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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15. 2023

진도 珍島, 나 간다.

구름숲 품은 운림산방 雲林山房, 섬바다 품은 진도

거두절미하고 진도 珍島로 나가 봅시다. 뭐 따로 설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진도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진도입니다. 삼별초가 몽고와 싸우며 나라를 세웠던 곳, 명량에서 이순신이 왜적을 무찌른 곳, 진도 아리랑을 아낙네들이 처음 불렀던 곳, 진돗개가 뛰놀며 명견이 된 곳.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섬입니다. 하지만 진도는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많은 진경 珍景과 비경 秘境을 품고 있습니다. "섬이 섬이지, 뭐 별 거 있어?"라고 하시는 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섬 하면 제주도지!"라며 멀리 한라산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분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진도는 우리가 알던 진도와 다릅니다. 25개 유인도와 119개 무인도를 거느린 왕도 王島. 남도 소리 본향이며 시서화창 詩書畫唱을 두루 갖춘 우리나라 민속 문화예술 본거지. 진도 아리랑, 강강술래, 씻김굿, 진도 다시래기, 진도 만가, 남도 잡가와 같은 무형 문화재 보고 寶庫. 남종화 대가인 소치 허련 등 국전 특선작가를 150여 명 배출하고 군 郡 단위에서 가장 많은 미술관 10곳이 있는 미술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민속 문화 예술 특구'.


하지만 제가 본 진도는 또 달랐습니다. 저수지 아래쪽 허름한 고택 뒤로 돌아가니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모두 둘러봐야 겨우 만나볼 수 있는 5대 代가 그린 남종화 작품들이 모여 있는 섬. 소방도로로 만든 쪽길을 올라가니 지리산 종주를 하며 새벽바람에 정상을 올라야 겨우 볼 수 있는 운해 雲海가 떡하니 펼쳐지는 섬. 작은 어촌마을 사잇길을 지나가니 입장료와 자릿세를 내고 들어가야 겨우 밟아 볼 수 있는 사각사각 고운 모래톱이 수줍은 듯이 기다리는 섬. 뜯기고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 갔는데 먼바다 섬들 사이로 지는 해가 모두 가져가 버리는 섬. 텅빈 마음을 채울 것을 찾아 갔는데 하늘에서 별빛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섬.




자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진도로 가는 방법은 배를 타고 가는 것과 차량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목포에서 차를 타고 출발하면 목포대교를 타고 고하도, 허사도를 거쳐서 목포 신항만을 지납니다. 다시 신항로를 따라 삼포대교를 지나면 해남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출발한 지 50여분이 지나면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인 해남 우수영 국민관광지에 도착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진도가 아닌 해남땅입니다.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로 들어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울돌목에 인접한 해남우수영 국민관광지입니다. 영화 '명량'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바로 그 장소입니다. 당시 이곳에는 우수영이 자리 잡고 있었고, 1597년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서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1991년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마치 바다 위에서 울돌목 거친 물살이 흐르는 것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돌목스카이워크가 있습니다. 명량대첩해전 기념관을 둘러보거나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타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9월 초 명량대첩축제 기간에는 옛 조선시대 선박을 복원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배가 화려한 깃발 장식과 풍악을 연주하며 관광객들을 흥을 돋우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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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해남군 운내면 학동리 1021

[전화] 061-530-5541

[관람요금] 무료. (해상케이블카는 유료)

[관람시간] 매일 09:00~17:00

 *명량대첩축제기간에는 매우 혼잡하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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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남을 벗어나 진짜 진도에 들어섰습니다. 진도대교를 지나면서 보니 해남우수영관광지를 시샘이라도 하는 듯 울돌목 진도해안에서 거대한 이순신장군 동상이 서있습니다. 울돌목 얕은 물에 마치 사람이 서있는 것 같았던 해남해안 동상에 비해 마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크기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다리에 떨구고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20분 정도 차를 몰고 굽이굽이 산과 언덕 사이를 돌아 들어가니 저수지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운림산방이 나옵니다.




