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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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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Feb 10. 2019

육아휴직은 갭 이어(Gap year)

육아휴직을 하면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이보다는 '나 자신' 이었다. 비록 육아를 하게 되면서 휴직을 쓰긴 했지만, 분주하게 달려왔던 내 인생에서의 첫 휴직이었다. 내 나이 27살에, 인생의 1/3에 도달한 시점에서 난 '갭 이어'(Gap year)를 갖게 되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갭이어(Gap year)는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갭 이어가 굳이 비행기를 타고 반짝반짝 빛나는 에매랄드 해변에 멋진 풍경일 필요는 없다. 또한 갭이어는 대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직장인에게도 혹은 직장을 불문하고 인생의 어느 문턱에 도달한 시점에, 누구나 갭이어가 필요하다.


갭 이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긴 시간을, 큰 비용을 부담하며 갭 이어를 갖기엔 제약이 크다.  더군다나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정했다. 나의 갭이어는 거창한 갭이어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틈틈히 갭 이어를 갖기로.


학창 시절에는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달려왔고, 대학생때는 치열한 취업시장 속에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자격증, 경력, 외국어, 좋은 학점에 열을 올렸다. 막상 취업을 하고 나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속에 틈틈히 연애를 하며 주말엔 쉬기 바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힘에 떠밀려 분주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정작 '나 자신'에 대해 '바보'가 되어있었다.


'내가 왜 우울한지?'

'내 마음이 왜 아픈건지?'

처음엔 내 상처에 대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떨 때 나는 행복을 느끼는지?'

'나는 어떤 성향인지?'

'내가 뭘 하고 싶은건지?'

로 시작해서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 물음표를 갖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주변 사람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나를 맞추었다면,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주체성이 생긴 시점이었다.


육아로 인해 고된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처음으로 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알아가는 재미 또한 상당했다. 나에 대한 호기심은 한 인간에 대한 본능과 본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적성 찾기로 시작된 호기심은 꿈과 행복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양념으로 틈틈히 육아서를 보며 엄마가 되는 과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수많은 호기심은 한 줄로 압축되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여기에는 나의 적성과 경제적으로 창출되는 이득까지 모두 포함 되었다.

여전히 난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니 어쩌면 그 해답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째아이가 2살이 될 무렵, 다가오는 복직일에 대한 걱정과 공포가 어마어마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어린이집 학대뉴스와 주변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오로지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이제 막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한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려니 가슴이 미어졌다. 혹시라도 맞으면 맞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이 아이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밤에 꿈을 꾸게 되었다.


대낮에 내가 혼자 길을 거닐고 있는데, 황금빛이 번쩍번쩍 나는 물체가 있어 그 곳으로 가보니 들보에 싸인 사내아이가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아기는 눈을 껌뻑거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황금빛이 나는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예쁘다'


그렇게 나는 이 아이를 감탄하며 오랜시간 바라보았고, 잠이 깨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을 깨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아있던 나는 그 사내아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황금빛이 나는 아이라니'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성별은 사내아이였다.


내가 꾼 꿈은 태몽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태교에 임했고,

첫 번째 2년간의 육아휴직이 끝나갈 즈음,

나의 두 번째 육아휴직, 아니 두 번째 갭 이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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