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토해야만 살 수 있다. 下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3.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출근은 해야 한다.
[Scene 7. 불이나 났으면 좋겠고 N달+3일마다는 즐겁겠지. 그리고 금요일은 별날이 아니지]
알람이 울린다. 05시 50분일 거다. 머리가 아프고 속은 울렁거린다. 언제부터인가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다. 수면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과학적이면서도 무책임한 효능이 적힌 보조제을 먹고 있지만 역시나 잠을 자도 자도 피곤하다. '아 그냥 다 불이나 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세상은 멀쩡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기계적으로 두유를 내 입에 주유한다. 화장실로 향한다. 나의 주치의인 변기는 잘 있다. 반쯤 눈을 감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마스크와 이어폰을 챙기고 출근길에 오른다. 출근 소요 시간 52분 정도는 기억을 잃는다. 차를 살까, 대출을 받아서 근처에 전세를 구할까. 항상 결론은 부모님의 집에 살면서 돈을 더 아끼는 게 낫다는 어눌한 각오였다. 회사 가까이 있는 지하철역이 다가오면 놀랍게도 정신이 든다. 3일만 지나면 월급이 나오겠지. 그리고 한달+3일 뒤면 또 월급이 나오겠지. 앞으로의 N달+3일마다는 즐겁겠지.
지하철 문이 열렸고, 나는 내렸고, 계단을 올라갔고, 회사 쪽으로 나있는 출구 밖으로 올라갔다. 빌어먹을 출구 에스컬레이터는 노후화로 인해 교체 작업 중이었다. 그 기간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늙어서 죽어버린 에스컬레이터만큼 나의 노후화도 이미 상당량 진행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살면 나도 이름 앞에 고(故) 자를 붙이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람이 계단 때문에 힘들어 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어디서 큰 불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는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지 모르겠다. 비유적 표현으로 모르겠다는 게 아니다. 진짜 왜 힘든지를 모르겠다. 나름대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서울 안 4년제 대학교를 나왔고 더 좋은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으며 박사 수료 상태까지 만들었다. 박사 학위는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아서 마음 편히 포기했다. 어차피 평범한 사람들은 수료나 학위 졸업이나 구분하지 못하니 큰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 자유가 나에게는 큰 즐거움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이 와중에도 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얻었다. 나는 회사 안에서도 능력이나 건실함을 인정받는 노동자로서 인턴 때도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사실상 내정되어 있어꼬 직급도 남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올라갔다. 월급이나 자산도 남부럽지 않았다. 연애도 사랑도 할 만큼 했다. 종합적으로 나는 내 멋대로 제법 성공하며 살아왔다.
근데 뜬금없이 최근 모든 일이 힘들어졌다. 저녁에 어떤 방식으로든 술을 마셨고 꼭 토를 했다. 토하고 나면 씁쓸한 위액과 함께 촉촉하게 맑게 자신 있게 빠른 속도로 잠 들었다. 이제는 내가 술을 마셔서 토를 하는 건지, 토를 하기 위해 내가 술을 먹는 것인지 할 수 없는 알콜성 호접지몽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하여튼 요새의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끝없는 공허했다. 나는 업무상 만나는 사람에게도, 지하철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냥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일을 하나씩 처치할 때도 성취감이나 안도감보다는 무감각과 허무함이 남았다. 휴가가 필요한가 싶어서 눈치가 보여도 장기 휴가를 써보았다. 그러나 해소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좋은 옷도 사보았고, 평소에 읽고 싶던 책도 읽어 보았고, 친구들과 비싸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해외여행도 다녀와 보았다. 그러나 이 공허함을 메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분노를 삭이는 행위로 대부분의 일과 시간을 보냈고 오늘도 금요일이 왔다. 동료들은 다들 퇴근시간이 되자 불금불금 거리며 어디론가 떠났다. 사원 최성우는 주섬주섬 내용을 알 수 없는 프린트물들을 뽑았고 슬리퍼를 신고 퇴근을 했다. 지난주부터 사원 최성우는 공무원 시험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원 최성우가 업무와 관련 없는 공무원 수험 프린트를 회사 복합기로 출력한다는 점에서 사원 최성우가 소소하고도 확실한 횡령, 즉 소확횡을 하는 건 아닌가 괘씸하지만. 이해한다. 회사는 우리의 시간을 끝없이 횡력하는데 종이 따위는 괜찮겠지. 한편 사원 김지유는 주중에 도착했던 택배들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크나큰 종이가방에 넣었다. 사원 김지유는 최근 쇼핑을 많이 했다. 근데 사원 김지유는 주중에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지도 않고 2~3주 후에야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갔다. 팀장님은 괜스레 누가 안무로 짜준 듯한 모양도 이상한 체조를 하며 혼잣말을 시작한다.
