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
책을 내고 싶었다. 내 이름이 저자란에 올라간 단행본 책 한 권.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나도 모르게 발그레 볼이 달아오른다.
정확히 2년 전.
그러니까 2014년 9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문학소년이나 문예창작 같은 단어와도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어 한국 본사와 타 부서에서 온 요청 내용을 확인한다.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오전은 항상 정신이 없다.
참. 전날에 해결 못한 보고서 때문에 상무님에게 불려 가 한소리 듣기도 했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사람들 틈에 끼여 흡연장으로 이동한다. 하늘도 보고 기지개도 켜고 사람 구경도 한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또다시 오전 일과의 연장선이다. 그렇게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가 하면 어떤 날은 야근 혹은 술 약속이다.
한국의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 단지 이곳은 동유럽의 슬로바키아이고 난 그곳에 있는 한국 회사에 다니고 있을 뿐.
입사 9년 차가 다가오고 나이가 한두 살 들어가니 크고 작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급여 인상, 승진, 주식, 부동산 등. 그래 봐야 결국엔 돈에 관한 또 다른 호칭에 불과한 것에 지나지 않다.
나에겐 갈증이 있었다. 갈증...
단지 먹고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닐 지언데, 왜 다들 먹고살자고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책을 내고 싶었다. 내 이름 석자가 책 표지 위에 선명히 인쇄된.
내 이름, 회사 직함 외에도 작가라는 호칭이 하나 더 생긴다고 생각하니 간질간질하면서 나도 모르게 큭큭 웃음이 나온다.
우선 조언을 얻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인 중에 책을 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인터넷으로 각종 사이트 검색을 시작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우선 글을 써라. 되도록 많이 그리고 넉넉하게"
무슨 글을 쓸까? 얼마의 양을 써야 하나? 누가 흥미를 가질까?
아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나 까짓 게 글을 쓴다고 과연 내 글을 출판시켜 줄 출판사가 있기나 할까?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저녁 때나 주말엔 할 일도 없다.
기껏해야 골프를 치거나 소파에 누워서 영화나 유튜브를 보는 게 고작이다.
한 번 써보지 뭐. 오랜만에 몰입이란 걸 한 번 해보자!
먼저 무엇에 대해 글을 쓸지 생각했다.
그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유럽에 대해 써보자. 근데 너무 흔한 주제 아니야?
서점에 가보면 어마어마한 유럽 관련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내용들이 쉽지 않다. 여행서적 조차도 그렇게 느껴졌다.
쉽게 쓰자 - 다들 힘들고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다. 머리 쓰지 말고 그냥 쉽게 가자.
유럽 이민/일상에 대해 쓰자 - 유럽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여행책자들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자연스레 이민이나 일상적인 삶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씩 길이 보인다. 큰 줄기를 잡았으니 다음은 세부적인 가지를 만들면 되겠다.
우선 큰 제목을 4~5가지를 정하고, 각 큰 제목 내에 소제목을 적게는 2개, 많게는 25개 정도 정하고 나니 전체적으로 40개의 소제목이 생겼다.
이제, 다른 거 볼 거 없이 소제목에 대한 내용을 하나씩 채워 넣으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행위다.
어떤 날은 소제목 4개를 하루에 해치워버린 날도 있거니와 소제목 하나를 채우려고 한 달 동안 더듬댄 적도 있다.
그렇게 두 번의 계절이 바뀌어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전체 내용도 나름대로 채워졌다.
중간중간에 넣을 사진도 준비했고, 제목도 그럴싸하게 지어 놓았으니 표지 빼곤 완료가 되었다고 생각한 상태로 한시름을 놓았다.
곧바로 출판사에 보낼 책 소개서를 만들었다.
책의 내용을 한 페이지로 요약해서 워드 파일로 저장해 두었는데, 회사에서 매일 하는 일이 이런 일이기에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
과연 어떤 출판사가 내 글과 기획에 흥미를 가질까... 하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어났다.
우선, 내가 생각한 콘셉트의 단행본을 출판한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유명한 이름도 있었고 처음 들어본 이름도 있다.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으로 10군데의 출판사에 한 페이지 짜리 소개서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원래부터 일상이었다. 잠시 뭔가를 열중해서 끝 마무리를 했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곧이어 느낌에 야릇한 희열감이 몰려왔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없어도 상관없어. 나중에 인쇄소 가서 내가 제본하면 되니깐..."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기다리던 메일이 왔다. 'ㄱ 출판'이라고 하는 주로 소규모 출판사였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귀하의 기획서를 잘 읽어 보았습니다. 편집 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갈 예정이오니, 완료되었다는 원고를 송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이내에 출판 여부를 회신드리겠습니다."
서둘러 완료된 원고를 송부했고, 다시 메일이 왔다.
"귀하의 원고는 저희 출판사의 기획출판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획출판이라 함은 출판사에서 작가의 원고를 출판사 비용 부담하에 발행하는 시스템이고 이와 반대되는 말은 출판비용을 작가 스스로가 부담하는 "자비출판"이라고 한다.
자비 출판일 경우 작게는 300만 원에서부터 천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다는데 어찌 되었건 운 좋게 내 돈 들이지 않고 출판이 가능한 지라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혼자 배시시 웃기도 했다.
출판사 담당자는 책의 판형, 총 페이지, 컬러 여부를 알려주면서 30% 정도의 추가 원고와 더 다양한 사진들을 원했다. 결론은 내가 마무리했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전체적으로 70%의 완성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던 즈음 다른 출판사에서 뒤늦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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