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렌베리스 Sep 05. 2016

단행본 출간 과정, 그리고... [2]

'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

2016년 9월 5일 - 08:00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제 새벽 어렴풋이 무언가 번쩍거렸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마른 번개였으리라.

주차장까지 노트북 가방을 우산 삼아 빠른 걸음으로 내달려 차에 오른다.

곧바로 CD 함을 열어 Camel의 Long goodbye를 집어넣는다. 비장한 일렉기타 소리와 처량한 색소폰 소리에 묻어 나오는 보컬의 음색이 비 오는 동유럽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린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연락이 왔던 출판사는 꽤 이름이 있는 출판사였다. 역시 원고를 읽어 보고 싶다고 했고, 원고를 읽어보고 난 후 곧바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이 곳은 좀 시스템이 다른 출판사였다. 데뷔 작가에게는 주로 자비출판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비출판으로 진행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ㄱ 출판사'과 의리를 명분 삼아 고사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로 작업에는 속도가 붙었다. e메일로 사진과 글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1차 편집본으로 시작해서 여러 차례 수정과 추가 작업이 진행되었다.

중간중간에 또 다른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도 출장차 방문하게 되면 'ㄱ 출판사' 담당자를 찾아 미팅도 하고, 소주도 한잔씩 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정도가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기획서로도 설명이 안 되는 책의 편집 방향이다.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대방(출판사 담당자)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책은 당연히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기획이 되는지라, 담당자의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중간중간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다.

다음은 책 표지 디자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책 표지는 마음에 들지 않은 채로 출간이 되었다. 제목처럼 표지 디자인도 자체적으로 제작을 해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출판사의 주요 출판 장르가 시문학이다 보니 수긍이 가는 면도 있었다. 그래도 보잘것없는 내 글을 출판해 준다는 게 어딘가...


이제  마무리가 되었다며 조만간 완성본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때가 제일 두근거렸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2주일이 흐른 어느 날, 카톡으로 사진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리더니 축하한다는 텍스트 문자가 미리보기 기능으로 책의 표지와 출간소식을 알려준다. 당시 그 순간은 거래처 손님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막 슬로바키아 전통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던 참이었고, '씨익'하고 웃는 내 모습을 거래처 손님이 볼까 서둘러 표정을 무심히 바꾸었던 기억이 난다.

'출판이 되었으며 유통을 통해 대형 서점이랑 지방 중소서점까지 배본이 되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담당자의 카톡이었다. 그러면서 e메일로 계약서 파일을 보냈으니 한번 읽어보시고 한국 출장 오시면 회사에 들러 사인하시라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였다.

계약서를 읽어보니 초판 1쇄까지는 인세가 없고, 그 이후부터는 책 판매가의 10%라는 내용과 함께 5년간 책의 저작권을 소유한다는 내용이다. 뭐, 확인하고 뭐라 할 것도 없다. 그냥 출판사에 고마울 따름이었을 뿐.


이후의 일들은 그저 작은 에피소드 들이다.

저자 증정본이라며 20권의 책을 국제우편으로 소포 발송이 되었다. 우체국에서 온 '책 찾아가라'는 서류를 들고 소포 찾는 곳에 갔더니 담당자는 인보이스가 없으면 책을 반송시키겠다고 근엄하게 읇조린다.

당연히 인보이스가 있을 리 없어 이내 내용물을 확인한다는 핑계하에 박스를 오픈했다. 곧바로, 슬로바키아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를 보여주면서'이 봐라. 여기가 조~기 아니냐? 이 책 내가 쓴 거야. 그리고 이 책은 슬로바키아에 대해 쓴 책이고... 아마 한국말로 쓴 최초의 슬로바키아 책 일 꺼야.' 

이내 우체국 통관직원 셋이 모이더니 자기네들끼리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어서 가져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출판된 지 3개월이 지난 시간, 출장차 한국에 방문한 김에 출판사로 향했다. 담당자가 준비해 온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니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몽블랑 펜 한 자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쓸 때 없는 생각도 떠오른다.

계약서 사인을 마치고, 출판사 근처의 활어 횟집에서 소주 한 잔. 그리고 담당자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홍대 뒷골목의 아담한 선술집에서 2차를 하면서도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책과 문학 그리고 출판사라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마치 익숙했던 대화 주제인 양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책이 꾸준히 매일매일 나간다. 최근 몇 년간 이런 경우가 없었다'며 추가 작품도 기다릴 테니 되는대로 연락을 달라는 담당자의 멘트에 더욱 몽롱했던 술자리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무언가 많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던 내 기대는 잠시 방황을 한 사춘기 시절의 고등학생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근을 해야 했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과 웃으며 맞장구를 치고 그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척해야 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지 않도록 책을 냈다는 사실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이 다시 일상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데 왠지 모를 허탈감이 밀려온다.

아마도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큰 공연을 마치고 나면 이런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2016년 9월 5일 - 14:00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밖은 비와 바람... 이다.

다음 주 일요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3주간 한국 출장길에 오른다. 출장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답사 여행이라고 하면 옳겠다. 서울과 지방 그리고 일본에도...

회사를 나와 자영업자가 되니 시간적인 면은 참 편하다. 누구한테 보고를 하거나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것만 빼곤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행본 출간 과정, 그리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