"흐흐흐흠 날이 좋구만~"
나이가 들면 모든 문장에 음정과 박자가 부여 된다. 인생이 레벨업 하면 인류라는 게임의 운영자가 부여하는 능력이지 않나 싶다. 금요일, 아니다 거의 모든 퇴근시간에 팀장님은 직원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집에 가기 싫은 거다. 어느 놈이든 심심해 보이는 사람을 찾으면 같이 한잔하자고 할 계획이다.
이해는 한다. 작년인가 만취한 팀장님에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마루에 앉으면 가족들의 눈치를 본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팀장님은 집에 들어가기가 민망하단다. 팀장님은 자신이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받으며 마련한 자기 집인데 자기의 공간은 거실 소파의 우측 4분의 1지점 정도뿐이라는 한탄이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두 달 만에 보는 것 같은 딸에게 오늘은 몇 시에 학교에서 돌아왔냐고 질문했는데 우리의 영애님은 팀장님에게 “민망하게 갑자기 아빠인 것처럼 행동은 하지마”라고 퉁명스레 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단다.
팀장님은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맞는데... 경제학적으로도 아버지가 맞는데...'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을 했으나 딸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미안하다"라는 대답을 건냈다고 한다. 와. 명답이다. 그때만큼은 팀장님이, 아니 인간 오유화가 안쓰러웠다. 회사에 20년 넘게 헌신한 인간 오유화에게 회사는 놀이터고, 학교고, 집이고, 고향이다. 저 시절 분들은 1년 365일 일평균 14시간을 회사에서 청춘을 보냈다. 실적이 안 좋으면 쪼인트도 까이고, 가기 싫은 술자리라는 개념조차 없이 매일매일 누군가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다. 위로도, 사랑도, 아픔도, 성취도, 외로움도 다 회사 안에 있는 게 팀장이자 인간 오유화의 삶이었으리라. 그래서 팀장 겸 인간 오유화는 여유 있는 금요일 저녁에 회사 사람들하고 놀고 싶고, 이야기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이제는 그것도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괜히 저러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덧없다. 그리고 금요일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 거 아닌 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나는 휴식을 위한 사적 대도무문의 길을 걸었다.
"아이쿠야.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좋은 주말 보내십쇼!"
물론 약속은 없다.
[Scene 8. 걸어 걸어가다 보면, 앞으로 얼마나]
사무실을 뛰쳐나온 나도 남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찌 되었든 회사 건물 밖은 좀 더 행복하니 최대한 빨리 회사 밖으로 나가고자 발을 재촉한다.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나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관문인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녹록한 공간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인사를 하고 서로 쭈뼛쭈뼛 안부를 물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눈치를 보아야 하는 마지막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묘한 공간인 엘리베이터이기에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누군가는 층수가 변하는 화면을, 누군가는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이 있는지 슬몃슬몃 눈알을 굴린다. 나는 이 방면의 전문가이기에 빠르게 엘리베이터 벽을 보고 서있는다. 사보를 읽는 척 하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엘리베이터의 전등을 없애는 건 어떨까 싶다. 안 보이면 편해진다. 다들 좀 더 편해져야 한다.
