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졌던 시간이 얼마만큼인데 지금의 그는 어디즈음 가있을까
6화. 사는 게 참. 진하다.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오전 8시 41분의 세상은 참 덧없다. 업수 시작 직전이기에 다들 키보드를 두들기고는 있으나 그 누구도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들 그저 일을 하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소리가 안 나오는 피아노를 치는 것 마냥 멍청하게 키보드만 연주하고 있다. 일을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 월급은 받고 싶은데 일은 하기 싫다. 그 누구보다 일을 하기 싫다. 그렇다. 월요일이다.
“안녕 하십니까! 날이 엄청 춥네요!”
건강하고도 경쾌한 음성이다. 대부분의 자양강장제 CF에서 사용이 가능할 거라 확신이 들만큼 건강하다. 작년에 입사한 최철규 주임이다. 최 주임은 뭐라고 해야 할까. 흐음... 좋은 청년이다. 우선 밝다. 건강하며 밝고 긍정적이다. 배려심이 많으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대충 초등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 17쪽에 나와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다만, 나는 그가 싫다. 왜냐. 최 주임은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리기 때문이다. 최 주임이 곁으로 다가온다면 우선 향기가 난다. 그러나 최 주임이 내 옆자리에 앉으면 향기는 냄새로 변한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이게 생각보다 미칠 노릇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최 주임이 워낙 활동적인 사람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향기가 난다고 하지만 나에게 최 주임의 향수는 냄새가 분명하다. 가끔은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한 두 시간 지나면 괜찮지 않냐고?
아니다. 최 주임은 2시간 30분에 한 번 씩 향수를 뿌린다. 다행이 다른 향을 뿌린다. 그러나 여전히 많이 뿌린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해야 할까, 내가 병원에 가야할까, 비염과 축농증에 걸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향수가 너무 진해서 사람이 싫어질 일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난 확실히 최 주임이 향수 때문에 싫다
어디서나 을일 수밖에 없어서,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즐겁게 을이 되기로 했던 최 절규 주임은 살면서 너무 많은 일을 해내기에, 삶이 너무 진해서 감정을 상실한 건 아닐까.
그는 향수라는 강박으로 이를 해소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다른 향들이 느껴지면 현실이 잊혀졌고, 뭔가 될 것만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던 최철규는 지금쯤 어디메에 있을까. 그에게 주어졌던 시간이 얼마만큼인데 지금의 그는 어디즈음 가있을까. 사는 게 너무 진해서. 어딜 가든 그 향에 짓눌려서. 홀연히 떠날 수도 없어서.
그렇게 다른 향을 베인 체 살아갔다.
어쩌면, 우리도 똑같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