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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담Adam Dec 03. 2023

섬으로 이사 가는 날

4편: 섬이라는 이름의 시골

이사하는 날은 좀 싱거웠다. 남자 혼자의 짐은 1톤 트럭에 여유 있게 실렸고 운전기사 아저씨와 둘이서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바쁜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석모도라는 섬에서 민박을 운영하게 되었다!


내가 이사하는 곳은 전주인이 농어촌민박 허가를 받아 운영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허가를 받는 데에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나는 시골생활에서 민박을 주수익원으로 잡기로 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농사든 뭐든 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은 어떤 이유로 이 집을 내놓은 걸까? 이 집에 혹시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아닐까? 거래하기 전에 매의 눈으로 잘 찾아봐야 한다. 시골 부동산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문제가 있는 집도 절대로 말을 안 해준다. 속여서 팔아버리고 나면 나는 모른다는 식의 짱들이 많다. 실제로 나는 최근에 그런 상황을 당해 소송까지 간 젊은 귀촌 부부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전주인의 사정은 의외였다. 앞집에 살고 있는 아저씨와 무슨 일로 멱살을 쥐고 싸웠는데 그 일 이후로 원수처럼 지내다가 결국엔 못 견디고 집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물도 그렇지만 인간도 자기만의 범위는 필요하다. 시골에서의 다툼은 보통 이웃끼리 난다. 먼 집이랑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만일 당신이 귀촌을 생각한다면 그 집(혹은 땅) 근처에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라... 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의견은 다르다. 이웃이 있다면 그 집(혹은 땅)을 피해라. 만일 고타마 싯다르타가 우리 집 이웃이 된다고 해도 당신은 몇 년 안에 그 집과 다투게 될 가능성 높다. 혹은 텃세를 당할 확률도 높다. 그러니 귀촌하는 분들이라면 꼭 마을이나 다른 집들과는 일정 거리이상 떨어진 곳을 택하기를 권장한다. 나도 다른 분들처럼 아름다운 로망을 다독여주는 말들로 이곳을 채울 수 있지만 겪어보니 그러기엔 로망에 대한 대가가 크다. 그래서 천기를 누설한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 동네 사람들은 내가 소위 말하는 눈탱이를 맞고 들어왔다고 수군거렸다. 만나는 동네사람마다 나에게 이사 온 집가격을 물었다. 다들 한결같이 어딘가에서 들은 소문이 맞나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시골마을 사람들은 보통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은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그 동네 땅이 평당 몇 백 원(혹은 몇 십원) 할 때부터 살았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현재의 땅값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평당 오백 원하던 땅을 50만 원 달라고?"

뭐 약간 이런 식인데 이건 어떻게 이해를 하려고 해도 불가한 논리다. 그러나 자기 땅을 판매할 때는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저 앞에 땅이 (평당) 80만 원에 팔렸다는데 그럼 우리 집은 100만 원은 받아야지!" 

사실상 시골 땅은 시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땅주인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땅값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자존심이 많이 섞여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진짜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면 꼭 네고를 해보시기를 권한다. 빳빳하게 목을 세우던 지주들도 실질적인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거품을 걷고 나오게 마련이다. 거래 후에는 (내가 적정한 가격이라고 판단하고 들어갔으면) 동네 소문쯤은 그냥 무시하고 지내면 된다. 솔직히 얼마에 들어가도 그런 류의 소문은 무조건 돌게 되어있다.


소문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시골에서는 소문이 참 잘 돈다. 그런데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헛소문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이 났었고,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으니 저 집 아낙은 배도 안 불렀는데 애가 갑자기 생겼다고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도 났었다.  동네 할머니들 보시기에는 요즘 임부복이 너무 잘 나와서 그랬나 보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 섬 한가운데에 30대 젊은 남자가 혼자 산다고 떡하니 들어갔으니 얼마나 눈총(과 관심)을 받았겠나 싶다. 하지만 나는 꽤나 무딘 성격을 타고나서 눈총(과 관심을) 딱히 잘 느끼진 못했다. 참, 내가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은 민박 운영 첫해 여름에 혼자 관리하기가 버거워서 마침 구직 중이던 친구를 알바로 데려와 같이 지냈기 때문에 났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 소문들은 정작 본인인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다가 한 5년쯤이나 지나야 돌고 돌아 들어온다. 소문은 나에겐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일 당신에게 그런 사소한 일들이 꽤 중요한 문제고 거기에 흔들릴 멘털의 소유자라면 나는 귀촌을 진지하게 말리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이사를 마치고 정말 몸살이 날 정도로 바쁘게 펜션(민박)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낮에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렇게 주경야독하면서 꼬박 두 달 넘게 준비한 것 같다. 대학 때부터 갖고 있던 사진 취미가 큰 도움이 되었고, 내 사진과 그림을 올리려고 독학했던 홈페이지 만드는 기술도 도움이 되었다. 간판을 만들거나 글씨를 쓸 때는 미대를 나온 것이 도움이 되었다. 도시에 있을 때 취미로 목공을 배웠었는데 그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시골에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목공은 무조건 필수로 배우라고 하고 싶다. 목수를 부르면 하루 일당이 얼만지 아는가? 퍽퍽한 시골 살림에서 인건비라도 아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대단한 도움이 다.



시골에선 자잘하게 목공 일이 많다! 



 그렇게 나의 펜션은 조금씩이나마 손님을 받을 준비가 되어갔다. 첫 손님을 받을 때의 그 긴장감.... 을 써보려 했지만 사실 너무 오래 지나서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숙박일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게스트를 다 기억할 수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선 기억을 안 하는 게 건강상 좋기도 하다. 하지만 나쁜 기억은 오래 남는 법. 일명 '진상' 손님들의 기억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각골되어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면 그에게 진상이 되면 된다) 화이트보단 노이즈 마케팅에 손이 더 가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걸까.

아무런 준비 없이 펜션을 시작하게 된 나는 맨몸으로 진상 손님이란 파도와 시골 텃세라는 너울을 맞으며 성장해야 했다. 내가 처음 맞은 이상한 손님들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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