건물에서 뱉어진 나는 걷기 시작한다. 생각이 복잡하고 기분이 다운 되어 있을 때는 그저 걷는 게 나에게는 그나마 가장 큰 힐링이었다. 주말동안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주말이 아까워서 뭐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고민을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한지를 톺아본다. 답도 안 나오는 긴 고민 후 슬슬 몸에 땀이 난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근처 지하철을 찾아본다. 망할 놈의 서울 땅은 지하철이 그렇게나 많다는데 왜 내가 찾을 때는 없을까. 강남에는 사거리마다 지하철이 있는데 왜 내 눈앞에는 없는 걸까. 나의 운에 대해 회고한다. 땀은 더 흐른다. 마침 근처에 지하철이 눈에 보였기에 망정이지 비싼 택시비를 쓸 뻔했다. 물론 택시 어플리케이션은 진작에 지웠다.
한산한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역 내 안내 전광판을 보니 지하철 한 대가 승강장 진입 중이었다. 순간 나는 인디아나 존스에 빙의해서 겨우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스스로 대견해서 씨익 웃었다. 그러나 나는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승차했다. 나를 위에서 바라보는 조물주도 나의 한심함에 씨익 웃었을 것이다. 하여튼 지하철은 3호선이었고 오금행이었다. 다음역에서 내릴 생각을 하니 성질이... 나지 않았다. '오금행' 열차였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였다. 따뜻해졌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여하튼 좀 따뜻해졌다. 땀이 난다는 말이 아니라, 됐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자. 나도 꼰대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도 있어야 좀 공평한 거 아닌가.
차치하고 오금역 근처에 살 때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었다. 나는 그곳에서 7살 때부터 11살 때까지 살았었다. 아마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 고민 없는 기간이 몇 없는데, 오금역 근처에 살 때가 딱 행복한 그 즈음이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고, 행복한 시절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곳에 있다면 나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차피 주말에 할 일도 없었다. 그냥 오금역까지 향했다. 종점답게 발랄한 음악이 하차를 종용했다. 나의 금의환향을 반겨주는 팡파르라고 생각하니 새삼 기분이 좋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는 칙칙폭폭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자부심마저 느끼며 나는 내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예전 살던 집 방향의 출구가 어디인지 몰랐다.
난 나의 촉을 믿고 느낌이 오는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틀렸다. 횡단보도를 3개나 건넌 뒤에야 내가 살던 집 방향 지하철 출구를 찾았다. 이때부터는 내가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맞았다. 골목에 들어서니 죽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다 기억이 났다. 자전거를 타던 나의 모습, 아이스크림 하나에 웃던 나의 모습, 어른이 되면 뭔가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던 나의 모습도 기억났다. 지금의 나와는 매우 다른 모습의 나였다. 모퉁이를 돌면 그곳의 나를 찾을 수 있다. 오랜만의 설렘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뀌어 버린 舊 홈런슈퍼를 끼고 돌자마자 있던 나의 살던 그 집은!
내가 살던 집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예전에 살던 집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기억 하고 있다. 이곳을 떠난 이후 살았던 집이 7곳이나 되는데도 나는 이 집에 관한 것만큼은 기억이 또렷이 났다. 그만큼 이 공간은 나에게 소중했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살던 집이 없었다. 그저 공사장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화가 났다. 물론 내가 이 땅을 산 것도 아니고, 내가 위대한 인물이 되어 시청 차원에서 내가 살던 집을 위인의 생가 터로 구입할 리도 없었다. 무엇보다 집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금의 내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또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났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짐승마냥 주억거렸다. 한참을 울고 나니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던 큰 물체를 하나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게 혹시 ‘나’라는 존재가 아닐까 무서웠다. 물끄러미 공사장을 바라보았다. ‘나’로 존재했던 그 때의 기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무서웠다.
“이제는 ‘나’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 집에서의 추억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나’가 사라진다는 건 물론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나라는 인식은 어차피 무형의 존재이고 나는 생체학적으로 살아 있으며 이곳 외의 다른 기억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라졌다.'는 표현은 애초부터, 물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표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볶은 머리를 한 백인 남성의 그럴싸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사라졌다는 표현을 우기고 싶었다. 이 공간이 주는 좋은 기억들, 예를 들면 외식을 하면 슈퍼로 들어가 과자를 한 무더기 사주시던 아버지, 사촌 집에 놀러가는 나를 배웅해주던 어머니,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는데 별말 없이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던 횟집 아저씨, 내가 놀이터에서 해가 지고 난 후까지 놀고 있으면 주먹밥을 만들어 주던 세탁소 아주머니, 같이 공놀이를 하고 샤워를 하던 형. 이 공간이 사라지고 나니 모든 게 사라졌다는 느낌만 강하게 남았다. ‘나’라는 인간이 지나온 기억들이 보고 싶어졌는데 말이다.
