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전하지 못한 말은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되었다.
가수 이적의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라는 노래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잠을 자려 누워보면
그날이 생각나요
일어나서 불을 켜도 사라지지 않아요
수천 번도 더 되새겨본 그 날의 장면에서
내가 했었어야 했던 한마디
끝내 전하지 못한 말
우리는 살면서 마음속에 많은 말들을 묻고 산다. 상대방이 지금처럼 계속 내 옆에 있을 거로 생각하기에,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쑥스러워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내뱉어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마음속에 머무르다가 정작 상대방이 떠나고 나면, 그 말은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되어 가슴 속 응어리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응어리는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후회, 아쉬움, 자책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에게도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엄마가 항상 내 옆에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공부하기 바빠서, 얘기하기 쑥스러워서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속에 꼭꼭 아껴두었다.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말은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되었다. 그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은 수많은 메아리가 되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내게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그 메아리를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했다. 그래서 이미 해지된 엄마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불로 태우거나(하늘로 부치는 편지라고 하자), 엄마 산소 앞에서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다. 하지만 상대방과 피드백이 없는 내가 보내는 일방적인 메시지들은 그대로 다시 내게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답답한 마음이 통했는지 이틀 연속으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꾸게 되었다.
#. 첫 번째 꿈
(꿈속에서 엄마는 복수가 찬 상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엄마 뭐 좀 배우고 올게.
나: 엄마 지금 암도 퍼지고 있고 몸도 안 좋은데 그 시간은 나랑 같이 보내자.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죽는 시점에는 결국 ‘관계’가 더 중요한 거야. 나는 엄마가 죽을 때 나한테 유언도 없었고, 나도 엄마랑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오랜 시간 마음이 괴로웠어. 내 마음 속에서 엄마를 떠나보내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다구. 그러니까 지금 얼마 안 남은 이 시간 엄마랑 충분히 사랑하고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고 싶어.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들도 많고. 그 말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줄 거야. 그냥 이대로 내 옆에 있어 줘.
엄마: ...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엄마는 암이 온몸에 퍼지고 있는 와중에도 아빠 사업을 돕느라 바빴다. 늘 분주했던 엄마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엄마와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싶었던 내 바람을 엄마에게 표현했다.)
#. 두 번째 꿈
나: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암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지만, 엄마가 암에 걸려서 다행이야. 엄마가 병으로 고난을 받은 와중에 복음이 엄마에게 흘러 들어갔고, 엄마가 더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아직도 기억이나. 엄마가 방에 불끄고 간절히 기도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엄마가 갑자기 사고로 죽었다면 난 더 괴로웠을 거야. 엄마의 아픈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더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어.
잘 버텨줘서 고마워.
(엄마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엉엉 울었다)
비록 대화라기보다는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엄마를 앞에 두고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을 꿈속에서 쏟아내자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내게로만 돌아왔던 그 메아리가 엄마에게 닿았던 것이었다. 잠에서 일어나자 내 마음은 한층 정돈되고 차분해졌다. 그동안 꼭꼭 눌러왔던 말들을 꿈속에서나마 엄마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일 아픈 엄마를 불평했던 철없던 19살 소녀는 꿈속에서나마 어느덧 엄마를 위로하는 성숙한 딸로 자랐다. 어쩌면 엄마가 나한테 듣고 싶었던 그 한 마디를 위해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