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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May 18. 2024

시간을 나는 드론 (13)

예산 수덕사 방문기 (1) 

교과서에서 봤던 사찰


꽤 오랜 기간 종교 혹은 종교시설과 가까운 삶이 아니었다. 그냥 성탄절에는 교회 가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 가서 구경하고, 뭐 이런 식이었다. 역사가 깊거나 고승이 있던 곳이 더 뭔가가 있어서 기도를 하러 가거나, 또는 유명하고 신성한(?) 성당 같은 곳을 특별히 가서 기도한다던지 하는 종류의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보니, 그런 시설물들은 당연 책으로 읽고 아는 것으로 만족했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찰들이 훼손되거나 폐쇄되었고 불교 문화 역시 전면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런 암흑의 시간조차 이겨내 온 사찰들 또한 존재한다. 비단 유네스코에 산지승원으로 등록된 사찰 뿐 아니라 천 년 가까운 세월의 역사를 갖고 각 지역에 자리한 많은 사찰들이 또한 그러하다. 해미읍성 방문길에 발견하고, 고군산군도 여행의 첫 발걸음으로 시도하려 했던 예산 수덕사가 그 좋은 예 중의 하나다. 


예산 수덕사 안내문. 천오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갖는다고 한다.


이름만 교과서 어느 한 켠에서 들어본 것 같고, 그 세부 내용은 하나도 몰랐다. 솔직히 국사 교과서에서 각 사찰의 연혁이나 역할까지 세세하게 배우려 든다면 교과서의 분량은 아마 터져나갈 것이다. 그런 건 대학 때 불교역사를 전공하면서 배워도 되긴 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국사 교과서에 이름이 실렸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해두어야 할 만한 사찰이라는 방증도 된다. 예산 수덕사는 나에게 그렇게 기억된 이름이었다. 


사찰이든 다른 유적지든 간에, 해당 유적지의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물론 그런 안내문이 충분한 검수나 전공자에 의한 워딩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적을 받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안내문은 제일 빠르게 해당 유적지를 상세하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덕사의 안내문은, 비단 수덕사에 대한 소개 뿐 아니라, 나에게 "숭유억불"에 대해 다뤄봐야겠다는 주제를 던져준 포인트이기도 하다. 


추위에 물러서다


사실, 고군산군도 여행의 첫 발걸음은, 추사 김정희 고택 방문이었다. 고택 방문 후, 나는 바로 고군산군도로 향해야 했다. 원 계획은 조금 달랐다. 추사 고택 방문 후, 예산 수덕사를 잠깐 들렀다가, 고군산군도로 가길 원했었다. P인 사람이 J인 척을 하려다 발생한 참사라고나 할까. 고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고 읽어야 할 것이 너무도 풍성했다. 거기서 이미 시간을 너무 끌었다. 추사고택이나 수덕사나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지 않았다. 


지도상으로 추사고택에서 수덕사까지는 25km, 29분 거리이다. 그러나...


그 날은 전국적으로 한파가 미친듯이 불던 날이었다. 한파만이면 모를까, 서해 연안과 충남 지역 전체에 걸쳐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운전 경력의 99%를 미국에서만 보낸 나로서는, 25킬로미터면 완전 옆동네인데 완전 가깝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폭설과 한파로 분명 길에는 차가 적었다. 그러나 추월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시골 2차선 도로에서 저속운행하는 대형 특수트럭들을 앞지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 문을 열고 나서면 영하 17도의 강풍이 밀어닥치는 날씨는 비록 차 안이었지만 운전자의 상태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수덕사로 향하는 오솔길 바로 앞의 풍경. '상권'이라 불리기 충분한 규모였다.


수덕사 주차장에서 수덕사 대웅전 앞까지의 거리는 900미터 정도로, 길지 않은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발이 바람에 휘청댈 정도의 날씨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주차장은 주변을 둘러싼 산들의 골짜기를 흘러 내려온 찬 바람 여러 줄기를 정통으로 안고 있는 위치였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몇백 미터는 이어질 법한 상가를 뚫고 지나가야 했다. (실제로는 일이백 미터 정도였긴 하다.) 솔직히 이미 갔다온 입장에서 보면, 못 갈 거리는 아니었지만, 고군산군도 숙박을 예약한 상태에서는 조급한 마음이 앞선 상태였다. 결국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가 백 미터도 못 가서 몸을 돌이켰다. 수덕사의 방문은 그 다음 주, 한파가 한 풀 꺾인 후에야 이루어졌다. 


