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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대학에서 새출발. 방학

by DG
나는 지금 어디, 왜?

정확한 표현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말은 내가 좋아하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ber)의 소설 <타나토노트>, <천사들의제국>, <신> 시리즈에서 주인공 미카엘이 종종 하던 말로 기억한다. 나도 문득 갑자기 이런 생각이 엄습해올때가 있는데, 한동안의 바쁜 일정이 지나가고 여유시간이 생겼을때, 특히 혼자 있을때 생각에 잠긴다. 지난주가 그랬다.


나는 올해 9월, 한국 서울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교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6년이라는 오랜기간동안 독일의 율리히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했었는데, 대학에 오고부터는 새로운 업무도 많고, 특히나 요령이 없어서인지 참 혼자 바빴던 것 같다. 그래서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정말 말그대로 눈 깜짝할새 지나가버렸고, 어느덧 연말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 학기가 슬슬 마무리 되며 여유가 생기자 쓸데없는 생각을 참 많이하는듯 하다.


대학으로 오면서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맡은 수리물리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부터 내 연구실에 진학을 하게 될 예비 대학원생들, 그리고 최근들어 인턴을 하고싶다며 찾아오는 학부생들까지, 나는 학생들을 만날때마다 영감을 받고 에너지를 얻는다. 교수에 대한 큰 오해는 교수는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오히려 반대로 내가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이 지금까지 알고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첨단 물리학의 연구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고있노라면 나도 다시 한번 내가 너무 당연하다 여기고 있던 것들이 정말 맞는지 확인을 하거나, 혹은 테크닉적으로 복잡한 내용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해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핵심'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 나는 이 과정을 흥미롭게 여기고 즐기는 편이다.


학생들은 한참 많은 것들을 배워가는 중이거나 이제 연구를 처음 시작하기에 아직은 아주 고차원적인 연구 토론을 박사급 연구원들처럼 자유자제로 하지는 못하지만, 학생들이 한학기도 지나지 않아 물리학자로서 생각이 더 체계적으로 잡히고 어려운 계산 테크닉들도 배워나가는 것을 보면 학생들은 정말 '변신'을 하는것처럼 학문적으로 빠르게 성장한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은 내가 지도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부분에 있어 스스로 성장하는 듯 하지만, 그래도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성장하는것을 보고 있으면 참 뿌듯하긴 하다. 한 동료 교수님께서 하루는 "일이 바쁘고 에너지가 없다가도 학생들랑 얘기하면 또 한 시간을 신나게 떠들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는데, 내가 그렇다고 하자 교수님은 "이게 천성이에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게 천성이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또 떠드는거죠"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가?


이제 어느덧 학기말이 다가오니 학교의 여러 일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학교도 좀 조용해진것 같기도 하고? 이제 곧 겨울방학이다. 방학 역시 연구소와 비교대 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학생시절이 그러했듯 방학은 쉬어가는(노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기기도 했다. 학기중에 할 수 없던 경험을 하거나 많은 여유시간동안 '인생'에 고민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번 방학때는 이미 해야할일이 참 많아보이지만, "나는 지금 어디 왜?" 질문에 답을 찾는 내 인생 방학숙제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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