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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윤 Mar 21. 2018

은은하게, 오래오래.

─작가 김규형과 순간의 색채─

    사진은 ‘도구’로서 존재해왔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사진은 예술 작품, 특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로 화가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카메라는 인간의 눈으로 본 것에 대한 기록의 도구를 넘어서서, 스스로의 ‘기계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는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재현하는 것을 또 한 번 넘어서 작가의 주관을 담는, ‘그 자체로서의 예술’로 거듭났다.


    카메라는 점점 더 작아질 것이고 또 점차 더 광범위하게 순간적이면서도 신비한 영상을 불러일으키는 쇼크는 르포르타주와는 달리 보는 사람에게 기계적인 연상작용을 정지상태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러한 르포르타주의 기계적 연상작용을 대신해서 사진의 표제가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 벤야민

*르포르타주 : 사회적인 현실에 대하여 보고자의 주관을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문학

다시 오지 않을 순간
순간의 포착
court1
court2

    담백하게, 카메라 프레임 안에 자신의 주관을 담는 작가 김규형의 곁에는 항상 사진기가 있다. 찰나의 순간을 발견하여 찍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찰나의 눈을 빌려서 창조된 만큼, 그의 작품들은 그의 손을 많이 거치지 않는다. 보정하지 않은 색감과 안정된 구도는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김규형 작가(@strang2r)

    그의 눈 안에 그려지는 세상에는 많은 색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감이 눈에 담기는 순간을 포착한다. 소위 ‘골든 타임’이라고 불리는 해 질 녘 시간대의 하늘색, 고궁을 거닐다가 발견한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색감.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을,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계속 감도는 색. 그리고 포착한 색채들을 그의 또 다른 눈, 사진기로 담아낼 때는 더 많은 색이 그 안에 담긴다.



김규형 | 공존 | 2017 | 사진 | COVART 아트프로젝트 대표작

공존

처음 사진기를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예쁜 하늘, 맛있는 음식, 멋진 공간, 색다른 경험.

내게 어떤 식으로든 낯섦을 제공하는 것들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그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닮은 점이 없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함께 회의를 하고, 서로의 공간에 초대받아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찍히며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멀었던 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해서 상대방의 뒤에 혹은 앞에 서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물질이 어울리며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나무와 콘크리트가 함께 있는 멋진 풍경처럼 말이다.


김규형 글.



    그는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기록한다. 그의 글은 마치 셔터스피드처럼 짧은 호흡의 글이지만, 그의 사진과 닮은 색감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보아도 질리지 않을, 은은한 색채를 지닌 글. 그의 글은, 그의 사진 위에 또 다른 색채를 더하여 더욱 풍부한 세계를 완성한다.



은밀하게,

다시,

그림을 바라볼 당신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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