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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Feb 10. 2024

시간을 나는 드론(4)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

상설전과 특별전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전시하는 곳을 상설전시관이라 하고, 특정 기간을 두어 특정 주제에 집중하여 전시하는 곳을 특별전시관이라 한다. 특별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특별전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역사의 이슈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의 성격에 특화된 것일 수도 있고, 특정 문화재 기부인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특별전은 충실하다. 해당 박물관에 있는 해당 주제 유물 외에도, 여러 다른 박물관에서 관련한 유물을 운송해 와서 함께 전시하는 경우도 많다. 특별전만을 위한 전시실이 따로 할애된다. 해당 기간에는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특별전은 해당 박물관의 얼굴이 된다.


특별전은 아니지만, 몇몇 박물관은 특별한 유적이나 유물을 최소 하나씩 소장하고, 이를 박물관의 평소 얼굴로 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진주박물관의 진주성, 전주박물관의 어진(태조), 익산박물관의 미륵사지, 부여박물관의 금동대향로, 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같은 것이다. 낙동강 유역의 가야-신라문화에 대한 김해박물관,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박물관, 수많은 고궁을 끼고 있으며 모든 국립박물관의 센터역할을 하는 중앙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다.


굳이 보자면, 상설전시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 유물(혹은 유적)도, 일종의 특별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박물관에 가더라도, 그 중심 문화재에 대한 공간은 그 내용이 꽤나 충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곳에는 95%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지역 문화재들도 있다. 상설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이 없을 때도 항상 관람객을 맞이한다.


미술관 같은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실과 박물관의 전시실은 무엇이 다를까. 나는 각 전시실에서 텍스트의 지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술관에서도 도슨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작품 감상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에는 작품 옆에 박물관처럼 자세한 설명글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전시실의 조명도 대체로 어둡지 않게 유지하되, 작품들 하나하나에 핀조명을 추가하고 작품과 작품 간의 거리가 먼 편이다.


박물관은 조금 다르다. 물론 박물관에서도 유물을 보고 느끼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다. (특히 해당 유물이 고미술품의 영역에 해당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을 안내하는 미술관과 달리,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지식의 영역에 속한다. 유물의 전시도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면 카테고리별로 묶여서 단체로 함께 전시되는 것이 일상적이다.

중앙에는 일부 유물 단독으로, 벽면에는 단체로 전시되어 있다 (위치: 국립청주박물관)

설명글의 지위도 박물관과 미술관은 달라야 한다. 미술관의 설명글은 전시물의 부수적인 존재였다면, 박물관은 문화재와 함께 전시물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박물관에서 설명글은 관람자가 문화재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제대로 된 문화재 관람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존재여야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설명글을 읽기 위해 휴대폰 조명을 켜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전시관의 환경은 완전 블랙에 가까운, 위 청주박물관 사진과 매우 유사했다. 하지만, 설명글의 위치가 빛이 오지 않는 곳에 있었다. 텍스트를 읽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텍스트를 발견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텍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빛과 빛 사이 검은 벽면에 전시물을 일부러 숨긴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둠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던 전시물들도 여럿 존재했다. 처음에는 전주박물관의 전시주제가 조선왕실에 관한 것이라, 백제문화에 대한 부분만 어두운 것인가 오해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텍스트의 내용이 조악하여 마치 미술관의 그것처럼 유물만 보고 지나가 달라고 하는 건가 싶었지만, 놀랍게도 각 설명글의 내용은 매우 충실했고, 그 구성도 매우 적절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조명이 밝아도, 전시물과 설명글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하나의 공간에 유물 수십 점을 갖다 놓고, 각각에 번호를 붙인 다음, 아래 공간에 그 번호 순서대로 짤막한 설명글을 달아 놓는 경우가 그에 해당된다. 보통 민가 유물들의 경우 생활용품과 같은, 소소한 유물들을 전시할 때 이런 경우가 많다. 하나하나 독립된 설명글을 달기가 애매하다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도리어 떨어지는 가독성 때문에 해당 공간 앞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특히, 개관한 지 오래된 박물관--공주, 부여, 청주--에서 이런 경우가 많았다. (진주박물관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대대적인 전시개편(리모델링)을 시행했기 때문인지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시대의 높이를 달리하고 각각의 설명글을 충실히 달아놓아 관람의 가독성을 높였다. (위치: 금산 역사문화박물관)
사진의 모습과 달리, 번호가 두자리수를 넘어가면 가독성이 급감한다. (위치: 금산 역사문화박물관)


소극장을 품은 박물관


세상이 발전해서인지 이제는 박물관에서도 짤막한 영상물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곤 한다.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유튜브 등에 전용 채널을 만들고, 시청자들이 전쟁 영화를 관람하는 느낌으로 역사 속 전쟁을, 사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또는, 역사 속 장인들의 방식대로,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귀로 따라가게 돕는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와 사비백제의 화려함을, 익산박물관은 고군산군도 지역의 해양활동을,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의 흐름과 수많은 전투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주제 영상 외에도,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 영상이 더 도움이 될 만한 부분에서는 아낌없이 영상감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였다. 특히, 최근에 개관한 박물관일수록 영상전시에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좌측 설명문을 우측 영상으로 설명하는 전시물. 사진은 새만금간척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이번 편은 국립전주박물관을 방문한 직후 기획하게 된 글이다. 솔직히 전주박물관의 전시내용은 매우 충실했다. 전시물의 양도 양이지만, 백제와 후백제에 관한 내용도 다른 관련 박물관들의 내용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느낌이었고, 전시주제인 조선왕실에 대한 부분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야트막한 다른 박물관과 달리, 전주박물관은 밖에서 보는 위용도 상당했다. 전시실의 입구도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모습이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모습. 약간 청와대 느낌도 난다.
전주박물관에 입장하면 전면에 저런 역사전시실의 입구가 보인다.