운림산방 雲林山房은 조선 후기 화가인 소치 허련이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이곳으로 와서 초가와 화실을 만들고 여생을 보냈습니다.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신선들이 사는 곳처럼 이곳을 꾸몄습니다. 운림산방 안에 있는 소치기념관에는 소치 허유,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의 작품이 한자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가 직계 5대가 화맥을 200여 년 동안 이어간 대화맥의 산실이자 남종화의 성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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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전화] 061-540-6262

[관람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

*진도군민,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병역명문가 등은 관련 증명서를 제시하면 무료.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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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운림산방 인근에는 첨찰산 尖察산山과 쌍계사가 있습니다. 첨찰산은 높이 485m로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정상인근 능선까지 소방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곳에서 조선시대 봉수대 유적이 남아 있는 정상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입니다. 쌍계사에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쌍계사 상록수림이 있습니다. 운림산방, 쌍계사, 첨찰산이 함께 있는 이 지역은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뛰어나며 경치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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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립산방을 둘러보고 나니 왜 이곳 진도가 남종화 성지로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5대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구석구석 발길을 붙듭니다. 진지하게 이곳에 있는 모든 그림과 서화들을 둘러보려면 하루도 부족할 듯합니다. 진하고 청명한 아쉬움을 떨어뜨리고 발길을 돌려봅니다. 먼 길을 왔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습니다.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보통 진도기상대라는 곳은 공식명칭이 진도기상레이더관측소입니다. 이곳은 한반도 남서쪽에서 접근하는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 위험기상을 관측하는 최일선 기상레이더관측소입니다. 첨찰산 정상 부근에 있어 매우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진도기상대는 옛 이름이며 아직도 일부 도로표지판에는 진도기상대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운림산방과 쌍계사가 있는 지역에서 용호리해안으로 가는 두무골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부터 기상레이더관측소까지 약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중간중간 다소 가파른 구간이 나오지만, 승용차를 이용해서 올라가는 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대신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소방도로로 다소 협소하기 때문에 주행하는 동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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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운림산방로 527-209

[전화] 061-544-0973

[관람요금] 무료

*공공기관에서 관리하는 시설입니다. 건물에 대한 접근은 제한되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람시간] 제한은 없으나 업무와 휴식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

 *조명이 없는 소방도로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기상이 좋은 낮시간 때를 고를 것을 추천합니다.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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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진도기상레이더관측소에서 용호리 해안을 바라보는 전경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멀리 바다 위에 다도해가 운집해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경관은 관측소 건물 왼쪽 외벽부근에서 하조도 방향(남서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에서 가장 긴 축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는 날씨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낮아지는 산과 능선이 마치 운해를 연상시킵니다.

*관측소로 올라갈 때는 발견하기 어렵지만 내려가는 도중에 탁 트인 개방감을 주는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상보다는 다소 낮아 보이지만 소방도로를 개설하면서 산중턱 바위를 깎아서 만든 절벽이라 매우 시원한 경치를 선사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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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진도 가장 높은 곳에서 보는 풍광은 절경이라 부를만합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재촉해 다음 목적지로 가 봅니다. 산길이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내리막길이라 시간도 속도만큼 빨라집니다. 10여분 차로 이동하니 작은 용호리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두무골재를 넘어 굽이굽이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가계해수욕장이 나옵니다. 얼핏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이게 해수욕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해변입니다. 하지만 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고 해수욕장 모래톱에 인접한 방파제 뒤로 자그마한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그리고 모래사장을 따라서 길게 심어져 있는 소나무 방풍림 앞으로 나있는 산책로는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제격입니다. 주변에 민박이 밀집해 있고, 어린이 관광객들을 위해 진도해양생태관과 진도군청소년수련관이 자리하고 있어 정비가 매우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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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153

