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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름이 아닙니다.

by 라라라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인을 대상으로 말이지요. 아! 대만에서 온 학생도 한 명 있으니까 전부는 아니군요. 꽤 오랜 기간 준비를 했지만 막상 수업을 하다 보면 부족한 것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뭐 한국어가 거기서 거기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써 온 말인데, 그거 가르치는 게 뭐 어려워?' 아마도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한국어 선생님이나 해 볼까 하고 도전하십니다. 그런데 문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글자 하나, 받침 하나가 어떤 소리가 나고 무슨 기능을 하는지 모르는 외국인이 그걸 깨닫게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저,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재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초급 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표현도 유사한 것들과 구분해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감각적으로는 알겠는데, 이게 막상 말로 설명하려면 더듬게 되는 그런 순간을 겪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곱씹어서 읽고 또 읽습니다.


같은 한국어 학교에 저보다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방법이나 순서 같은 것들은 모두 그 선생님들을 따라 해야 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선생님이 바뀌니까 교육 방법이 달라지는 일이 반가울리는 없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수업 중 난감했던 부분들을 서로 물어보고 해결책을 나누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말하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기에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설명하도록 알려주는 것도 만만찮은 일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중급으로 넘어가면 초반에 '창피하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초급에서는 '부끄럽다'는 단어를 배우니까 학생들은 당연히 둘이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걸 구분해서 어감 차이를 설명하는 자료를 준비하지 않으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 질문을 받고 저도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관련 참고자료나 논문을 검색해 정리하는 것도 익숙한 일이라 금방 좋은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부끄럽다는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은 수줍다, 쑥스럽다, 창피하다, 수치스럽다 같은 것들이 있고, 부끄러운 감정의 강도와 부정적인 상황과 긍정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서 비교해 놓은 논문이었습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일본어 예문들과 함께 한 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선생님들에게 공유했습니다. 다들 기뻐하겠지 하는 들뜬 마음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뜨뜬 미지근을 넘어서 차갑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걸 스스로 찾아서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거였습니다. 한 번도 말이죠. 늘 겉으로는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선생님들을 서로 더 많은 학생들 확보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경쟁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글을 읽고 또 많은 글을 썼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자주 서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공감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매혹적인 강연은 타고나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말이죠,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내가 가지지 못한 조각들을 품고 있는 이들이 부럽습니다. 한없이, 끝없이, 무한대로 말이지요. 감탄하며 베끼고, 놀라며 훔치고.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깨닫지 못하면 베끼거나 훔쳐올 것이 없어집니다. 뭐 하러? 지금도 충분한데? 내가 제일이야.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이죠. 동네 주민센터에서 개최한 무료 체험교실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를 조금 더 빨리 만들고, 아주 조금 그럴듯하게 해낸다고 어깨가 으슥하고 그렇지요. 마치 천재 탄생을 스스로 목격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경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1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해도 좋습니다. 당연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때려 부어서 만든 인간은 없거든요. 만들 때 아주아주 작은 수저로 몇 방을 넣어 주신 재능도 제대로 발휘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갈고닦아야 한다고요. (눈물 좀 닦고 이어가죠. ㅠㅠ) 게다가 유한한 존재이다 보니 신께서 채워주신 것들도 영원히 끌어안고 가지도 못하고 말이죠. 인생에서 찬란한 시기는 겨우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거만함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가져서는 안 되는 오만함입니다. (아, 거만과 오만이 어떤 차이가 있는 단어인지 공부하고 싶어 졌네요.)


인간을 넘어서 자연 앞에 서면 더 초라해집니다. 내가 뭐라고.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한데. 영겁의 세월에 한 점 더할 가치도 없는 미물이 말이지요.


그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이지만 서로 나누어 빈 곳을 채우고. 그리고 또 감사하고. 그렇게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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