자리를 옮겼다. 오금역 근처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 맥주 두 캔을 사서 앉았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국산 맥주로 골랐다. 스스로를 자각하고 싶어졌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고 얼굴을 촉감을 느끼기 위해 얼굴 이곳저곳을 눌러보았다. 물리적으로 나는 여전히 잘 존재했다. 그리고 내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았다. 주민등록증 안 18살 어귀의 나는 참. 젊었다. 강동노. 내 이름도 잘 보였다. 법적으로도 난 잘 존재했다. 그런데 ‘나’를 어떻게 스스로 인지해볼 수 있나 고민에 빠졌다. 역 앞에 송파경찰서가 있으니 가서 물어볼까. 아니다. 이상한 사람 취급 받고 잡혀갈 수도 있다. 그건 싫다.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회사 직급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 어딜 가든 나는 인사팀 대리이니까 말이다. 그렇다. 나는 ‘대리’이다. 다른 건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나의 삶 대부분이 회사인데 내가 대리가 아니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대리라는 사실이라도 믿고 살아야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대리’가 되어 있었다.
[Scene 9. '안녕하세요 저는... 그... 뭐냐... 뭐지?']
그래도 내 존재가 아쉬워 다른 단어로 나를 채워 넣고자 시도한다. 강동노를 어떤 단어로 꾸며볼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채울 수 있는 게 없었다. 앞으로 나는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앞으로 나는 뭘 할 수는 있을까. 나는 누구의 남편도 아니었고, 누구의 아빠도 아니었다. 역시 나는 '대리'이겠지.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는 대리라는 직급에 맞는 연기를 잘 하고 살고 있으니까.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게 대리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누구보다도 대리라는 직급에, 그 분수에 맞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거 빼고는 나는 도대체 뭘까. 나는 뭘 하고 싶고,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빠르고 정확하게 나왔다. 회사일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내 삶을 가득 채워 버렸다. 그래서 나는 대리가 되어버렸다. ‘인간 강동노’는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컴퓨터로 따지면 휴지통에는 이미 들어가 있고, 더 나아가 휴지통 비우기 과정 중 72% 정도 되는 존재가 인간 강동노였다. 대리는 커졌고 인간 강동노는 작아졌다. 작아지다 못해 사라지고 있었다.
편의점 내부 등이 꺼졌다. 그리고 편의점 알바보이가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문을 잠갔다. 그리고 편의점 알바보이는 침을 ‘퉤’ 뱉더니 사라졌다. 최근에는 24시간 편의점이 아닌 곳도 많다더니 여기가 그곳인가 싶었다. 근데 알바 자식이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물 흐르듯 마감을 하고 떠났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말이라도 해주지. 없는 사람 취급을... 아. 난 대리로 존재할 수 없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맞았다. 알바보이에게 나는 대리님이 아니니 말이다.
난 죽은걸까. 죽음이 뭘까 고민해본 적은 있다. 그냥 세포 분열이 끝나고, 뇌로 전달되는 혈액이 없게 되거나 심정지 상태가 되는 거라 생각했는데. ‘어머나 깜짝이야’ 난 이미 죽어있었다. “넌 이미 죽어있다.“ 라는 고전 명화의 오그라드는 대사가 얼마나 합리적이었나를 새삼 느껴본다. 혼자 땅을 파고 거기 누워 있는 청승을 떨까 했는데 이미 다른 영화에서 했던 거라 따라 하기 민망하다. 태양신 숭배를 기반으로 하는 여타 종교들처럼 동지(冬至)를 전후해서 다시 태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근데 뭘로 다시 태어나지? 어렸을 때는 ”꿈이 뭐냐“는 질문이 그렇게 설렜는데 이제는 망상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속이 또 울렁거린다. 술을 더 빨리 마신다. 그래야 더 시원하게 토할 수 있고, 그나마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을 테니까. 그리고.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문구는 '12학번 김지유'이었다. 지금의 사원 김지유였다.
