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달작지근, 조청造淸 같은 차향茶香 가득
어느덧 한 달 살기 여정도 끝이 보입니다. 시작할 때는 정말 여유 있고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말 그대로 부지불식간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어찌 잘 돌아가고 있기는 한 건지, 가야 할 방향으로 제대로 흘러가고는 있는 것인지 주위를 찬찬히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주어진 날, 한정된 시간, 지정된 장소에 가서 생김새, 울림, 내음, 맛, 이야기 같은 것들을 구석구석 핥으며 탐하고 돌아왔던 반강제(!) 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제 强制'라는 녀석에게 내가 가진 의지에서 절반 이상을 주기에는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렇다고 삼분지일이라거나 사분지일이라는 수식어는 강제에 어울리지 않기에 '반半'을 붙여주었습니다.) 얼마나 여유가 없었던지 심지어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도 제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속으로 (겉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드러낼 용기는 없기에) 미워할 정도였습니다. 혼자서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이런저런 느낌과 생각들을 주워 담느라 바빴거든요.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할짝할짝 맛보고 담아 온 감각들을 잊어버리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될까 봐 그날그날 글로 쏟아내었습니다. 되새김질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글들이 하나같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어차피 바래버려서 아니 한만 못 한 이야기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욕심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래야 그 다음날 여정을 소화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빛바래어 살짝 블러 blur 처리가 된 듯한 기억들도 나름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하루가 지나나 일주일이 지나나 마찬가지. 묵히고 삭혀서 오히려 짙은 발효취가 진동하더라고 그게 제맛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아릿하게 남아 있는 내음이 진짜이지 않을까 하는 데에까지 다다랐습니다. 언젠가 다시 가야지 하는 '돌아갈 결심'은 그런 깊고 풍부한 발효취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여행지는 강진 康津입니다. 아마 혼자였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여행지입니다. 여행은 문화를 습득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문화는 곧 문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동양인이기에 머나먼 변방 땅을 여행지로 정할 이유가 별로 없었을 겁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강진땅은 오래전 임금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사람들을 유배 혹은 귀양 보냈던 곳이니 멀고도 먼 곳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포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면 더욱 선택하기 힘들었을 장소였을 겁니다. 누군가, 그것도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 아주 친절하게 코스를 짜고 맛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까지 예약해 두고 직접 운전해서 가이드한다고 하니 따라나설 의욕이 스멀스멀 샘솟았습니다.
이제 출발해 봅니다. 목포 원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영암과 순천을 잇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너무 편합니다. 옛날 길이 좁고 험할 때는 다들 어찌 이 먼 곳까지 왔나 싶습니다. 누구는 걸어서, 누구는 나귀를 타고, 누구는 다른 사람 등에 업혀서야 겨우 너른 논과 밭들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지났겠지요. 한양에서 출발해 이 동네까지 오려면 정말 오래 걸렸을 겁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한반도 제일 나주평야를 가로질렀을 터이니 마음이 평온했을 겁니다. 그리고 끝 모를 지평선 너머에 마치 병풍처럼 길을 가로막고 있는 월출산이 보였을 때는 '이제 강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안도감이 더해졌겠지요. 우리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월출산국립공원을 돌아 강진으로 향합니다.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한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할 때쯤 전라병영성에 도착했습니다. 