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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강의하기

by DG

최근

지난 1-2년은 많이 바빴던것 같다. 일과 내 개인 삶 모두.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내가 브런치에 한국어로 쓴 글이 거의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내 외적인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때일수록 내면의 중심을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있었던 일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함에 있어서 글을 쓰는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법은 내 파트너와 저녁에 이야기를 나누는것, 친구와 만나 그동안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 등이 있겠다).


오늘은 한국어로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어로 발표를 하는거라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뭔가 뇌의 다른 영역을 쓰는듯한 느낌을 받아서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강의를 맡은 계기는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가는듯 한데,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볼로냐에서 열린 국제자기학회(ICM)에서 한국 교수님들과 연구원 박사님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원래는 2021년에 논문을 같이 쓰게된 교수님과 간단히 식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 등... 이렇게 여러분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알게된 교수님중 한분께서 연락이 오셔서는 국내에서 최근 자성체 연구에 떠오르는 분야 몇개를 선정해 강의시리즈를 준비중인데 여기서 강의를 해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물어보셨다.


나는 내 일정이 빠듯한것과는 별개로 흔쾌히 강의를 맡기로 했다. 강의의 청중이 대부분 학생이라는 것에 솔깃했고, 그것도 내 연구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창하게 말할건 없겠지만 내가 지난 몇년간의 연구로 알게된 지식을 공유하는것은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학생때부터 책과 논문에서 알기 어려운 지식들을 배울 기회가 있었기에 첨단 연구분야를 알 수 있게 되었듯이 말이다. 물론, 이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나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정말 새로운 지식과 어떤 분야에 대한 통찰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배울 수 밖에 없다.


어쨋든 연구자들 중에 본인이 정말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떠드는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통 학자라고 하면 과묵한 대중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은 정 반대다. 모든 학회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활발히 연구를 하고 학계에서 활동을 하는 연구자일수록 다들 정말 할 말이 많다! 이는 성격과는 별개인듯 하다.


오늘 강의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지식 그 자체도 있지만, 이러한 지식을 알게 되기까지 어떤 생각을 거쳤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주제로 토론을 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등 연구에 있어 '인간적인' 부분도 잇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지식이라는 것은 책에 활자로 찍힌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실험결과가 나오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연구하는 양자물질에 관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당연한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은 보통 '소수'의 연구자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소위 '네이처' 논문에 등장하는 해석들)으로 데이터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것을 소신있게 발표하면서 시작이 된다. 보통 이런류의 논문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얘기를 주로 하기에 인용도 별로 되지 않는데, 많은 경우 쏟아져 나오는 논문 틈에 묻혀버리기 마련이지만 운이 좋다면 몇몇 학자들이 내 논문을 정말 편견없이 읽고 학회에서 인용하는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 한국어로 강의를 하며 느낀점은 한국어라는 언어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에 정말 훌륭한 언어라는 것이다.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추임새나, 사람들의 미묘한 의견차이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유연한 표현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내가 오늘 강의를 하면서 평소와 다른 영역의 뇌를 쓰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외국에 오래 살면서 이러한 능력을 서서히 잃어버렸는데, 다시 찾은 것일수도 있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과학적인 내용을 전달하는데에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것 같다. 독일어계 언어들(독일어, 영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같은데, 문장의 격이 분명히 나뉘고 문법적인 문장의 구조는 수학의 등식, 상태의 변화, 치환 등 어떤 프로세스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것 같다. 최소한 내게 익숙한 영어와 독일어는 확실히 그런것 같다. 아마 유럽에서 태동한 현대 과학 역시 이런식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라틴계 유럽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 강의는 무난했던것 같고, 다들 편한 분위기에서 여러 질문을 같이 고민하고 토론할 시간도 있어서 좋았던것 같다. 금요일에 한번 더 강의가 있는데, 두번째 강의에서도 다양한 청중(학생, 교수, 연구원 등)과 다양한 의견울 나누길 기대한다.



PS. 안타깝게도 내 직업이 절반은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블로그에 쓰는 글까지 퇴고를 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글을 쓰는 것인데, 일을 하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보통 브런치에 쓰는 글은 수정없이 한번에 써내려간 글임을 독자분들께서 너그로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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