[전화] 061-540-6605

[개장시기] 7월 초에서 8월 중순까지

 *해수욕을 원하는 분들은 사전에 개장시기를 확인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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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진도에는 신비의 바닷길이 있습니다. "신비의 바닷길? 아, 썰물 때 갈라져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 맞습니다. 가계해수욕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외동리와 의신면 오도 사이에 해수면이 낮은 2.8킬로미터 바닷길이 나옵니다. 하지만 물때가 맞아야 하고, 봄과 가을이 아니면 그나마 길이 드물게 열린다고 합니다. 대신 진도 신비의 바닷길에 얽힌 뽕할머니 전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설은 대략 이러합니다. 조선 초기 이곳에 호랑이가 침입해 사람과 가축을 해치자 주민들이 아을 앞에 있는 모도라는 섬으로 피신을 했답니다. 그런데 경황이 없어 한 할머니, 전설의 주인공인 뽕할머니를 남겨두고 말았답니다. 할머니는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매일 바다에 나와 용왕님에게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결국 용왕이 소원을 들어주어 바닷길을 열었는데, 뽕할머니는 그 신비의 바닷길을 건너 가족들을 만나자마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 해마다 음력 3월이면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풍어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영등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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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배가 고파졌습니다. 오후 내내 강행군을 했더니 평상시 보다 더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나 봅니다. 진도는 섬답게 다양한 제철 해산물이 유명합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해서 진도읍 내에 있는 유명한 식당으로 갑니다. 전복, 낙지, 성게, 꽃게를 넣어서 만든 비빔밥이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제일 저렴한 꽃게비빔밥이 13,000원, 성게와 해삼내장비빔밥은 각각 17,000원입니다. 장담하건대 무얼 먹어도 감탄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넓디 넓은 남도가 '미향 味鄕'이라는 타이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배기는 따로 있습니다. 아니, 무슨 동네가 장 하나를 젓가락으로 찍어서 입안에 넣어도 맛있다는 소리가 나옵니까. 주인장이 권하는 최고 음식 궁합은 따끈한 맨밥 한 수저에 속젓을 조금 바르고 맹김 한 장을 얹는 것입니다. 모든 비빔밥 메뉴도 같은 방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라면 모두 다른 지역들이 미향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는 제 생각에 공감하실 겁니다.  


[보너스 1. 낙조 落照]

저녁을 맛있게 먹고 목포로 돌아오는 길. 그런데 아직 해도 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녁식사를 평소보다 조금 일찍 먹은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사실 진도 투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진경은 해가 질 무렵부터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도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요? 머나먼 진도로 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휴식과 위로입니다. 바쁜 일상으로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해서 진도를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보너스 중 첫 번째는 낙조입니다. 서해안에서 바라보는 일몰풍경은 사람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고 괴로워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수평선 너머 가득한 섬들 사이로 가라앉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잊게 됩니다. 다도해와 바다가 해를 모두 삼켜버리고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보너스 2. 별밤]

섬들 사이로 지는 해에 근심과 걱정을 묶어서 던져 버렸다면 이제는 희망을 채울 차례입니다. 어둑어둑해진 도로를 따라서 별을 볼 수 있는 비밀장소로 향합니다. 40분 정도 차를 몰아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을 찾아갑니다.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거나 건물이 없는 곳이 좋습니다. 새로 간척된 넓은 개활지 위로 곧게 뻗어 있는 도로라면 더욱 좋습니다. 멀리 조명들이 시야를 조금 흐트러뜨리지만 별을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변은 어두워지고 별은 더 많이 얼굴을 드러냅니다. 한적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들 모두 이름을 찾아봅니다.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반딧불이, 비행기, 인공위성.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 쏟아져내려 마음을 채웁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모두들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돌아갈 때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습니다. 앞으로 힘겨운 순간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이겨낼 힘을 조금은 얻어갑니다. 뭐 힘을 다 소진해서 지치면 다시 진도를 찾아오면 됩니다. 진도야 나 간다~~~ 안녕!!



참고자료

김준, 섬문화 답사기 진도 제주편, 서울, 보누스, 2019.

조지종, 진도에 가보느자, 서울, 좋은땅, 2023.

채선후, 진도, 바람 소리 씻김 소리, 서울, 일송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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