슬슬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하고 서로서로 눈칫밥을 나눠먹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월출산국립공원 끼고돌아 뒤로 가니 아늑한 분지 같은 지역이 나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전라병영성이 있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천과 학동천이 합쳐져 제법 굵은 물줄기를 이루기 시작한 지점에 병영천까지 합류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외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토양이 비옥해 예로부터 살기 좋고 풍요로운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강진만이 있어서 해로를 이용한 운송도 용이하고 해산물도 풍족해 천혜요새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417년 태종 17년, 초대 병마도절제사를 지낸 마천목이 전라병영성을 이곳에 축조했고, 전라도 전 지역과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하는 조선육군 총지휘부가 자리 잡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조선말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주요 건물들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1895년 갑오경장으로 구식 군체제가 개편되면서 전라병영성은 폐영되었습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사적으로 지정하고 옛 문헌을 연구해 성문, 성벽 그리고 옹성들을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3년, 이곳 성 내에 병영세류공립보통학교가 들어서 최근까지 있었지만, 2006년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내부는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전라병영성 내부에 있던 건물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랜 세월 전라병영성과 함께 했을 듯한 거목은 아직 건재해 있습니다. 2029년까지 성 내부에 있던 건물들과 성 외곽에 있던 해자와 함정까지 복원한다고 하니 몇 년이 지나면 수원화성에 버금가는 훌륭한 문화유적으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성곽을 복원하는 데 사용한 고벽돌 사이에는 이끼와 담쟁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두툼한 이끼가 얹혀살고 있는 오래된 담장이나 벽체를 좋아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풍광과 내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원된 성벽에 올라 둘레를 돌아보니 이처럼 이끼향이 향기로운 여행지가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나게 차로 달리던 도로에서 잠시 벗어나 문득 들어선 전라병영성 안에서는 조금 전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 자리를 그대로 지켜왔을 것 같은 고목이 우뚝 서 있고, 600년 고벽돌 사이사이 이끼들은 알듯 말듯한 은은한 향기를 뿜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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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성동리)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제한 없음.
*내부는 복원작업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외부에 주차를 하고 복원이 완료된 성곽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주차 정보] 인근에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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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병영성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로 인근 넓은 광장에서 지역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 어쩐지 이상하게 배가 고프다 했습니다. 머지않은 곳에서 솔바람을 타고 들쩍지근한 불고기 냄새가 퍼져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차를 타고 이동하니 배고픈 이들을 안달나게 만드는 연탄불고기와 음식 냄새가 온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병영연탄불고기 거리는 '통째로 거대한 밥상'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곳입니다. 미식가들 사이에는 이미 유명한 거리로,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눈과 코와 위를 한꺼번에 만족시켜 줄 맛난 연탄돼지불고기와 한상 가득 한 상차림 요리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유명한 가게로 함께 들어갑니다. 전화로 미리 예약해 두었기 망정이지 만일 그냥 왔다면 배가 고프다 못해 위산과 소화액이 뿜뿜 쏟아져 나와 엄청 속이 쓰릴 뻔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니 커다란 밥상에 음식이 가득 담겨서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연탄불에 구운 돼지불고기가 사람들 시선을 바로 뺏어갑니다. 하지만 20여 가지가 넘는 맛깔난 음식들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음식은 없어 보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정갈하지만 개성이 강합니다. 전라남도라 향긋한(!) 삭힌 홍어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전화로 공깃밥을 추가합니다. 일행들과 음식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게걸스럽게 밥상을 비우다가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표를 보고 다시 놀랍니다. 아니 이렇게 주고 저 가격으로 가게가 유지되다니. 심지어 최근에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겨우 1,000원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진짜 강진군 병영면에 살았다면 매일 왔을 법한 식당입니다. 물론 위장과 뱃살이 한계점에서 버텨준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하........목포가 아니라 강진으로 이사를 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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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정보]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92(삼인리)
[전화] 061-433-1282
*안타깝게도 개인은 예약이 안된다고 합니다.
