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기차로... ㅣ 그리고 걸어서
한국에서 국경을 통과한다는 것은 뭔가 복잡한 이미지다.
여권을 준비하고, 긴 줄에 몸을 맡겨 입국심사대를 거친다. 왠지 모르게 남의 나라 입국심사대는 불편함 그 자체이다. 혹시라도 취업 관련으로 입국을 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서류가 완벽하더라도 입국심사관의 이런저런 질문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나름 잘 사는 나라들이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없다. 북쪽으로는 휴전선이 있고, 나머지 3면이 바다인지라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도 일본, 영국, 아일랜드처럼 그냥 섬나라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슬로바키아를 비롯해 인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은 바다가 없다. 보통 국경이 5 나라씩 맞닿아 있어 자동차, 자전거 그리고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가끔은 다뉴브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국경을 넘기도 한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사람들은 국경을 넘는다는 것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반응을 하곤 한다.
"어머, 우리가 지금 벌써 다른 나라로 넘어온 거예요? 정말 신기하다."
"여권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누가 검사 안 해요?"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의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인데, 쉽게 말해 서로 간의 국경을 폐쇄하여 회원국가 간 입출국을 간소화한다는 내용이다.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서유럽은 1995년 경부터, 동유럽은 2007년부터 시행이 되었다.
유럽여행을 하게 되면, 지금이야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그냥 통과를 하는 지라 원래부터 그랬거니 하겠지만, 동유럽의 경우 10년 전만 하더라도 입국도장받고 여권 얼굴과 본인 얼굴 확인하고 가끔은 별다른 이유 없이 30분 동안 한쪽에서 기다리게 한다거나 하기도 했다.
아주 까다롭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위축되곤 했다.
희한한 풍경은 주말 아침이면 슬로바키아 - 오스트리아 국경에는 골프채를 실은 한국 자가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슬로바키아에 제대로 된 골프장이 없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오스트리아의 골프장으로 골프를 치러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차에 탄 모든 인원의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도장 찍고 차 트렁크 열어서 의심될 만한 것들을 확인하곤 하다가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국경 경찰들은 여권 개수와 사람 수만 맞으면 귀찮은 듯이 손으로 어서 가라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동유럽 국가 들도 EU 멤버이자 쉔겐 협약국이다. 따라서 자동차로 국경을 통과할 경우, 먼지만 수북이 쌓인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검문소만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쉥겐조약 이전의 슬로바키아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국경 넘는 상황을 감상해보자.
(2007년 이전의 국경 통과의 모습들)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참 많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가 국경에 맞닿아 있다.
보통 자동차로 국경을 넘나들며 식당도 가고, 장도 보고, 쇼핑도 하는데, 가끔은 여행 삼아 가족과 기차로 국경을 통과하기도 한다. 또한, 비행기로 휴가철 및 출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래저래 국경을 통과하는 것에 대해 정리를 해 보면)
1. 서유럽보다는 동유럽 국경 통과 시 많은 시간과 귀찮음을 당한다.
2. 동유럽 국경 통과 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3.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 등등 대도시 공항이 아닌 시골 동네공항 통과는 입국을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4. 같은 국경인데도, 어느 날은 트렁크 열어 보고 왜 가느냐? 어딜 가느냐? 꼬치꼬치 캐물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여권 겉표지 국가명만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날도 있다.
5. 제발 여권에 도장 좀 안 찍었으면 좋겠다.
6. 슬로바키아로 입국하면서 국경을 넘는 순간은... 꼭 고향에 돌아오는 기분이다.
(보충설명)
1번 2번 :
헝가리, 체코, 폴란드 국도 국경 통과 시 항상 겪게 되는 일은, 일단 차를 한쪽으로 빼놓고 2~30 분대기. (도대체 왜 기다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비유럽인 국경 통과를 거부하는 일도 있다. '여기는 비유럽인은 통과할 수 없으니, 고속도로 국경을 통과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 국도와 연결되어 있는 국경이다.
고속도로 국경 통과는 여권 유효기간만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번 :
출장時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 등등의 공항을 이용한다. 워낙 외국인, 동양인이 많으니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가끔은 한국 인사말도 듣는다. '안뇽..가쎼요~~'
하지만 동양인이 거의 없는 이름 없는 작은 시골 공항으로 입국을 할 경우에는 뒷사람들에게 민폐다.
남쪽이냐 북쪽이냐는 기본(여권에는 South Korea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며, 그동안 찍힌 입국도장, 여권위조 유무, 슬로바키아 비자 등등을 한참 동안을 들여다본다. 그러고는 독수리 타법으로 여권 내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한다.
전화로 어디론가 물어보고.. 누가 오고.. 물어본 거 또 물어보고.. 뒷사람들은 다른 줄 만들어서 입국 끝내고... 사람들은 뭔일인가 하며 우리를 쳐다보고...
하지만, 그네들은 업무에 충실할 뿐.. 순진하고 진지한 얼굴로 대 만민 국 여권에 집중을 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4번 :
주로 왕래가 잦은 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의 입국 검문소 국경.
어떤 날은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는, 혹은 여자 친구와 싸운) 입국심사관에 걸리면,
어딜 가느냐?(밥 먹으러..) 왜 가느냐?(배 고파서...) 얼마나 머물 거냐..?(밥 먹고 올 거다..)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물론 뒷 차들에게도 민폐다.
하지만 어떤 날은 차 문을 열고, 여권을 내밀자 겉표지의 국가명을 흘깃 보고는 귀찮다는 듯이 빨리 가라는 시늉을 한다.
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슬로박으로 돌아올 때, 여권 겉표지만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다.
5번 :
이젠 여권에 빈자리가 없다. 내년도 비자 스티커 붙일 자리도 모자라다.
입국도장 좀 그만 찍었으면 좋겠다.
6번 :
당일치기이건, 여러 날 머물 건...
슬로바키아 국경을 통과하면, 꼭 집에 온 느낌이다.. (당연하지... 집에 가는데...)
익숙한 도로와 낯익은 푯말들...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