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유물전시관
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찾아가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떤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계획을 짤 때 그곳에서 가장 큰 미술관 또는 유명한 박물관 방문을 일정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봤던 명화나 아름다운 조각상을 직접 볼 때 느끼는 감동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전 선조들이 만들거나 사용했던 물건들을 발굴해 전시해 놓은 것에도 매력을 느낍니다. 옛날에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요로콤 조로콤 살았다더라 하는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더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기 때문입니다. 역사책 속 이야기가 내 앞에 실물로 구현된 것이라는 생각에 전시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콩닥콩닥 심장박동에 맞춰 비트를 탑니다. 단순히 남아 있는 유적이어도 신기할 텐데 기나긴 세월 땅속에 파묻혀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상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그 감동 주변에는 신비한 후광까지 입혀집니다.
1323년 여름, 중국 경원 慶元(현 저장성 닝보)에서 배 한 척이 중국과 인근 나라에서 모은 상품을 가득 싣고 출항했습니다. 당시 경원은 고려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역 중심지였고, 동남아시아와 아라비아 상인까지 오고 가는 국제적인 항구였습니다. 지리적으로 대륙을 관통해 흘러나오는 운하와 바닷길이 연결되고, 중국 남방과 북방에서 나는 물건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배는 일본에 있는 하카타 博多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카타는 당시 일본이 중국이나 한반도와 무역하는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항구였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상업도시였으며, 중국과 한반도 문화가 유입되는 창구역할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배에 싣고 가던 화물이 도착할 최종 배송지는 하카타와 교토 京都에 있는 사찰이었습니다. 당시 사찰들에서 건립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과 교역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그 화물들도 그러한 무역활동 중 하나였다고 추정됩니다.
계절풍을 따라 순조롭게 항해할 경우 일본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습니다. 먼바다에 풍랑이 심할 경우 고려 연해까지 와서 흑산도나 탐라를 거쳐 가면 시일이 조금 더 걸리기도 했지만 당시에도 그리 먼 항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역선은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름철 빈번하게 남중국해와 한반도를 찾아오는 태풍 때문에 표류하다가 결국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사찰 신축과 포교라는 원대한 목표는 많은 화물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20여 미터라는 다소 얕은 바닷속 갯벌은 배와 도자기 같은 화물들을 모두 덮어버렸습니다.
그로부터 652년이 지난 1975년 8월, 신안 섬마을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 그물에 물고기와 함께 중국도자기 여섯 점이 함께 걸려 올라왔습니다. 652년 전 사찰과 신사가 품었던 꿈이 도자기들과 함께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한국 수중고고학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되어 '신안선'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배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수중고고학계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 최초로 수중발굴조사가 진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정)이 가지고 있던 역량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해군은 대한민국 최고 다이버 해난구조대 SSU 대원 200여 명을 투입했고, 유물 조사와 발굴에 경험이 많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참여하고 전라남도와 신안군이 지원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발굴작업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해역에 비해서는 낮다고 해도 20m 깊이 바닷속에서 발굴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서해는 물살이 거세고 물속 시야가 매우 나빠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온이 낮으면 물속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수중발굴조사는 6월에서 9월 사이에만 가능했습니다. 결국 1976년에 시작된 수중발굴조사는 1984년까지 9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국 최초로 진행된 수중발굴조사 과정에서 신안해저 유적은 1981년 사적 제274호로 지정되었고, 여기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문적으로 보존 처리할 전담시설이 필요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부설 목포보존처리장은 1981년 8월 그렇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1983년에서 1984년 사이 고려청자운반선이었던 '완도선' 수중발굴도 이뤄지면서 인근 해역에서 나오는 수중유물이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부설 보존처리장이었던 곳을 대통령령으로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로 개소하게 되었고, 이후 1991년 진도 통나무배 발굴까지 진행되면서 1994년 12월 현재와 같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내에서 유일한 해양역사문화 복합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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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1974년 발굴작업을 시작했는데,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는 장소는 20년이 지나서 개소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양유물이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해양유물들은 원형을 복원하는 과정과 추가적인 부패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처리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정교한 작업이 요구됩니다. 배 크기와 유물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매우 오래 걸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최초로 수중발굴을 시작해 보존작업에 들어갔던 신안선은 모든 유물을 처리하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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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유물전시관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찾아가는 길은 다른 원도심 관광지로 가는 것보다 조금 험난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 특성 때문에 도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목포역이나 목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면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으로는 30분, 택시는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전시장에 도작하면 먼저 커다란 배들이 관람객들을 반깁니다. 역시 해양유물만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야외전시물입니다. 육지로 올라와 있는 모습이 신기하지만, 한 편으로는 한 때 모두들 거친 바다를 힘차게 누볐을 몸들이었을 텐데 바다에서 고이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이곳에 모여있는 모습이 조금 처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광장을 마지막 쉼터로 삼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전시관 건물이 보입니다. 전시관 입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나무로 만든 닻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서해안에서 새우잡이를 하던 일명 멍텅구리 배에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새우잡이 특성상 한 자리에 오래 정박해야 헸고, 밀물과 썰물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해서 다른 배보다 덩치가 큰 닻이 필요했다네요. 아무리 큰 닻이 필요했다고는 하지만 선체가 어느 정도 크기였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입구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귀에 착용하고 전시관을 들어가 봅니다. 전시실 전체 분위기는 매우 차분합니다. 하지만 전시물들을 직접 보기 시작한 순간 마음속 차분함은 몽땅 흥분으로 대체됩니다. 바닷속 배에서 건져 올렸다는 도자기와 각종 유물들 규모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습니다. 해양유물로 한정할 경우 그 숫자는 우리나라 최대규모라고 합니다. 고려청자 등 도자기와 같은 경우에는 그 수가 10만 점에 이릅니다. 한 점 한 점 모두 다른 박물관이라면 독립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귀한 것들이 마치 도자기그릇 전문매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습니다. 실제로 수중발굴을 통해서 건져 올린 고려시대 배 한 척에서만 3만 점이 넘는 유물이 나왔다고 하니 가히 압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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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2]
