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수용생활
처음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렵고 막막해 한다. 그런가 하면 몇 번 들어와 본 적 있는 이들은 낯익은 교도관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하는 쑥스러움도 있지만 그 마음은 잠시이고, 교정시설이나 입소절차 자체가 익숙해서 ‘이곳 교도관들은 어떤가? 여긴 분위기가 어떨까?’ 그동안의 변화와 기관 간 차이를 파악하고 시스템을 훑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최근 내가 맡고 있는 소임은 여성 수용동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지원하고 주간에 들어오는 신입 수용자를 상담하는 일이다. 주로 주간에는 불구속 재판을 받고 실형을 받아 법정구속되는 이들과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유치를 위해 입소하게 된다. 주간에 입소하게되는 이들은 여러 날 유치장에 있다가 입소하게 되는 피의자 입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피의입소자들은 이미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면서 체념하고, 여러 날의 제한에 적응된 상태여서 오히려 교정기관에 들어오면 마치 살아야 할 집에 온 것처럼 안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로로 입소하는 수용자의 개인 신상 등을 파악하고 수용 생활을 안내하기 위한 상담을 진행한다. 간단한 인적사항, 성장배경, 직업경력, 보호자, 건강상태, 사건경위를 간단히 파악하고 특별히 수용생활에 우려되는 요인은 없는지, 갑작스런 구속으로 혹시 미성년의 자녀가 방치되지는 않는지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아이들은 범죄자의 자녀이면서 또 다른 범죄 피해자 되기 때문에 그들의 보호까지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런가하면 어느 정도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수용자 상담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수용 중 애로사항이나 고충 등을 듣고 해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은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크나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사실은 수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그들에게 자신의 회한 가득한 삶을 풀어내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치유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묻는다. ‘그들이 한 말을 믿으세요?’. 과연 수용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이기도 하고, 잘 보이고 싶은 허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수용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존중 받았다고 생각하고 수용생활을 버텨내는 힘을 얻기도 한다.
간혹 주변에 아는 분들의 지인들이 입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교정시설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특별한게 없다. 좋은 방을 주고, 특별접견을 시켜주고, 맛있는 것을 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는 그런 것들일지도 모르지만 공동생활이라 많은 이들의 경계와 기본 질서가 필요한 곳이니 그렇게 해줄 수 는 없다. 그저 그들을 찾아가 만나 주는 것 뿐이다. 나는 그런 이들을 만나러 가서 차 한잔 하며 그들의 이야기들 들어주고, 혹시라도 수용 중 애로사항은 없는지, 긴급히 도와줘야 할 사항은 없는지,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개인의 상황에 맞게 유익한 수용생활 방법을 일러주곤 한다.
누구든 교정기관을 원해서 들어오지는 않는다. 노숙자들은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 교도소와 재활기관의 따뜻한 잠자리와 규칙적인 식사를 거부하고 지하철역이나 공원을 전전한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구속과 수용생활을 조금은 어렵겠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은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든 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원해서 구속된 이가 없듯이 스스로 나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 못했기에 ‘석방, 출소’라는 처분을 받기까지는 자신의 의지는 그렇게 큰 영향을 발휘하지는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용하는 것이 현명하겠죠. 그래서 긍정적인 수용이라고 합니다. 긍적인 수용방법은 그 시간과 공간을 느끼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유용하게 보내는 것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시간과 자신을 성찰하는 일입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삶인지 돌아보는 것이지요. 그 중 생각을 바꾸고 몸을 바꿔 제대로 갈 수 있다면 그렇게 노력해보는 것입니다. 수용중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은 책읽기와 감사일기, 명상입니다. 조금 더 생각이 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에게는 글쓰기 치유를 권하기도 합니다.
비록 전문가이진 못하지만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과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김창옥님의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마음아 넌 누구니’, ‘스물아홉의 꿈 서른 아홉의 비행’, ‘계단을 닦는 CEO’, ‘상처의 크기가 사명의 크기다’,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치유의 글쓰기’ 등의 좋은 책들을 대상자들에 따라 추천해주고 대여해주면서 의지가 약하고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겐 감상문을 쓰게 합니다. 감상문을 구실로 그들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다시 상담을 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갖습니다. 특히 이 방법은 미성년 수용자인 소년수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좋은 책을 읽게 하고, 진로를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명상 또한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을 통제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그만큼 효과적인 훈련이 없습니다. 단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감정 상태를 돌아보고 느끼고 알아차리게 되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단순 호흡에서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담은 반복된 명상훈련을 통해 긍정의 뇌로 바뀐다면 이들에겐 긍정의 결과들, 감사할 결과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한두번이 아니라 뇌구조가 변하게 될 시간만큼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겠죠.
이런 시간들을 통해 천개의 벽돌 중 두 개의 잘못된 벽돌까지 싸안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담장을 만들 듯이, 짧게는 몇일, 몇 달, 길게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 그 경험의 낙인으로 패배자가 되기보다 더 크게, 사명으로, 아름다운 담장으로 만들어가길 마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훗날 또 다른 수용자들의 멘토가 되기도 하고, 더 멋진 삶을 살아가며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을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람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들에게나 뜻하지 못한 상황은 닥쳐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자신이 수용되어있거나, 가족이 수용되어 있거나, 수용생활을 마치고 힘든 시간들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공감하고 서로를 위안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작은 힘이 되길 기원합니다.