"오빠... 라고 불러도 되는 거지요?“
사원 김지유는 취해 있었다.
"아! 그렇지 그렇지. 회사에 같이 있는 게 익숙하니까 서로 이름도 못 불렀네. 이 시간에 전화는 처음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는 거야?“
"아니. 오빠는 못 생겨서 안 돼. 여자가 생긴다면 응원하겠지만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정도는 넘어선 얼굴이야. 그래서 소개는 안 해줄 거야."
반가웠다.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이 반가운 게 아니다. 이런,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 같은 이야기 자체가 반가웠다. 김지유와 대학시절 장난처럼 주고받던 이 뻔한 레퍼토리가 참 반가웠다.
"김지유야 나도 잘 잘 뜯어보면 잘 생겼어. 너 동기 변xx도 나한테 빠져서..."
"됐고. 동노 오빠. 나 너무 힘들다. 진짜 죽고 싶어. 다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회사생활이 다 이런 거야? 선배들은 어떻게 견뎠어? 난 아직도 회사가 이런 게 남이 있는지 몰랐어. 시대가 어느 때인데... 씨발."
숙연해진다.
“왜 그래 지유야. 금방 적응할 거야. 나도 그랬었고. 최 과장님이나 오 팀장님도, 이xx 사원도...”
음... 다 열거하려니 길다. 모두 다 너를 예뻐해서 그러는 거라고 위로 해주려 했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 한 명에게 그따위 희롱을 해댄다면 이건 분명한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아니다. 예쁜 말도 접자. 이건 범죄였다. 법도 작년인가에 상겼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그 법은 처벌조항조차 없다는 말을 듣고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교육 때 나는 숙면을 취했다.
“오빠. 나 진짜 힘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본부장님한테 직접 말해봐야 본부장님은 그냥 그 직원들 불러다 대충 훈계만 할 텐데. 그럼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거잖아. 왜 그때는 같이 웃고 떠들어 놓고 뒤에 가서 갑자기 그러냐고 사람들이 나 욕할 게 눈에 선해. 노조에 말해도 별반 다를 거 없을 것 같아. 오빠 나... 어떻게 해야 돼? 처음에는 그냥 포기하고 지냈는데, 그러지를 못하겠어. 그냥 다 역겨워. 내가 당한 건데 왜 참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 요새 정신과까지 다닌단 말이야. 너무 힘들어 진짜..."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대리 강동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1인 시위를 할까, 언론에 알릴까, 현장에서 바로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라고 해볼까. 그러나 한 영화의 대사처럼 사람은 상상력 때문에 비겁해진다. 내가 나선 후 나에게 남는 것을 무엇일까. 그냥 갑자기 뒤통수나 친 못난 대리 강동노로 끝날 거다. 인간 강동노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난 대리 강동노가 더 본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대리 강동노에게 위험이 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법은, 상식은, 정의는 책 안에 있지 우리 곁에는 없다. 월급은 나의 혈액이고 회사는 나의 뼈이며 진급은 나의 엔도르핀이다. 인간 강동노는 나의 살던 아름다운 공간처럼 사라졌다. 대리 강동노만 남았다.
나는 너무나 뜬금없지만 김지유에게 말 같지도 않은 존댓말로 답을 했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아니야 오빠. 그래도... 아니야. 좋은 주말 보내”
전화는 끊어졌고, 나의 무언가도 끊어졌다. 술기운 때문인가 생각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맥주는 추가 구입한 캔까지 더해 5캔을 넘어섰었다. 토 하고 싶어졌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토를 했다.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았다. 남부럽지 않게 우울했고,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었다. 다시 한번 목에 손가락을 넣는다. 그러나 토해낼 게, 꼬여버린 내 몸 안에는 없었다.
나는 무엇을 토해내야 할까.
토를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안에 있는 모든 걸 쥐어짜내 토해내고 싶은데. 토를 할 수 없었다. 토해내지 못했다. 토해내야 살 것 같은데 말이다. 어둡다. 춥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왜 그런 걸까. 종합건강검진 결과에는 그렇게나 건강하게 나왔는데 말이다. 다음주에는 나도 정신과에 가봐야겠다는 진단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이곳에 오는 길에서 느낀 설렘은 사라지고 집까지 얼마나 걸릴까 짜증만 난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소리를, 잡념을 차단한다. 칙칙폭폭 집 가는 길은 참 멀다.