[요금] 기본상 2인 26,000원
[운영시간] 11:00~19:00
*휴무: 매주 월요일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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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며 차에 오릅니다. 아직 강진투어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허기도 양껏 채우고 기력도 듬뿍 충전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즐기기로 합니다. 고즈넉한 산과 들 그리고 고성곽을 즐겼으니 이제 바다를 즐길 차례입니다. 30분 남짓 차로 이동하면 바로 바다가 나옵니다. 강진만입니다. 우리가 갈 곳은 강진만 한복판에 있는 ‘가우도 駕牛島’입니다. 사람들은 가우도가 옛 문헌에 한자로 소가 쓰는 멍에 가駕를 쓴 가우라고 적혀있어서 이름이 그 생김새에서 유래했다고 말합니다. 강진군청이 자리 잡고 있는 곳 인근 보은산이 소머리 모양을 닮았고, 그 산에서 멀리 떨어져 내다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 소멍에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옛 순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옮겨 적을 때 단순히 뜻뿐만 아니라 차음 하여 적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강진만은 거대한 가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위로 강진면 아랫도리를 삭둑 잘라 놓은 형국입니다. 그리고 가위날이 교차하며 움직이는 중심점에 제법 큼직한 섬 가우도가 있습니다. 가우는 여러 지역 사투리로 가위를 뜻합니다. 거대한 강줄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곳이 아닌데도 바다가 육지 깊숙한 곳까지 질러 들어와 있고 그 가운데에 섬이 놓여 있으니 높은 곳에서 보면 영락없이 큰 가위 모양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만일 이곳이 진짜 소멍에를 닮아서 이름을 지으려 했다면 그냥 가도駕島 또는 우가도牛駕島라고 해야 맞습니다.
자, 가우도를 즐겨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우도에서 바다내음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섬이 해수와 담수가 뒤섞인 곳에 있고, 동쪽으로는 대구면, 서쪽으로는 도암면을 긴 출렁다리들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그 다리 위를 걸으며 시원하고 여유로운 풍광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섬으로 향하는 다리 초입에는 문화관광 해설사분이 상주해 있고, 연중무휴로 요청하는 단체관람객들에게 가우도에 대한 해설도 해주십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섬에는 다른 곳에서 즐기기 어려운 색다른 어트랙션 attraction이 있습니다. 바로 섬 정상으로 올라가는 아기자기 모노레일과 우뚝 솟은 청자모양 탑에서 출발해 쏜살같이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갈 수 있는 짚트랙이 있습니다. 어트랙션을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바다를 가로질러 섬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분명 강진만은 바다입니다. 월출산에서 흘러나오는 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담수보다는 해수 기운이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담수와 해수가 뒤섞인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지만 짚트랙을 타면 물내를 맡을 겨를이 없습니다. 맡을 수 있는 것은 겨우 바람냄새입니다. 그것도 옆 사람이 내지르는 즐거운 비명이 바람에 얹혀서 내가 바람냄새를 맡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바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강인지 바다인지 알듯 말듯 강진만 한가운데 동그랗게 솟아 있는 가우도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너무나도 의외입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퉁하고 내려간 발판에서 문득 발이 동동 뜨고, 그다음 나도 모르게 놀랍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짚트랙이 주는 쾌감은 바람처럼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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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가우도길 2-87
[전화] 061-433-9500
*바람이 세게 불면 중간에 멈출 수 있어 운행이 제한됩니다. 날씨를 보고 미리 전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금] 모노레일: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짚트랙: 성인 25,000원, 청소년 17,000원
[운영시간] 동절기(10월~2월) 10:00~16:30, 춘추계(3월, 9월) 09:00~17:30, 하절기(4월~8월) 09:00~18:00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짚트랙 타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느끼는 분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오거나 산책로를 따라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됩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짚트랙 체감 속도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안경이나 선글라스 같은 것들은 가급적이면 가방에 넣고 타는 것이 좋습니다. 가방이 없다면 휴대품용 가방을 요청하면 가져다줍니다.
*군인이나 경찰은 요금을 할인해 줍니다. 둘 다 아니라도 방법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전남사랑도민증을 발급받아 보여주면 할인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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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트랙으로 한껏 들뜬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싶습니다. 흥분도 적당한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딱 알맞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다산초당 茶山草堂’입니다. 강진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와 뒤이은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18년 유배생활 중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다산초당입니다. 이곳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6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원래는 초당이라는 이름처럼 허름한 초가집이었으나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초가를 다시 지으면서 기와집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원이라 함은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을 말하지 않나요?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만들었다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초가집은 오래가기 어렵죠.)
