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제육볶음 두 접시.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응. 그럭저럭 다닐 만은 해.”
“그래. 여자 친구는 있고?”
“뭐 좋은 감정 가지고 서로 알아가는 단계인 친구는 있어.”
“그래. 그래...”
“삼촌은 질문할 게 그런 것밖에 없어?”
“아... 그러면 넌 꿈이 뭐니? 장래희망 같은 거 말이야.”
“전 제육볶음 두 접시 만드는 거.”
내 조카 창식이는 혈육이지만 참 싸가지 없는 놈이다. 그래도 과학적으로 창식이는 내 유전자와 최소 8분의 1정도는 같으니까 나이를 초월한 그런 아름다운 대화가 도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니면 내 과학적 지식이 짧던가. 근데 이놈은 왜 반말이지? 요즘 초등학생이 잔망스럽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은 놈이다. 하긴 얘도 노력을 많이 한 결과일 거다. 초등학생이 장례식장의 새벽을 견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다. 그 와중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삼촌 옆에 앉아있다는 게 기특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주변머리 없는 형 대신 내가 모든 손님을 맞았고, 장례식 첫날의 결산을 마쳤고, 나는 지쳤고, 앉았고, 형의 아들이나 나의 조카이자 만 7세의 취학 아동 김창식은 그렇게 내 옆에 앉아있다. 그리고 기특하면서도 싸가지는 없었다.
“삼촌은 요새 뭐 하고 지내?”
“삼촌? 요새 일 하지.”
“일만 해?”
“일만 하기도 좀 벅차기는 한데, 이것저것 하고는 있어.”
“삼촌도 학원 다니는 거야?”
“응. 삼촌도 창식이 너처럼 학원 다녀.”
“아니야. 나 학원 안 다녀. 삼촌은 왜 그 나이 먹고 학원을 다녀?”
단언컨대 참 싸가지 없는 놈이다. 확신한다. 체벌은 부활해야 한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얘 말이 맞기는 하다. 이 나이 먹고 학원 다니는 것도 좀 웃기기는 하다. 나는 7개월 전부터 전문직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직장생활 오래 하다 보니 스스로가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졌고,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주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장사를 하거나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는 을이 아니라 갑의 위치에 서고 싶었고, 조선 땅에서 돈은 없는데 갑질을 하고 싶다면 역시나 고시가 정답이었다. 나는 제법 멋진 결심이라 생각했고 공부하는 내 모습에 도취될 때도 있었다. 직장생활 하면서 고시 준비를 하다니. 합격만 하면 신문에 실리는 건 아닐까 싶다. 피부 관리를 지금부터 해야겠다.
“그나저나 삼촌 공부는 잘 되는 거야?”
“열심히 하고 있어. 두고 봐. 창식이 너 고등학교 갈 때면 삼촌이 달라져 있을 거야. 그때쯤 되면 창식이 너가 모종의 이유로 삼촌을 어려워하겠지만. 이 삼촌은 괜찮단다.”
“삼촌은 왜 이렇게 군말이 많아? 아니 그러니까 공부는 잘 하냐고.”
“싸가지 없... 후우, 삼촌 공부는 이제 시작이니까. 잘은 못 해. 직장 다니면서 하려니까 시간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 어른이 되면 해야 할 일들이 증식하니까. 시간이 부족해.”
“에이. 엄마가 뭐든 집중해서 하나만 하라고 그랬는데. TV를 보든, 게임을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엄마가 그랬어. 그리고 가급적이면 둘 다 하지 말라고 했고. 공부나 하라고.”
“역시 형수, 아니 그러니까 너의 엄마가 똑똑하구나.”
“나 형수가 뭔지 아니까 길게 안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엄마가 삼촌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 돈도 잘 벌고, 결혼도 안 하고, 자기 노는 시간 갖고 사는 그런 어른.”
“너의 엄... 아니 그러니까 형수가 나보고 노는 시간 가지고 산대?”