그러나, 한껏 높아진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텍스트를 꽤나 집중적으로 관람하는 나로써는, 전시물을 향하는 각종 핀조명이 텍스트만 요리조리 피해가는 걸 보면서 좀 어이가 없었다. 마치, "유물을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세요"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텍스트에만 조명이 비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시문과 그림들에도 조명이 없어서 그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텍스트는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개관이 오래 전이고, 최근의 리모델링도 없다면, 조명은 전기공사의 영역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박물관의 개별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해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금산역사문화박물관의 한 전시대.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유물이라는 표기가 있다.


전국에는 매우 많은 박물관이 존재한다. 국립역사박물관 외에도, 각 지역에서 세운, 도립 군립 시립 박물관 등도 있다. 그런 수많은 박물관들 각각이, 한두달 기간을 정해서 특별전을 하고, 그에 관계된 유물들을 다른 박물관 등에서 공수해 온다. 당연히 그 유물을 소장하는 박물관 측에서는, 해당 유물이 있었던 자리에, 어떤 특별전시에 차출되었고, 그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안내문을 붙인다.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언제까지"의 시점이 공란이거나 혹은 이미 과거라면 어떨까. 하루이틀도 아니고, 작년 10월, 9월이면 또 어떤 느낌이 들까. 마치 편의점에 갔는데, 신선식품 코너에서 유통기한도 아니고 소비기한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두달전 상품이 전시되어 있거나, 혹은 그 기한 위에 스티커를 붙여 지워놓은 상품을 발견하면 어떨까. 비슷한 느낌일까.


그랬다. 차라리 특정 박물관으로 잠시 이관되었다는 알림만 붙여놓던가. 관리 안되는 박물관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전시유물은 매우 충실했고, 다른 곳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그 많고 귀중한 유물을 소장하고도, 관람에만 집중할 수 없거나 혹은 전주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역사의 맥락을 짚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 투성이었다.


디지털역사관 (feat. 국립진주박물관 & 금산역사문화박물관)


1년여 전부터인가, 국립진주박물관 계정으로 조선의 무기체계를 설명하고 각종 전투를 디지털화한 자료가 유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상제작은 공영방송과 문화재청 등의 협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누가 생각해도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어려운, 지방 국립박물관 단독으로, 작금의 세대에 친숙한 영상언어로 역사전시관을 개척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일년여 후, 이번에는 금산시 계정으로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주체로 해서 금산 지역에서 일어났던 임란 주요 전투인 이치전투 디지털영상자료가 올라왔다. 이 사건들은, 내게 진주와 금산박물관을 최대한 빨리 방문하게 하는 제일 큰 이유가 되었다.


단지 영상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그 두 곳은 박물관으로서 기대하는 일반적인 역량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이는 정말 잘 운영되는 박물관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주박물관에서 박물관 운영의 바닥을 보았다면, 진주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을, 금산에서는 지역 소규모 전시관의 몸부림치는 노력의 결과물을 느낄 수 있었다.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유물과 설명글로 끝나던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 (3D)영상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다 다가가고자 하는 모습도 많았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가장 유명한 문화재인 금동대향로와 사비백제에 관한 영상을, 무려 중앙광장 천장 전체를 이용하여, 약간 조악하긴 했지만 거기 모인 관람객들이 백제의 밤을 함께 보는 느낌을 주려고 했고, 금동대향로 제작에 쓰인 섬세한 기술을 영상을 통해 더 잘 설명될 수 있도록 했다. 국립익산박물관 역시 고군산군도를 여러 방향으로 조망하고 수군 기지 혹은 중국 사신단을 맞이하던 장소로서의 고군산군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미술관 등 다른 종류의 전시관들도, 기존의 전시문화에서 벗어나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의 보존과 더 많은 연구를 위해 문화재 정보의 디지털화를 하거나, 요즘 왠만한 박물관에는 다 있는 어린이박물관처럼, 체험형 전시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글로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한 부분은, 영상자료를 이용하여 설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고,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가 없거나 빌려오기 어려운 경우라도 복제품을 이용하여 해당 전시관의 스토리라인을 잡아나가는 경우도 많다. 모든 게 어려운 경우라도, 넘치는 유물을 빌딩 안에 수장고 형태로 넣어놓고 학예사가 된 마냥 모든 관람객이 그 수많은 유물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경우도 보았다.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모두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로테이션을 돌리고, 특별전을 열기도 하며,  계속 새롭게 전시목록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한 번 방문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재방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국립박물관이라면, 국민의 인문학적 교육 또는 소양 증대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적어도 지금 전시하고 있는 문화재는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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