산 속 마을의 모습


산지승원이 아니었던 탓에, 평지에 있을 거라는 큰 기대감이 있었다. 등산을 웬만하면 피하는 내 특성상, 산지승원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방문의 선호도가 크게 상승했다. 물론, 수덕사로 향하는 길은 산이 가득했다. 지도상으로도 낮은 산의 중턱에 위치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수덕사로 향하는 길과, 사찰 경내의 구조 모두 고저차가 심하지 않았다. 


수덕사 앞의 상권 규모도 규모려니와 (내가 본 그 어떤 사찰 앞 상권보다도 규모가 컸다)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지만 그 사이 용케 괜찮은 평지를 골라내어 넓은 사찰을 구성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산지 옆에 자리한 우리나라 사찰 앞 상권은 주변 산지에서 생산할 법한 농산물(주변 산지에서 생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과 관련 음식물의 판매, 약간의 관련 식당과 등산과 연계한 등산 후 음식들 (약주, 파전, 도토리묵 등), 그리고 두세 곳 카페 정도의 구성을 넘어서지 않는다. 간혹 템플스테이에 연계한 보조 숙박 업소 등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불교 행사나 휴일 같은 때는 넓디 넓은 주차장을 이용해서, 보조 상권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 이상을 유지하려면, 일상적인 방문객 숫자가 충분히 존재해야 한다. 많지 않은 법회나 불교쪽 휴일, 또는 수능관련 기도 등에만 의지하여 버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수덕사 앞 상권 안내표. 저렇게 QR로 안내하는 건 괜찮은 듯 싶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이라는 점은 간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2월 첫째 주, 한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데다 전후로 별다른 법회의 일정도 없어보이던 때다. 그런데도 관광버스 네다섯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어르신들 최소 수십에서 일이백 명 이상이 보였다. (거진 모두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비성수기일 때에도 이 정도일진대, 넓디넓은 주차장이 괜한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으면 QR코드로 이곳에 입점한 모든 상점의 리스트를 게시해 놓았을까 싶다. 다만, 요즘은 핸드폰에서 카메라만 켜서 갖다 대기만 해도 되긴 하지만, 아무리 어르신들이라도 대부분 스마트폰 하나씩은 들고 다니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QR코드 리스트는 자칫 정보의 접근성 차이에 따른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이 기나긴 상권을 벗어나면, 잘 가꿔진 길이 나온다.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신작로의 느낌으로 넓고 단단하게 닦였다. 결코 영주 부석사처럼, 넓지만 지나치게 가파른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길의 중간에는 선문이 놓여, 경내 관람의 시작점을 알린다. (매표소는 건물은 있지만 국보문화재 접근성 향상의 일환으로 입장료는 없었다. 하지만 주차료가 ㅋㅋㅋ) 그리고 완만한 경사가 끝나는 길에, 수덕사 소유(?)의 국보 문화재를 전시하는 불교박물관(?)이 있었다. 


수덕사 소재 박물관의 모습.


사찰 경내를 알리는 일주문은 꽤 가까웠다. 일주문 맞은편에는 수덕사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덕사에 관한 미술품의 전시라기 보다는, 한 작가의 미술품 중에 수덕사에 관한 것들을 모아 전시하는 듯 했다.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였기 때문에, 석 달 정도 지나 글을 쓰는 지금 남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수덕사를 보고 난 후라면 기억을 되돌이킬만한 전시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의 2/3 정도는 상설(?)전시관이, 나머지 1/3 정도는 기념품 판매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수덕사 미술관의 모습. 수덕사 일주문 바로 옆에 있다. 


고도의 느낌


주차장에 내려서부터 수덕사 대웅전까지(그 이후에도 뭐가 많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찰 관람에 있어 내 기준은 대웅전까지다) 한달음에 보면서 내게 느껴진 수덕사의 첫인상은, '고도'같다는 것이다. 옛 역사 속 나라들의 수도 혹은 고대 오랜 세월을 겪어 온 주요 도시들 말이다. 사찰의 건물들 외에도, 관람객이 사찰 입구부터 대웅전까지 걸어가면서 차례로 시야에 들어오는 느낌 같은 것들이 특히 그랬다. 