4. 영웅이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데, 영웅이 못 되는 나를 내가 탓해야 하는 이 사회가 참
[Scene 10. 토를 할 게 남아있지 않다는 슬픔]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다. 일어나고,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내 업무를 하고, 본 업무에 준하는 수준의 잡무를 하고, 진상 고객을 처리하고, 점심을 먹고, 점심을 먹으면 참을 수 없는 여유가 생기는지 사원 김지유에게 말도 안 되는 희롱을 해대는 사람들을 보고, 나한태 무리가 안 가는 범위에서 사원 김지유를 돕고, 퇴근하다가 술을 마시고, 토를 한다.
또다시 월급날이 되었다. 월급이 주는 정기적 행복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금액 이상 돈을 모으게 되니 별 감각이 없다. 어차피 월급으로 집은 못 산다. 차는 딱히 살 생각이 없다. 결혼도 하고 싶지 않다. 돈 나갈 일이 없고 돈을 딱히 쓰고 싶지도 않으니 돈은 참 잘 모인다. 그래도 인생 일발 역전을 꿈꾸며 복권을 산다. 솔직히 당첨 되도 사고 싶은 것도 없지만 당첨되면 무슨 일을 해볼까 상상을 하기 위해 복권을 산다. 일단 몇명의 사람의 귓방망이는 한 대 올려붙이고 회사 엘리베이터의 전등을 싹 다 깨고 퇴사부터 해야겠다. 전구를 어떻게 깨야 유리가루를 안 맞을까 고민하던 중 잠시 휴대전화가 울린다. 사원 김지유로 부터 온 장문의 문자였다.
"오빠. 나, 회사 그만두기로 했어. 너무 지쳤어. 일 하고, 욕 먹는 기계처럼 살기 싫어. 역겹게 치대는 사람들도 싫고, 염치도 없이 자기 일 넘기고 좋다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보는 것도 싫어. 그냥, 좀. 인간답게 살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지? 그동안 오빠가 나 많이 도와준 것도 알아. 고마웠어. 근데, 오빠도 좀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그냥 그렇게 살지 말라는 욕이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설명을 못 하겠어. 그래도 오빠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빠. 나 회사도 다 잊고하면 그때 같이 밥 먹자. 난 오빠 믿어. 안녕!"
머리가 핑 돌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공석이 된 말단사원의 일까지 내가 더 해야 하는 짜증 때문일까. 부족한 철분 때문일까. 미루어둔 신경치료 때문일까. 술은 안 먹었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사람처럼 살라는 김지유의 당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 과장님이 나를 자리로 부르셨다. 사원 김지유가 요새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를 나에게 물어본다. 많은 생각이 지나친다. 그리고 답 한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업무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요? 아무래도 첫 직장이다 보니까..."
며칠이 더 지났다. 어지러움은 점점 더 심해졌다. 헛구역질도 계속 올라왔다. 억지로 음식들을 입에 꾸겨 넣고 술을 많이 마시고 모든 걸 토해내기도 했다. 그 다음날에도 손가락을 목에 넣었다. 토해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헛구역질만 할 수 있었고 몸은 더 안 좋아졌다.
이제는 나에게 사원이라는 두 글자를 떼어낸 김지유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면목이 없었다. 김지유의 잘못은 없는 것 같았다. 피해자인데 왜 그만 두어야 했을까. 아니다. 피해자라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났다. 참 흔하면서도 잘못된 결말이었다. 당한쪽이 도망가야만 하는 현실. 내가 지난날, 외면해왔지만 자주 보았던 결말들이었다.
