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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Feb 04. 2019

담과 사람들 24

법무부 사서함


언젠가 낯선 메모가 책상에 놓여있다. 이름은 도대체 생각나지 않는다. 전화하니 중년의 여성이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기억 안나시죠. 1999년 연천에서 교통사고로 들어갔었던 000입니다”

“죄송한데요. 워낙 오래전인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서요”

“저희 동창 중에 한명이 선생님과 같이 근무했었어요.”

“아~. 그러고보니 약간 기억이 날 듯도 하네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저한테 전화를 주셨어요?”

“그때 무척 억울한 사건으로 들어갔었는데 한달쯤 있다가 서울로 이송을 갔었어요. 의정부랑 다르게 낯설고 힘들어서 하소연하기위해 선생님께 편지를 썼었는데 선생님이 힘내라고 답장을 보내주셨어요. 그 엽서를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힘들때마다 보곤 한답니다. 답장은 기대도 않고 하두 힘들어서 편지를 썼었는데 답장까지 해주시고, 그게 저에게 큰 힘이 되었답니다. 지금은 중장비 사업을 크게 하고 있어요. 꼭 한번 뵙고 싶어요. 의정부로 연락했는데 다른 데로 가셨다고 해서 기자인 오빠가 수소문해서 알려주셨어요.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뵙고 싶어요”    


이 전화를 받고 오히려 내가 궁금해졌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답장을 썼을까?

가끔 수용자들은 다른 기관에 이송을 가서 전에 있던 기관의 교도관들에게 감사편지를 쓰곤 한다.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니 편지도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답장을 보내지 못하는데 가끔 답장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먼저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특별히 맘이 쓰이는 경우이다. 도대체 난 그녀에게 어떻게 답장을 썼는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는 그 엽서가 문득 궁금해진다.  

  

요즘 손 편지가 무척이나 귀하다.

우리 자매들은 편지를 잘 썼었다. 일찍 육지로 나간 언니들은 섬에 남아있는 막내에게 그 편지봉투에 전신환을 넣어 보내주곤 했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동네 첫 집인 우리 집에 편지를 주고 마을에 배달을 마칠 때면 나는 답장을 써서 드리곤 했다. 참 편지를 좋아했다. 그래서 생일날 서른 살 아저씨가 편지 안에 시 한편 적어 보내준데 감동받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서랍 두세개는 편지로 가득하다. 그러다 이메일이 생기고 휴대폰이 발달되고 그러다보니 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런데 아직 교도소에서는 손 편지로 가족, 지인들과 또는 다른 교정기관에 있는 이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 교정기관 편지의 절반 이상은 펜팔이다. 예전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냈던 편지나, 잡지 뒤쪽에 펜팔 할 사람 이름과 주소가 있던 잡지 등을 통해 주고받던 펜팔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교정기관 내에서도 펜팔은 매우 흥행중이다.  

  

교정기관에서 펜팔하는 요령은 주로 소개팅이다. 한두사람이 펜팔하다 옆 동료 수용자를 소개시키는 방식이다.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을 상상해보라. 서로에 대한 소개도 그렇고 솔직히 그 편지를 그 사람이 썼는지조차 확실치 않는데 그 펜팔에 전력을 다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 편지 내용은 처음엔 자기소개에서 사건의 억울함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 수용시설 등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서 나중엔 서로 사랑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 그래서 노골적인 성적인 표현과 그림 등을 그려서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먼저 출소한 사람이 면회를 가기로 약속을 한다.     


우리 소에 정말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수용자가 있었다. 그녀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다. 오죽하면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서 아프다고, 죽겠다고 하는데도 그것 역시 거짓말인줄 알았다가 큰 일 날 뻔 한 적이 있다. 사실 저혈당 쇼크가 온 것인데 워낙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여서 직원들도 아프다는 것조차 꾀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위급한 순간 전에 처치를 해서 회복되었는데 그녀는 퇴원해서 소에 들어오자마자 또 펜팔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편지 속에 그녀는 아리따운 여성으로 표현되었으리라. 펜팔하던 남자가 출소해서 면회를 온 것이다. 그런데 그날 웃지 못할 일이 벌여졌다. 그 남자가 펜팔하던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왔다고 우기는 것이다. 편지 속 여인과 실제 여인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나중에 그녀를 다시 사기로 고소한다는 소식까지 들릴 정도였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과 한정된 공간에서 수용자들에게 편지는 신선한 바깥 소식이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고 긍정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경우에는 가족이나 피해자에게 협박을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범행의 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족들은 수신거부를 하기도 한다. 한 장의 편지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참 많은 마음이 담겨있다. 일반서신, 등기서신, 접견서신, 인터넷서신... 이 많은 종류에 편지들에 반갑고 기쁜 소식만 전해오는 날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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