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신기하다니까, 진짜"
유시민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 지인에 의하면, 인터뷰를 녹취 후에 그대로 글로 옮겨도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신기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유려한 말솜씨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마음 깊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표현하려는 것과 그에 관한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말을 한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유려한 말이 가능한 것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위 표현은 유시민이 옥중에서 쓴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문장이자, 러시아의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 한 구절이다. 당시 군부의 독재와 횡포, 사회의 부조리, 사법부의 부정의함을 직접 경험한 스물일곱 유시민의 마음은, 좌절과 슬픔으로 가득 차있었다. 따라서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의 마음을 항소이유서로 표현하였다. 항소이유서의 목적은 유죄 선고에 대한 항거가 아니었다. 유죄 선고가 당시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결함의 반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그 사건에 관한 개인과 집단,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마음에서 유시민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였고, 이는 당대의 명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유시민은 자신을 글쟁이로 표현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유시민은 명백히 ‘표현장이’이다. ‘쟁이’는 그러한 특성을 많이 지닌 사람을 표현하지만, ‘장이’는 특정 분야의 기술자를 의미한다. 위의 두 사례로 볼 때, 유시민의 말과 글은 표현에 있어서 기술자이자 장인으로 칭해질 만하다. 이러한 표현장이가 일러주는 표현의 기술은 어떠할까?
「표현의 기술」은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과 책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사실 ‘기술’이라는 단어를 광의로 해석하면 된다). 「표현의 기술」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기술적인 부분이라기보다 마음가짐이라고 보면 된다. 글이나 그림 등으로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극복하는 방식들이 주가 된다. 그렇기에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온다.’는 상투적이지만 진리에 가까운 구절로 시작했을 것이다.
「표현의 기술」에서는 표현하는 중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고민거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준다. 왜 표현을 하는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등의 원론적인 부분부터 비평의 방법이나 악플에 대처하는 법, 인용과 표절의 문제와 같은 조금은 지엽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은 표현 기술과 마음가짐이다. 표현은 내 마음을 아는 것과,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되고 표현 기술을 통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표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SNS를 비롯하여 여러 미디어 매체의 발전 덕분에, 표현할 기회도 많고 표현을 접할 일도 허다하다. 개인적,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다양하게 표현을 해야 하는 일들도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언뜻 들으면 수능 만점자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뻔한 말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가장 정석의 방법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무엇을, 왜 표현하는지’와 같은 것을 분명히 하는 것 말이다.
사람의 표정을 기술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인위적인 방법으로 노력해도 결국 품고 있는 마음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표현도 이와 같다. 인위적인 기술로 지어내는 표현은 결국 어느 곳에선가 정체된다. 마음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나만의 표현을 엮어 내는 행위만큼 오롯이 정석의 표현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