대리 강동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사문화를 바꾸자고, 책임자를 고발하고 처벌을 받게 해야 할까. 방법은 많다. 법은 정교해지고, 많은 용기있는 사람들의 헌신으로 시대도 바뀌어 왔으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왔다. 난 용감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그저 열심히 살아온 시민34번 정도였다. 사무실 책상 위 탁상달력 위 업무일정을 나에게 내려진 신의 계시처럼 여기고 이걸 잘 해내기 위해 치열히 살아왔다. 그렇게 탁상달력만 바라보며 잘도 외면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문득 비겁하고도 비범한 생각이 든다. '이번도 그냥 시간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회사 문화도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으니까 이런꼴을 이제 차차 안 볼 수 있지 않을까?
헛구역질이 나온다. 대체 나는 뭐가 되어버린 걸까. 잘못된 것을 눈앞에서 보았고 그 결말 역시 옳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나 잘 아는데 그저 해식해식 웃으면서 못 본 채 하는 인간 강동노는 대체 뭐가 되어버린 걸까. 정답은 생각보다 빨리 알아챘다.
난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만화처럼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법 보다는 밥이 무겁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왔다. 내가 영웅이 될 필요도 없고 내가 영웅이 될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이 핑계들은 다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현실이 나를 가해자로 만드는 동안 참 성실하게 가해자 입문 과정을 성실하게 임해왔다. 그렇게 나는 인간 강동노에서 대리 강동노가 되었다.
이 현실이 버겁다. 그래도 스무살 이후에는 진보정당에도 투표하고 시민단체에도 매달 기부해왔고, 노도 대의원도 역임하며 스스로를 좋은 시민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건 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헌금 같은 것이었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난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토하고 싶어졌다. 토하면 빨리 잠들 수 있다. 퇴근길은 31분이 남았지만 잠깐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제일 가까이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 4캔을 산다. 안주도 없이 계속 마셔대며 퇴근했다. 지하철에서 조심스레 비닐봉투로 감싼 맥주를 마시는 나를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심야의 지하철 승객들은 이미 원치 않은 회식 후 뻗어있기 때문이다. 취한 상태로 승차하나, 승차한 상태로 취하거나 선후관계만 바뀌었을 뿐이다. 심야의 지하철은 모두 '대리 강동노'들로 가득차 있는 게 사실이다. 집에 도착하고 손가락을 집어 넣고 토하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종교적 의례 행위로 보일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빙글빙글 도는 천장을 느끼며 잠들 수 있었다.
[Scene 12. 토를 할 게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취소한다. 역시 토해야 살 수 있다. 꺼억]
알람이 울린다. 5시 50분일 거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두유를 입에 주유했고 샤워기에 물을 틀고 다시 손가락을 입에 넣어 토했다. 정신이 좀 든다. 머리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샤워하고 지하철을 타고, 52분 동안 기억을 잃었고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는 걸 한번 더 포기하고 회사 입구쪽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여전히 수리 중이라 짜증을 낸다. 사무실에 가방을 두고 화장실로 들어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목에 넣는다. 한번만 더 토하면 머리 아픈 것도 괜찮아질 텐데 토하는 데는 실패했다. 토할 게, 분명히 남아있는데 말이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머리가 쪼개질듯 아프고 속도 안 좋다. 끝없이 토하고 싶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근청 정신과를 찾아보기로 한다. 검색해보니 회사 근처에는 정신과가 많다. 나 같은 놈이 많구나 싶다. 왜인지 알 수 없으나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어디를 다닐까 골라본다.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다. 일단 머리라도 식히야겠다 싶어서 회사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을 둘러본다. 오늘은 누가 어떤 쪼잔 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을까. 그리고 누가 거기에 또 다른 쪼잔 한 불평불만을 댓글로 달았을까. 나도 회사 근처 지하철역 출구 에스컬레이터 욕을 해볼까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손가락을 목구멍 대신 자판기 위에 올린다. 한 글자, 한 글자 경쾌하게 피아노 젓가락 행진곡 치듯 누르기 시작한다.
'나는 고발한다.'