수덕사 가람배치도. 지금 보니 1/3 정도를 지나친 듯 하다.


수덕사 경내 안내문. 차령산맥 끄트머리 산세를 타고 지어져 있다.


적어도 한반도의 주류 불교는 윤회 사상이 그 기반 중 하나이다. 가람배치는 살아있는 사람이 방문하는 순서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죽고 그 영혼이 윤회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과도 같은 것이다. 즉, 관람객이 사찰의 입구를 들어와 각종 문을 지나서 대웅전에 도달하듯이, 영혼도 선문을 건너 일주문으로 들어와서 금강역사로부터 한 차례 검열(?)을 받고 사천왕이 영혼에 붙은 악귀와 싸우고 비로소 대웅전 경내에 들어오게 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인 것 같다. (비 불교인의 시점입니다.) 당연히 일종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큰 문을 하나 만날 때마다 높은 계단과 등산에 준하는 걸음을 요구한다. 


도리어 사찰 입구 앞, 즉 일주문에 도달하기 전에는 나뭇잎 소리, 새 소리, 곤충 소리, 시냇물 소리까지 아주 자잘한 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매우 평화롭고 평안한 느낌을 주는 오솔길이 거의 항상 위치한다. 왠지 아주 어릴 때 어머니 뱃속에서 느꼈을 법한, 또는 세상의 풍파가 나를 덮치기 전의 그런 밝고 즐거움만 가득했을 법한 시간으로 순간이동 시키는 것 같다. 


가람의 배치, 즉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건물의 순서는 대부분의 사찰이 유사한 것 같다. 작은 암자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풀버전(?)의 중형급 이상 사찰들은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문들을 경계로 사찰 경내 일종의 '단계'가 나뉜다. 이 단계와 단계의 구분은 단지 문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각 단계를 둘러싸는 환경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높은 계단과 같은 거대한 문으로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대놓고 단계별로 명확한 고도차를 주는 경우도 있다. 산지승원이 아니라도 산기슭의 경사를 이용해서 고도차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산지승원임에도 정작 사찰 경내는 완전한 평지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수덕사 좌편을 흘러내려오는 시내. 주 관람로는 시내 우편으로만 존재한다.


수덕사는 역사는 깊지만 유네스코 등재 산지승원에 속하지는 않고, 산기슭의 경사면에 위치하지만 경내 그 '단계'가 온전히 자연의 경사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잘 정비된 석벽과 돌계단이 그 단계의 구분을 알렸다. (*영주 부석사도 돌계단과 석벽으로 단계가 나뉘기는 했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거친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건축에 의한 구분보다 험준한 산이 먼저 느껴졌다.) 


수덕사 경내로 진입하는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사찰의 폭이 매우 넓었다. 들어갈 때만 해도 좁은 오솔길에 주변은 꽤 험준한 산지가 가득하다. 이 길을 지나면 또 영주 부석사처럼 가파른 산길이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정도다. 그러나, 조금 많이 과장을 하자면, 마치 영국 탐험대가 끝없는 정글을 헤치다 갑자기 드넓은 앙코르와트를 만났을 때처럼, 눈 앞에 보여지는 평지의 폭이 순간적으로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많은 대형 사찰들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건물들이나 수행하는 건물들, 또는 공양 준비를 위한 건물과 템플스테이 관련 건물들이 주요 관람로에서 보는 시야 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관람의 대상이 아니기는 해도 그런 사찰 소속의 건물들이 많이 보이면, 그 때부터 사찰의 영역이 이미 시작되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수덕사의 경우 건물들의 상당수가 수덕사 좌편을 경계삼아 흐르고 있는 작은 하천을 건너서 위치한다. 게다가 그 하천과 건물 사이, 그리고 그 하천과 오솔길 사이 각각 숲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알고 보려고 하면 보이겠지만, 모르면 쉽사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찰과 가른 시야의 변화를 느낀 것은 아마 이런 차이에서 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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