자, 다산초당으로 향해봅니다. 짚라인을 타고 내려간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립니다. 다산초당이 강진만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빙 둘러가야 합니다. 다산초당 입구에 도착하면 널직한 주차장과 한 그루 소나무가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위로 곧게 자라는 직송 直松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리는 류송 柳松이라 더욱 기품 있어 보입니다. (직송은 우리나라 산지에서 흔히 보이는 금강송이며, 류송은 가지가 버드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처진소나무라고도 합니다.) 이곳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산길로 400여 미터, 백련사까지는 거기서 다시 1킬로미터를 올라가야 합니다. 가벼운 여름산행이니 다산초당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왕대나무 그늘이 드리운 산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 이야기가 군데군데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이드가 전해주는 친절한 설명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발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정약용이 제자들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분업으로 수많은 저술 작업을 했다거나 계곡과 연못을 거닐며 그렇게도 좋아했던 차를 마시며 시를 읊은 이야기 보다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합니다. 하늘이 보이기는 하지만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햇볕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찔러 들어올 법도 하지만 나무 사이에 난 좁은 틈들은 왕대나무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하늘뿐 아니라 땅도 세월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직접 걸어보면 압니다. 초입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산길은 수백 년 된 소나무들 뿌리가 서로 얽히고설켜 천연 계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이런 모양을 두고 ”뿌리의 길“이라 노래했습니다. 소나무 뿌리들을 계단 삼아 다소 가파른 산길을 오릅니다. 다산초당에 다다르면 뒤편으로 오르는 길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맨살을 드러낸 산 바위에는 다른 장식 없이 ‘정석 丁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산이 직접 글을 새긴 것으로 알려진 이 바위는 그가 매일 초당을 나서 절친한 벗 혜장 惠藏을 만나러 백련사까지 산책을 나갈 때 지나가며 손으로 짚었던 바위입니다. 그가 오랜 유배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제자들과 지인들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즐겨한 강진 녹차, 그 녹차를 우려내어준 친구 혜장 그리고 그를 만나러 갈 때 언제나 든든한 버팀돌이 되어준 바위 정석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을 겁니다.
아직 다산초당 여행에서 제일 좋은 것이 남아있습니다. 왕대나무 그늘숲을 헤치고 조금 더 올라 천일각 天一閣에서 맞는 천하제일 솔바람향입니다. 천일각은 1975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약용이 유배시절부터 남아 있던 유적은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천일각을 지은 능선끝자락에 올라 강진만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토해냈습니다. 천일각이 있는 자리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바다 건너에는 형님인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시작한 신지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세에 정약용이 형님을 그리워하며 오랜 시간 만덕호와 강진만을 내려다보았을 자리에 천일각을 세웠습니다. 남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애초에 농밀한 수분과 짙은 염분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바닷바람은 솔숲과 왕대나무숲을 지나며 수분과 염분은 떨구고 솔잎향을 가득 품어 솔바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약용이 형님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을 말려버리기에 충분한 만큼 메말라있었을 듯합니다. 물론 천일각까지 오르느라 우리가 흘린 땀을 식혀주기에도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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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68(만덕리)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제한 없음.
[주차 정보] 인근에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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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는 다산초당을 오르느라 빼앗긴 수분을 보충하러 갈 차례입니다. 다산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다산이 그렇게 좋았던 차를 우리도 마시러 갑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목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녹차 상표를 만들었던 백운옥판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백운차실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1000년 차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이한영茶문화원과 백운차실에서는 다산 정약용과 얽힌 역사와 우리나라 최초로 상품화된 백운옥판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윽한 차 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월출산을 한 폭에 담아낸 그림 같은 유리창은 차 맛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바로 인근에 있는 설록다원강진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녹차밭으로 고즈넉한 구릉에 자리 잡고 있어 여행객들이 인생사진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 명소로 손꼽힙니다. 연인이나 친구들과 방문하기에 너무나도 좋습니다. 은은하고 달짝지근한 조청 造淸 같은 월산홍차와 어지러운 마음 달래주는 녹차밭 향기는 이곳에 오기 전 우리가 머물렀던 곳에서부터 질질 끌고 온 모든 근심과 번뇌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립니다.