내가 입사 이후 봐온 모든 불합리한, 정확하게는 법을 위반한 일들을 일휘일지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사적 감정이나 자잘한 건 넣지도 않았다. 진짜 불법들인 것만 기록했다. 그래야 댓글에서 벌어질 전쟁을 방지하여 논지가 산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 현실이 어찌 되었든 법을 지켜야 한다는 대전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짜 다 토해냈다. 사내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뿐만 아니라 본사 감사과, 본부장님 직통 이메일, 노조 게시판, 직장 갑질119 등 모든 곳에 나는 다 '토해냈다' 40분을 쉬지도 않고 키보드를 눌렀다. 직접적인 문제 해결을 요청했고 재발방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후속 조치가 적절하지 않다면 나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남겼다. 작성완료, 송신완료 등의 문구를 확인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내렸다. "후우..." 나는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김지유가 나에게 해준 말처럼 이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꽤나 기분이 상쾌해졌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오랜만에 멀쩡하다. 마치 토한 직후처럼 말이다. 시간은 8시 30분이다. 믹스 커피를 타 들고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제 본격적인 출근시간이다. 다들 사무실로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고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넣고 커피나 우유 따위를 들고 인트라넷을 킬 것이다. 그리고 다들 나와 같이 기분전환이나 하자며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을 볼 것이다. 분명히 윗선에서는 누가 작성했는지를 찾아내라는 이야기가 나올 거다.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다들 글에서 지목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터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할 거다. 나는 본부장님께 직접 이메일을 보냈고, 익명 게시판이라고 할지라도 누군지 찾는 건 순간이다. 과장님이나 팀장님은 나를 따로 부르겠지. 혼을 내려나 회유를 하려나. 하여튼 욕은 좀 먹을 것 같다. 본부장님이나 본사 감사과에서 나를 부를 수도 있을 거다. 그럼 또 토해낼 거다. 술을 마시고 구토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과 생각을 토해낼 예정이다.
이 짓이 대리로서 할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대리라면 조직의 보고절차를 밟거나 팀장과 개인 면답들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회사라는 조직은 상식과 법대로 행동해 달라는 외침을 우습게 만드는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근로기준법의 위상보다 팀장의 위상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무시하고 지켜야 하는 법과 상식이 있음을 외친 거다. 가끔씩은 이렇게 당연한 걸 새삼 지적해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정의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정의롭게 살자고 외치면 괜히 간질간질 해지는 게 이런 원리일 거다. 다들 좀 오그라들지만 집에 갈 때 쯤이면 평소와는 다른 생각들을 하겠지.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조금 변화가 있을 거다. 소나기 피해간다고 당분간은 조심하는 그런 소시민적 변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게 쌓여야 세상이 좀 바뀐다. 50년 전 누군가가 법을 지키라고 절규했던 그 순간 이후 현실의 힘에 극적 변화는 없지만, 최소한 50년 뒤의 누군가가 그 법과 다른 법도 지키라고 외쳤을 때 다들 군소리는 못하는 세상이 왔듯이 말이다.
무슨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옥상 난간 넘어의 서울을 웃으며 바라본다. 대리 강동노는 이제 글렀다. 미친놈 취급 받을 게 뻔하고 인사발령도 날 거다. 그래도 좋다.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더 인간 강동노로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토할 게 남아있지 않았는데 토하고 싶어온 지난 몇 주를 회고한다. 내가 틀렸다. 토할 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난 토해냈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꺼억"
사무실로 돌아온다. 과장님이 팀장님에게 어금니를 꼭꼭 씹으며 무어라 중얼 거린다. 눈썹이 소용돌이치는 걸 보니 아마도 사건이라는 게 터진 모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모를 일이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도 모른다. 그냥 유야무야 아무일 없던 듯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인간 강동노로 살아보자.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옳은 일이라는 걸 해보자. 우선 휴대전화를 켜고 김지유에게 기프티콘을 보내고 문자를 입력한다. 그러나 보내지는 못 한다. 이곳의 이야기가 김지유에게는 고통일 터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이제부터 내가 짊어져야 한다. 자. 시작해보자.
<참고문헌>
노동법
조지 허버트 미드
어빙 고프만
김광수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지유
공무원 수험생 이xx
공무원 전x
공무원 오xx
대기업 정규직 진xx
2016년 일기, 2016, 취직해서 즐거웠던 ‘나’
2017년 일기, 2017, 취직하고 돈 쓰고 다니기 바빴던 사원 ‘나’
2018년 일기, 2018, 직장 생활이 우울해진 사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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