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공동의 긴밀한 연결,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에 대하여
전쟁을 직접 겪지 않고도 전쟁의 참화를
오롯이 삼투해낼 수 있을까요?
개인의 기억으로도
한 시대의 아픔을
완전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잡동사니 외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작품과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만든 작품을 보며,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1944~)에 대한 의문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치밀하지 않은’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작가가 어떻게 ‘치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프랑스 현대미술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고통받았던 볼탕스키는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역설적인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이후 스스로의 생애에서 특정 내용을 선택하고, 이를 각색하여 보편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지요.
1969년부터 볼탕스키는 사진에 매료되었는데요, 이는 사진 한 장이 ‘자료적 증거’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신빙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의 본격적인 사진 작업 중 하나인 <1939년과 1964년 사이의 D가족의 사진 앨범(L’album de la famille D. entre 1939 et 1964)>(1971)은 사진이 현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제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기를 원했다.
이 같이 밝힌 작가는 D가족의 삶을 넘어, 그 당시 프랑스 중류 가정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요. 이처럼 그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는 개인적 기억을 공동체적 기억으로 전이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볼탕스키는 사진을 진실의 맥락으로부터 분리하여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게 됩니다.
또한, 볼탕스키는 언뜻 보기에 무의미한 오브제들을 수집하여 전시합니다. <진열장(Vitrine de référence)>(1971) 안의 작은 물건들은 볼탕스키의 자전적 기억에서 비롯된 집합체인데요, 실제 생활과는 거의 무관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이의 물건을 전시하면서도,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대신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의미를 환기시킵니다. 이처럼 시대의 목격자가 되어 관객의 기억과 그의 경험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방식은 작가의 작업세계를 대표하고 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좁은 공간 속 철망 칸막이 위에 다양한 크기의 흑백 사진을 설치한 <기록 보관소(Archives)>(1987)는 인위적인 계획에 의한 집단적 죽음을 상징합니다.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강한 암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수용소의 실제 사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집단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죽음’의 주제를 보다 보편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어요.
이와 같이 볼탕스키의 작품은 우리의 심연에 잠들어있던 존재를 깨움과 동시에, 개인의 기억과 공동의 기억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여러분에게 삶이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