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섬은 어떨까?
1편: 아무래도 난 떠나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제주 추가 3000원, 제주 외 도서지역 5000원'
물건을 주문할 때면 주의 깊게 찾아보는 문구다. 대부분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있어서 잘 찾아봐야 한다. 이번엔 1600원짜리 볼펜 리필을 하나 사려고 하니 도합 8000원의 배송료가 붙었다. 제주도가 도서지역인데, 지금 사는 곳은 거기에서 한 번 더 섬이라 그렇다. 물론 육지였다면 배송료는 무료였다. 이러면 또 한 개만 시킬 수는 없다.
올해로 섬에 산 지 15년쯤 된 것 같다. 이제 도서산간 생활에 대해서 글을 한 편 쓸 때도 된 것 같... 아니, 사실은 그동안 여러 번 도전했었다. 처음 섬에 들어왔을 무렵부터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글들은 블로그의 '저장'에 수년간 머물다 결국 지워졌다. 글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섬에 들어온 이야기를 이제야 하는 건 시기가 지나갔기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거의 20년이 지난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니.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니 말이다.
이곳 섬에서(그리고 시골에서) 나는 그저 '외지인'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성장하는 내내 도시 한가운데에서만 살았다.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고향의 향수를 느낄 만큼 나는 내추럴 본 뼛속까지 도시인이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나에게 시골에 대한 씨앗이 뿌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고2 무렵쯤 나는 대학에 안 가고 농장에 가서 일을 배우겠다고 고집부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시골 가서 농장 하면서 살 거라고.
"너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는 게 무슨 농장 일을 배워!"
당시 대학포기 발언에 격노하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아침잠이 많다.
최전방 GOP에서 군시절을 보냈다. 민간인의 알록달록한 옷은 휴일 면회 때를 제외하곤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대신 야간근무 때면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었고, 여름엔 보초 교대를 나가면서 반딧불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청정 지역이었다. 탄약고 앞의 작은 냇가에서 가재도 잡고, 겨울이면 겨울잠 자는 개구리를 파내서 가마솥에 튀겨먹기도 했다. 군생활은 힘들었지만 이런 경험들은 머릿속에 진하게 남았다. 혹시 이런 경험들이 시골살이에 대한 영감이 되진 않았을까.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유행은 좋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은 피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이 걸어간 길을 나도 따라 걸어갈 수밖에 없어 보였다. 도시에 새로움이란 것이 있나 싶었다. 대부분이 선택한 길을 나도 걸어가는 것은 싫었다.
내 성장기 시대에는 늘 '도시'가 최고였다. 도시에서의 삶이야말로 모든 서민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 '선'이었다. 집은 아파트여야 하고 회사는 대기업, 출근은 양복입고 해야 번듯한 직장이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시골은 도태의 대명사였다. 경쟁력이 적어 도시로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때의 부모님들은 자녀 학구열도 대단했고 '도시로 도시로'의 욕구도 강했다. 도시는 점점 커지고 비싸졌고 인구는 포화상태, 인서울 대학들의 경쟁률은 날로 높아만 갔다.
비극이다. 그래서 청개구리의 본능으로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단편적인 생각 들이었겠지만 생각은 시간과 반복을 거쳐 단단해졌고 그렇게 생각의 편린들은 한 방향으로 굳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샌가 나의 사상이 되었다.
"그래 나는 시골에 가서 살겠어. 낚시를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섬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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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