우리나라 서해, 특히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경주 慶州'라고 불릴 정도로 침몰한 배와 해양유적이 많다고 합니다. 나무나 철로 만든 닻이 발명되기 전에는 커다란 돌을 길게 가공하고 거기에 밧줄을 달아서 닻으로 사용했는데, 현재까지 태안 앞바다 해저에서 확인된 원시적 형태 닻이 10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가라앉은 배가 100여 척에 달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해양고고학계에서는 예산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별적으로 수중발굴 작업을 진행할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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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이외에도 1300년대에 유통되었던 중국과 베트남 동전들(무려 8백만 개), 공예품 원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석정과 황동판 그리고 불교유물과 문구류 등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배 한 척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신안선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선이었습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많은 보물들과 오래된 생활용품들을 보고 나면 전시실은 신안선이 복원된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어두운 전시공간이 오히려 낡고 오래된 목선 유적을 더욱 신비롭게 보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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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3]
바다에서 건져낸 오래된 배들은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발굴, 보존처리, 전시 등 모든 과정이 빛에 매우 민감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점진적인 부패 막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자기나 유물 전시관과는 달리 실제 복원된 배가 전시된 공간은 조도가 낮아 매우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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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규모와 가치 측면에서 우리나라 어떤 박물관에 비교해도 뒤떨어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발견된 청자유물 중 한 점은 동일한 것이 서울에 있는 모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청자를 매입할 당시 가격이 40억 원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놀라운 것은 그것과 유사한 고려청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 청자유물도 현장에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 小小勝字銃筒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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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4]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 유물들은 진품들입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진품이 아닌 복제품들로 대체해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목간木簡입니다. 목간은 나무를 조각해 만든 길고 작은 표식으로 개별 화물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에게 가는 어떤 물건인지를 표시한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화물 운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진품을 전시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목간이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아 지속적인 판독과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연구원들이 목간에 기록되어 있는 글자들을 해독하고 그것을 당시 생활상이나 사회상과 연계하여 설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전시된 모든 유물들 가운데 역사학 측면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목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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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600여 년, 길게는 1000년 넘게 바닷속에서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펼쳐져 있는 곳. 목포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크게 흥분할만한 곳이 바로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1000여 년 전, 목포 앞바다는 동아시아 무역과 해상교역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곳이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새로운 사찰을 짓기 위한 자금이, 누구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시집보낼 때 사용하기 위해서 주문했던 혼수품이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었겠지요. 배에 실려있던 화물 하나하나가 각자에게 밝고 희망찬 꿈이자 미래였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목포라는 도시가 바라는 미래가 이미 1000여 년 전 목포 앞바다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에 지나지 않는 조그마한 포구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물류가 지나는 해상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찬란하고 융성했던 영광을 잃어버린 목포가 꿈꾸는 미래가 사실은 오래된 과거였던 것입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수히 많은 유물들은 단순히 오래된 유산이 아니라 함께 꿈꾸고 지향해야 할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최성환, 목포, 파주, 21세기북스, 2020.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해양유물전시관 홈페이지(www.seamuse.go.kr/mokpo)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36
[전화번호] 061-270-3001
[홈페이지] www.seamuse.go.kr
[관람료] 없음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무료)
[관람지원]
*디지털 전시안내기 무료 대여 - 1층 안내데스크(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해설사 전시 안내(1일 전까지 사전 신청)
[상설전시]
제1전시실. 한국 해양교류: 선조들이 바닷길을 통해 일궈온 해양교류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2전시실. 아시아 해양교류: 14세기에 난파된 '신안선' 유물들을 통해 중세 아시아 해양교류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제3전시실. 한국의 수중발굴: 우리나라 수중문화재 탐사와 발굴 방법 등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4전시실. 한국의 전통배: 한국의 전통배인 한선韓船의 종류, 형태, 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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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한 달에 두 번 "선상박물관 문화기행"이라는 특별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한 조선통신사선에 직접 탑승해서 목포 지역에 있는 해양유적지와 문화유산을 함께 탐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재현했다고 했지 노를 저어 가는 배는 아닙니다.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통선박 계류장을 출발해서 갓바위, 목포 앞바다 옛 뱃길인 시아바다, 고하도 이순신 장군 유적까지 항해하며 전문 해설사가 전하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매월 초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접수하는데, 모집인원이 50명이나 되지만 인기가 워낙 좋아서 빠르게 마감되니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있는 곳 주변에는 다양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목포문화예술회관(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95)은 예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다양한 예술전시회가 연중 열리고 있습니다.
*목포자연사박물관(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35)은 압해도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 크기 육식 공룡알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목포생활도자박물관(전라남도 목포시 용해동 9-1)은 2006년 국내 최초로 개관된 생활도자 전문 박물관으로 1942년 우리나라 최초로 생활도자기 공장이 건립된 도시라는 상징성을 표현하는 장소입니다.
*남농기념관(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19)은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자 운림산방雲林山房 3대 주인 남농南農 허건許楗이 1985년 5월, 선대의 유물 보존과 한국 남화의 전통 계승 발전을 위하여 건립한 미술관입니다. 기념관에는 한국 남화 300여 점과 신라부터 조선 그리고 중국과 일본 도자기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