“응. 그래서 엄마는 삼촌을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삼촌이라고 했어. 엄마는 언제 적 뽀로로야. 유치하게.”
형수가 창식이한테 자기 남편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배우라고 하는 걸 보면 아마 형은 아마 이혼을 당할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논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울컥한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난 직장에 고시 공부에, 게다가 주말에는 박사 학위 공부도 하고 있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학자가 꿈이었다. 철학책을 읽을 때면 두근거렸고, 사회학 이론을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적용할 때면 일종의 오르가즘까지 느끼곤 했다. 그러나 철학과 사회이론은 나에게 직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달았고, 돈은 꽤나 멋진 자유를 선사한다는 사실도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녔고 기가 막힌 차를 몰았다. 그렇다. 난 제법 멋진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찝찝하게 남아있던 공부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시 시간을 쪼개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해내고 있었다.
“창식아.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알아. 삼촌 박사님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아직 박사는 아니고, 박사 수료라고 아주 박사는 아닌데, 얼추 박사... 아니다. 됐다.”
“근데 엄마가 삼촌 박사는 부자 되는 박사는 아니라고 그랬어.”
“형수가 그랬어??”
“아니. 이건 할머니가. 할머니는 삼촌이 무능력한 고자라고 했어.”
난 애가 그리고 얘도 좀 싫다. 결혼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혼부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 사랑스러운 조카 창식이를 보고 있노라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내 삶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나저나 무능력한 고자라니. 어머니는 아마도 나를 무능력한 고학력자라고 하셨을 거다. 그래도 아들 구실하는 건 난데, 그런 표현을 쓰셨다면 또 서운해진다. 아닌가? 지금 얼추 고자는 맞으니까. 역시 엄마라는 존재는 모든 걸 다 알고 계신다. 모르긴 몰라도 산타도 누군가의 어머니였을 거다. 그러니 다 알고 있겠지.
“삼촌.”
“왜?”
“삼촌은 제육볶음 만들 줄 알아?”
“아니. 잘 몰라. 집 앞에 식당을 가서 6천원 주면 사 먹을 수 있다는 건 알아.”
“그 나이 먹고 왜 제육볶음 만들 줄 몰라?”
“너도 내 나이 먹으면 할 줄 모르는 게 많을 거야.”
“그게 조카한테 할 소리야?”
“그럼 너는 이게 삼촌한테 할 소리냐?”
8살 아이와 같은 수준의 유치함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는 건 내가 늙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솔직히 제육볶음을 만들 줄 안다. 생각보다 쉽기도 하다. 고기를 사서, 구입한 양념에 재어두고, 대충 파와 양파를 다져서... 취소한다. 난 제육볶음을 만들 줄 모른다. 그냥 사먹는 게 편하다. 그리고 누굴 만들어 줄 필요도 없다.
“삼촌. 계속 밖에서 사먹으면 건강 나빠져.”
“형수 음식보다 밖에서 사먹는 게 더 건강할 걸? 아. 이건 형수한테 비밀이다.”
“그럼 용돈 줘.”
“내일 줄게. 지금은 없어. 근데 내가 창식이 너보다 건강할 걸? 삼촌은 매일매일 헬스장 가서 무거운 것도 들고 그래! 삼촌 팔뚝 봐봐. 엄청 크잖아.”
실제로 나는 내 나이 치고 제법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술과 담배도 안 하고 운동도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혼자 바삐 살다 보니 최소한의 식사만 하고 있으며 온갖 영양제를 섭취하며 난 건강한 육체를 보유한 어른이 되었다.
“삼촌은 바쁘네. 회사 다니고, 공부하고, 고자 박사 또 공부하고, 운동하고, 요리하고.”
“삼촌은 꿈이 많아. 그래서 노력을 하는 거야. 창식이 너도 제육볶음이 아니라 너가 하고 싶은 일들이 가슴 어귀에 맺혀서 너가 어른이 될 때 계속 숨 막히게 다가올 거야. 그리고 창식이 너는 그걸 해야 해. 그게...”
