 가자! 춥다! 나 4선하기 전에는 감기 걸리면 안 돼!"


의원님은 나를 급히 불렀고, 나와 의원님을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나는 왜 A중학교로 향하는 길에 아팠던 걸까. 그리고 왜 최정우 선생님께 말을 건내고 난 뒤에는 괜찮았을까.


"세일아. 너 아까 인사하던데 누구냐?"

"중학교 때 담임 교사였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

"그 선생 너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모양이더라. 너가 인사하니까 우물쭈물하다가 들어가더라?"

"그걸 또 보셨어요? 의원님 4선 하시려면 명함 많이 돌리셨어야 할 텐데 그새 딴생각을 하셨네요. 근데 왜 그렇게 생각을..?"

"세일아. 세일아. 나의 버르장머리 없는 비서 세일아. 내가 동네에서 사람 좀 만나고 다니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어. 예전에 나나 우리 엄마한테 막 대했던 사람들이 있거든. 나 여기 당선되기 전에 나 어줍잖케 본 사람들라던지. 그 사람들 요새 다시 보면 어떤 줄 아냐?"

"뭐 모르는 것처럼 굴겠죠. 사과하거나. 그래도 의원님 지위가 있으니까"

"아니야. 도망을 가더라. 5공 시절이면 싹 조졌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그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은데, 막 도망을 가!"

"도망이요? 왜 도망을 가요?"

"그건 나도 모르지 인마. 내가 잘된 꼴을 보기 싫어서 그런가 했는데 내가 이 짓 좀 오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다 부끄러워서인 것 같아. 해식해식 웃는 놈도 있고 표정 싹 찡그리고 가는 놈도 있고 다양한데, 그냥 자기들도 좀 그런가 봐"

"왜 그렇게 생각을 하셨어요?"

"그냥이라고 인마!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다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


지역구 사무실에 도착을 했고, 의원님은 택시 기사님에게 명함과 떡전교 호남식당 이야기를 했고, 택시 기사님은 이전에 의원님을 안 찍었는데 이번에는 찍겠다고 약속을 했고, 나는 두통을 혹시 몰라 사먹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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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06화6화. 사는 게 참.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