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몸에 닿는 건 공기와 땅이다
오감이 있다. 한 장소에서 사람은 이 오감으로 많은 것을 경험한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그리고 간혹 맛보는 것과 맡아지는 냄새까지 사람들은 관리한다. 촉각에 관하여는, 손으로 만지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쓴다. 하지만, 발로, 신발을 통해 느껴지는 그 길의 감촉에 대해서는 다른 감각만큼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기능적인 부분만 충족시켜도 그게 어딘가 싶다. 그러나 유명한 미술관이나 전시관이나 혹은 잘 운영되고 있는 놀이동산 같은 곳을 가보면, 기능적인 부분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동하는 순간순간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도 전시의 일종으로 관리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기능적인 부분이 극대화되어 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청남대의 경우, 모두가 알다시피 대통령의 별장 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다. 5공때 만들어져 십수년간 그 기능을 다했고, 산책로 구석구석 vip 및 그 가족들의 이용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티가 났다.
청남대에서 대청호 방면으로 크게 도는 산책로가 있다. 경사가 심한 구간도 별로 없고, 만약 있거나 계단이 있다면 그 우회로가 반드시 존재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휠체어나 유모차 등 이동약자의 접근권이 제한되는 곳이 많은데, 청남대는 그런 불편사항이 거의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가장 압권인 것은 그 산책로의 퀄리티였다. 한국에서 다닌 곳이 적고, 또 다양하게 가 본 것도 아니라 단정짓기는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무슨 도로포장 수준으로 울퉁불퉁한 느낌 하나 없고, 경사도가 변하는 구간의 경우 갑작스런 각도의 변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길이기에 한쪽은 올라가는 산비탈, 다른 한쪽은 호수로 내려가는 산비탈인 구간이 많았는데, 올라가는 쪽 길 경계에 돌로 경계를 만든 것도 아니고 무려 통나무를 짜서 울타리 느낌의 나무벽을 조성해 놓았다. 작은 돌이나 솔방울 같은 것이 굴러와도 막아낼 느낌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위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중간중간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참호나 초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비탈의 나무와 돌들도 뭔가 그곳을 의지해서 사수가 몸을 숨기기 좋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대청호에서 청남대 방면으로 들어오는 물길을 한 번에 관망하기 좋은 지점마다 초소들이 보였던 것은 덤이다.
실내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많긴 해도, 여전히 밖에서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다. 봄에는 연두색의 싹들이 움트고 분홍과 노랑의 색으로 덮인다. 공기는 아직 삭막하다가도 꽃꿀의 향이 흐른다. 여름은 다양한 향과 색 보다는 강한 푸르름이 주변을 덮는다. 가을은 오감 중 시각이 가장 피곤한 계절이다. 같은 색을 찾을 수 없어, 뇌는 즐겁다거나 아름답다고 받아들이지만 그 화려함을 인식하는 시신경은 가장 피로한 때다. 반대로 겨울은 검정과 하양의 세상이다. 생명의 향은 가을을 지나며 겨울엔 그 숨을 완전히 죽인다.
손으로, 발로 느껴지는 동네 산책로는 사계절을 거의 타지 않는다. 가끔 보수공사 같은 걸 하지 않는 한, 같은 풍경 같은 도로다. 심지어 마주치는 사람과 동물도 일정 범위 이내다. 눈비가 어느 정도 와서 보행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두 발로 느껴지는 산책로는 사시사철 거의 같다. 그러나, 발이 아닌 다른 신체로 느껴지는 보행로는 때에 따라 사뭇 다르다. 길가에 심긴 가로수의 모습을 배제하더라도, 코로 느껴지는 공기가 매번 다르다. 공기의 온도와 향이 그것이다.
실내에 조성된 관람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발로 느껴지는 길은 토목이나 건축이 동반된다. 시각이나 청각으로 느껴지는 것은 영상 및 오디오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또한 공기 청정 시스템도 동원된다. 소장하는 유물이나 인근의 유적지는 박물관이 임의로 바꿀 수 없다. 결국은 어떻게 사람들이 느낄지, 유사한 요소로 다르게 연출해 내는, 분위기가 포인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