“삼촌! 내가 아까 삼촌 군말이 많다고 말했지! 내 말 안 들어? 나도 배울 만큼 배웠어! 삼촌 같은 사람한데 반거충이라고 한대!”
“뭐? 뭔 충?”
“삼촌은 반거충이야. 아~ 삼촌은 반거충이 모르는구나?”
“알지 인마. 삼촌은 박사야 박사.”
“아까는 박사 아니라면서.”
한 대 쥐어막는 척하다가 급하게 온 연락을 확인하는 양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본다. 반거충이는 대충 뭘 배우다가 중간에 때려치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인터넷은 일컫고 있었고, 조가는 나를 반거충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틀린 말이다. 난 중간에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 내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창식이도 나이를 먹다보면 알게 될 거다. 포기하는 꿈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은 완성하지 못한 자기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덧없이 아이와 등산에 집착하게 되는 게 어른이라는 존재라는 걸 말이다. 나는 그 와중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가나는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그런 사회인이다. 형수의 말처럼 창식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삼촌. 하나만 해. 지금 뭘 너무 많이 하잖아. 뭐든 하나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알알다. 알았어. 하나만 할게.”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삼촌은 진짜 뭐가 하고 싶은 거야? 왜 집중을 못해?”
“다 할 거야. 너도 어른 되면 알 거야. 다 해야 해.”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해.”
“야. 나도 알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말이야. 그게... 다 하고 싶다 이 말이지.”
“제육볶음 두 접시만큼 간절한 게 없어? 난 제육볶음 두 접시를 진짜 만들고 싶으니까 다른 게 집중도 안 되던데. 삼촌 꿈들은 제육볶음만도 못 해?”
내 혈육이지만 역시나 참 싸가지 없는 놈이다. 용돈 준다는 말은 취소다. 내일 창식이가 내 곁에서 서성이면 도망가야겠다. 창식이가 입대를 하면서 자기가 어른이 되면 통일 될 줄 알았다는 한국에서 50년 간 이어져 내려온 번민에 빠지는 그 순간까지 창식이 설날 용돈은 제육볶음용 고기와 양념 세트로 제공할 계획이다. 농담 아니다. 진심이다.
“삼촌. 하나만 해야 잘 할 수 있어. 집중해야 해. 공부하는 척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해.”
“형수가 그래?”
“아니.”
“할머니가 그래?”
“아니!”
“너 요새 이상한 책 읽어?”
“아니라니까!”
“제육볶음 만드는 책이나 읽지 그래?”
아싸 이겼다. 창식이는 씩씩 대면서 장례식장 내실로 들어갔다. 참 싸가지 없는 놈이다. 다시 멍하니 앉는다. 승리에 도취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세리머니를 해본다. 새벽 2시였다. 점심이나 되어야 문상객이 올 텐데 이제부터 뭘 하고 시간을 때워야 할까. 아버지 영정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채우고 있던 것들을 잃고 나면 시간이 많아진다.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게 꿈이든 말이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텅 빈 시간이 내 앞에 ‘툭’하고 던져지면 이 시간들을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아버지를 상실한 와중에도 그런 공허함과 공허를 채워야겠다는 조급함만 남는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발인을 끝나고, 장례식장을 정산하고, 와준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출근 못한 기간 동안의 일을 처리하고, 그리고 지쳐서 쉬고, 그간 못 따라잡은 고시 공부를 하고,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박사 공부를 하고, 또 지쳐서 자고. 그리고. 반복하고.
이 중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뭐부터 해야 할까. 다 하기 싫은데, 그 중 그나마 하고 싶은 게 뭘까. 모르겠다. 피곤하다. 배도 고프다.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니다. 그런 생각하지 말자. 난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 잘 살고있고 말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잘 살고 있고 이 이상 멋있게 사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냥, 장례식이라고 괜히 좀 울적한 것 같다. 뭐라도 먹고 자야겠다. 근데 또 장례식장 음식은 별로다. 제육볶음이 꿈이라는 창식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제육볶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만들 줄은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