백운차실이 그토록 오랜 기간 다원으로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들과 맺은 약속, 다신계 茶信契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다산은 1818년, 18년 동안 이어졌던 유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강진에서 보냈던 생활을 정리하면서 그는 초당에서 가르친 18명, 주막집에서 가르쳤던 여섯 명 제자들 이름을 계안 契案에 모두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누었던 우정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서로 학문을 격려하고 도와줄 것을 약속한다는 글을 덧붙였습니다. 제자들은 거기에 일 년에 한 번씩 자신들이 배우고 연구한 내용을 정리해서 다산에게 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강진 차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덖은 녹차를 보내주겠다고 적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약속은 이후에도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다신계를 맺었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어렸던 이시헌 선생과 자손들은 다산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을 계속 지켰습니다. 매년 봄 녹차 나무에서 싹이 트면 갓 돋아나온 어린 순을 골라서 땄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작은 잎들을 정성 들여 덖어내어 맥차 麥茶를 극소량만 만들어 다산가에 보냈습니다. 바로 그 신의 信義가 백운차실이 20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근간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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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107 (월남리)
[전화] 061-434-4995
[메뉴] 백운옥판차(녹차) 작설 15,000원, 옥판차 12,000원, 모차 8,000원
월산차(발효차) 월산홍차 7,000원, 월산떡차 6,000원
계절차 해당화 7,000원, 금잔화 7,000원
커피 아메리카노 5,000원
계절메뉴 팥빙수 16,000원
디톡스그린티 7,000원, 레몬홍차 7,000원, 말차라떼 7,000원, 말차레몬에이드 7,000원
오미자차 5,000원
찻자리곁들임 수제양갱 6,000원, 수제한과 6,000원, 곁들임 한접시 12,000원
월출산 브런치 13,000원
한상茶림(차와 곁들임 한접시 2人) 백운옥판차 한상차림 작설 45,000원, 모차 35,000원
월산차 한상차림 월산홍차 35,000원, 월산떡차 35,000원
*한상茶림은 월출산을 바라볼 수 있는 한옥차실에서 찻자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대신 이용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인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음료를 추가 주문해야 합니다.
[운영시간] 09:00~18:00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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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백운차실 바로 옆에는 월남사지가 있습니다. 1000년 사찰이 있었던 넓은 부지는 대부분 잔디로 덮여있고 삼층석탑과 최근에 복원된 대웅전각만이 다소 덩그러니 외롭게 서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조화가 웅장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더욱 멋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우람한 월출산 남쪽 명당에 자리 잡은 1000년 고찰터를 뒤덮고 있는 잔디내음. 산모퉁이 돌아 돌연 펼쳐지는 웅장한 월출산 남쪽 자락에서 1000년을 지켜온 삼층석탑 옆 잔디밭에 누워 잔디내음 맡고 싶은 사람들은 꼭! 꼭! 꼭! 잊지 말고 방문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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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진을 떠날 때 다시 돌아오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뭐 볼 게 있다고, 뭐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니까 라며 말이지요. 하지만 저도 몰랐습니다. 저는 강진이 품고 있는 다양한 향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버티고 서 있던 전라병영성 고벽 틈새에서 나는 이끼향을. 통째로 거대한 밥상 같은 남도 한상차림 음식냄새를. 즐거운 탄성 섞인 짚라인 바람냄새를. 만덕호와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천일각으로 불어오는 솔바람향을. 굽이굽이 산모퉁이 돌아 나오면 돌연 시야를 가득 채우는 월남사지 잔디내음을. "북두로 은하수 길어 한밤에 차 끓여낸" 백운차실 월산홍차 달달한 향을. 저는 그런 향기들을 좋아하는 치유가 필요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야 강진으로 돌아갈 결심이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