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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Jan 22. 2019

내 마음이 왜 이런걸까?

엄마라는 정체성이 내게 준 힘

집에서 온종일 아기와 단 둘이 있게 되면서 때로는 세상과 단절된 채, 나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내 상처를,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 틈에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바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다. 19살에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휴우증과 아빠의 사업정리로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되어야 했던 나는 현실이 버거웠고, 자주 우울했다.


아프고 힘든 마음을 잘 달래지 못한 채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저 마음 구석진 곳에 방치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고,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다시 용기를 내었다. 상처를 들춰내기로.


사람들은 상처를 입으면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거나 꼭꼭 숨기고 싶어한다. 나또한 그랬다. 하지만 숨겨진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곪거나 터지거나.

나의 경우는 우울과 분노로 자주 표출되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처를 들춰내야 했다.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지만, 일단 상처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막상 마음이 힘들고 우울할 때, 딱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 마음이 왜 이런걸까'


그리고 알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내 마음이 고장난 걸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수많은 심리서적을 읽고, 상담 관련 세미나와 상담기관을 찾아갔다. 여러 노력 끝에 나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하루는 대전에서 열리는 사이코드라마(역할극을 이용한 심리치료의 일종)에 참여했다. 내가 대전에 간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최헌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최헌진 선생님은 정신의학과 의사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이코드라마를 소개하고, 이를 널리 전파하는데 큰 공헌을 하신 사이코드라마 전문가이다.


여러 번의 방문 끝에, 드디어 주인공을 맡게 되었고, 그 날 내 귓가를 때린 선생님의 말은 생살을 파고드는 화살같았다.


"이 년은 10년 동안 시체를 끼고 산 년이야. 독한 년!"


그랬다. 나는 10년 전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을 아직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속된 표현대로 나는 10년 동안 시체를 끼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엄마의 죽음을 부정하는데 쓰였고,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 애도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였다.


"네가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엄마 못 놓는 거잖아!"


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엄마가 없는 것을 버림받은 아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꼈던 나는, 엄마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외에도 날 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분노와 죽은 엄마를 미워했다는 죄책감,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모든 감정들이 나의 분노와 우울을 만들어 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내 상처를 하나씩 들춰내기 시작했고, 조금씩 내 상처로 부터, 과거로부터 회복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내 상처를 굳이 들춰내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날부터 내 상처를 돌아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강하다' 라는 말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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